조선 왕조의 정치는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외척 세도 중심 체제로 변질됨으로써 과거제도의 모순, 매관 매직의 악순환, 법도와 기강의 문란 등이 정치적 혼미를 거듭하게 하였다. 과거제의 폐단은 조선 후기 사회의 기강과 법도를 문란케 하였으며 空名帖의 무제한적 발매나 원납전의 결과로 나타난 품직, 수령직의 제수 같은 부조리가 공공연하게 나돌아 민중을 재정적 궁핍에 허덕이게 하였다.
借啣 벼슬이라는 특수 케이스도 시행되고 있었는데 고종 시대에 더욱 유행하였다.1) 그보다 앞선 철종 말년에는 관직의 매매 행위가 더욱 만연되었다. 거기에 고리대금업의 성행은 궁극적으로 민중들을 위협하고 생활을 곤경으로 몰아넣었다. 다산 정약용이 ꡔ목민심서ꡕ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수령 향리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부정・부패・비리행위는 제아무리 근절책을 시행한다 해도 부정의 근본 뿌리를 뽑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2)
그러므로 일반 민중들은 이와 같은 정치적 모순과 비리 속에서 정부 부재 현상을 체험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정치적 비리 속에서 인간성의 회복이 이렇게 억압되는 정치상황을 일반 민중은 매우 불편하게 느껴 새로운 정치 질서와 생존의 체계적인 운수의 전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었다.

조선 왕조의 정치는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외척 세도 중심 체제로 변질됨으로써 과거제도의 모순, 매관 매직의 악순환, 법도와 기강의 문란 등이 정치적 혼미를 거듭하게 하였다. 과거제의 폐단은 조선 후기 사회의 기강과 법도를 문란케 하였으며 空名帖의 무제한적 발매나 원납전의 결과로 나타난 품직, 수령직의 제수 같은 부조리가 공공연하게 나돌아 민중을 재정적 궁핍에 허덕이게 하였다.
借啣 벼슬이라는 특수 케이스도 시행되고 있었는데 고종 시대에 더욱 유행하였다.1) 그보다 앞선 철종 말년에는 관직의 매매 행위가 더욱 만연되었다. 거기에 고리대금업의 성행은 궁극적으로 민중들을 위협하고 생활을 곤경으로 몰아넣었다. 다산 정약용이 ꡔ목민심서ꡕ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수령 향리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부정・부패・비리행위는 제아무리 근절책을 시행한다 해도 부정의 근본 뿌리를 뽑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2)
그러므로 일반 민중들은 이와 같은 정치적 모순과 비리 속에서 정부 부재 현상을 체험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정치적 비리 속에서 인간성의 회복이 이렇게 억압되는 정치상황을 일반 민중은 매우 불편하게 느껴 새로운 정치 질서와 생존의 체계적인 운수의 전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