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와 不然其然
수운은 「불연기연」론에서 전통적인 동양철학의 정적이고 원형적인 완성된 실재관을 깨뜨리고 공적이고 원추형적인 진화 실재관을 피력하고 있다. 챨스 다윈(C. Darwin, 1808∼1882)의 <종의 기원> 출판이 1859년임을 생각하고 당시 동양사상의 배경을 좋고 볼 때 수운의 「불연기연」론은 한국적 종의 기원 서설이었다고 볼 수 있다.1)
수운은 「그렇지 않음」을 더 추구하여 묻지 아니한 선유・성현들의 철저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고 나서 「그렇지 아니함(不然)」과 「그러함(其然)」은 불연속적인 연속성이 있는 「부동의 동」이라는 범재신관을 여기서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불연기연」의 첫 부문과 끝 부문을 인용하면,
「노래하여 이르되 천고의 만물이여, 각각 이름이 있고 각각 형상이 있도다. 보는 바로 말하면 그렇고 그런 듯하나 그부터 온 바를 헤아리면 멀고도 심히 멀도다. 이 또한 아득한 일이요 헤아리기 어려운 말이로다」 <不然其然>
「이러므로 기필코 어려운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요 판단하기 쉬운 것은 그런 것이다. 먼 데를 케어 견주어 생각하면 그렇지 않고 또 그렇지 않은 일이요 한울님에게 부쳐보면 그렇고 그렇고 또 그런 이치이저」2) <不然其然>
수운의 진화신관은 전통적 동양 실재관을 넘어선다. 그러면서도 서구 기독교적인 범재신관과 약간의 차이점을 나타낸다. 서구의 범재신론은 진화 과정과 생성의 최종 목표를 미래에 두며, 그러므로 그 과정은 흔히 진전하는 직선, 화살촉, 원추형으로 상징되어 왔다.3)
그러나 수운의 신관에서 보면 비록 그것이 생성과 진화의 운동 속에서 파악되더라도 수운의 진화 과정은 선적이 아니라 면적이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입체적이다. 巨樹가 천천만만 가지를 사면팔방 공간 속에 입체적으로 뻗어 확장해 가듯이 진화론의 창조 과정은 무궁한 울을 채우며 뻗어가는 시공간적-질적-확산 진화이다. 이것이 공간문화로서의 한국의 얼이 도달한 중용의 실재이다. 서구 유신론적 신관이 결국 시간적-양적-확산 수렴의 역사철학을 낳았다면 수운의 진화신은 시공간적-질적-확산 진화의 역사철학을 낳았다. 우주는 한울 가득히 나뭇가지를 뻗고 있는 생명의 거수와 같다. 그 어느 가지라도 원목에서 단절되면 그것은 생명을 잃은 땔감이 될 뿐이다. 수억천 년 자란 무궁한 생명수 끝에 탐스러운, 그러나 지혜를 내포한 생명과실이 열렸다. 그것이 인간이다. 과실 속에는 이 나무의 씨앗이 들어 있고 그 씨앗 속에는 이 거대한 생명수가 가능태로서, 잠세태로서 존재하듯이 인간 생명 속에는 우주생명의 전시공간 과정이 다 들어 있고 전체가 개체 속에 응집・응결되어 있다. 그래서 인내천이다.4)
전통적인 유신론적 서구 기독교 신관에서 보면 세계는 과거 어느 시점에 전능한 신의 초자연적 창조 행위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선한 창조 세계는 인간에 오염되어 그 본래적 선성을 상실하고 마침내 신이 연출하는 구원사의 드라마가 연출되는 광대한 무대가 되었다.
인간에게 이 자연의 관리권과 정보권과 소유권이 주어졌으므로 인간은 이 자연을 인간 중심적으로 재구성하도록 허락되었다고 보았다. 그 결과 이루어진 것이 오늘의 기계 기술 문명이다.
그러나 수운의 범재신관에서 보면 자연은 생명의 거수요, 인간은 그 열매이므로 비록 열매가 거수의 중요한 구성요소요, 목적임에는 틀림없으나 거수의 일원으로서 가지・잎・뿌리와 더불어 공존 共役한다. 인간은 신의 명령을 위임받아 자연을 지배하는 자가 되지 않고 자연과 공생하며 신과 동역한다. 이때 인간은 성숙한 책임성과 자유를 그 본질로 갖는 윤리적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부터 동학의 조선 말의 사회를 개혁하려는 혁명적 열정이 나왔다. 동학의 후천 개벽사상이 단순한 민중 신앙에 입각한 역사적 필연성에 좇아 이루어지는 시대경륜론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책임성을 자의식한 개체들이 뜻을 합하여 현실에 뿌리박고 무궁히 성장하는 생명의 한울 그 자체를 키우자는(養天)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이상에서 수운의 범재신론이 서구의 그것보다 도리어 시대적으로 앞서서 불연기연의 「부동의 동」 「반대의 일치」라는 생명의 법을 깨달은 진화신론임을 살폈다.
결국 수운의 신관은 돌연히 깨닫거나 얻어진 독창적 산물이 아니다. 한국민의 심성 속에서 수천년 간 형성 발전되어 온 한울님관이 수운의 심성 속에서 그의 誠과 信과 敬에 의하여 가장 뚜렷이 이해되고, 체험되고, 살게 된 것이다.
한국 민족의 본래적인 한울님관은 세계 고등종교인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가장 포괄적인 신관으로 형성되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유신론도 아니요, 범신론도 아니다. 철학적 한 가지, 도, 이기, 태극이면서도 동시에 인격적인 주이기도 하였다. 한민족의 한울님은 주재・운명・섭리・도덕적・지상명령이면서도 한국민의 심성 속에 현현된 가까운 실재이기도 했다.
한민족은 지극히 종교적인 심성을 가진 민족이면서도 히브리인들처럼 하느님을 관념화하지 않았다. 하느님 칭호를 복수로 하여 사용한 적도 없고 구태여 민족신화하지 않았다. 한민족은 하느님과 그 신적 계보에 관한 신화적 탄생 설화나 신적 족보를 가진 바가 없으며 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지 않았다. 신에 관한 신인동형론적(Antropomorphic) 묘사를 회피하였다. 한민족에 있어서 한울님은 절대적 초월자로서 주이면서도 동시에 삼라만상 위에서, 속에서, 그리고 더불어 관계 맺는 지극히 가까운 세계의 충만이었다.5)
이러한 한민족의 한울님 관념은 수운에게 계승되어 지기일원론적 범재신론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수운에 있어서 신은 인간 대 인간 관계처럼 한 인격자(A person)는 아니다. 신은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不擇善惡也). 다만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자신의 기운을 바르게 하면 신의 성품을 거느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생존 자체를 초극할 수 없고 背命할 수 없고 背理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생존 자체는 그것을 의식하는 큰 신이요, 한울「님」이 된신다. 한울(天)은 님(主)이 되신다. 한울(天)이 인간과 삼라만상에 대하여 그의 신권을 주장하고 영광과 예배를 강요해서가 아니라 한울(天) 스스로가 갖고 있는 그 생명의 무궁함, 그 덕의 광활함, 인간보다 더 그 진리와 성실의 깊음에서 스스로 저절로 주가 되신다. 그러므로 수운에게서 신관은 「천」이 아니라 「천주」로서 이해되고 체험되고 살아졌던(生)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