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천주사상

 

최제우는 ꡔ동경대전ꡕ이나 그의 十三字呪文에서 普遍者를 「至氣」 「天」 「天主」등 여러가지로 표현했다. 그중에서도 그의 呪文의 「天」개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1)


이 呪文에서 普遍者的 存在로는 「至氣」와 「侍天主」 두 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우선 이 呪文만으로는 「至氣」와 「侍天主」와의 관계가 분명치 않다. 그는 과연 「至氣」를 本體로 삼는 氣一元論者였는지 「天主」를 모신다는 점에서 「天主」를 보편자로 삼았는지 분명치 않다.


「至氣」에 대해서 그는 「論學文」에서 다음과 같이 그 定義를 내리고 있다.


「至氣者 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混元之一氣也」


위의 定義로 보아 「至氣」는 「無事不涉 無事不命」의 普遍者로서 「混元一氣」라 한 점에서 花潭 徐敬德의 氣哲學이래의 氣哲學類에 속하고 「無爲而化」의 귀절에서 仙敎(老莊)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또한 그는 「侍天主」의 「侍」에 관해서도 「內有神靈하고 外有氣化하여 一世之人이 各知不移者也」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侍天主」는 「한울님의 공경」이오 天主에 대한 「敬畏之心」을 가진 상태이다.


또한 최제우는 「誠敬」등 유교적 덕목의 실천을 강조하면서도, 그런 윤리적 인격화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主理說이 아니라 主氣說위에 세우려고 한 흔적은 뚜렷하다. 동학사상에 있어서 「天主」는 「至公無事하신 마음」 「不擇善惡」하는 存在로 규정하고 있다.


「昊天金闕 上帝님도 不擇善惡 하신다네」  <安心歌>


「그러나 한울님은


至公無事하신 마음


不擇善惡하시나니」  <道德歌>


이와같이 「至公無事」한 存在로서의 「天主」는 主理說에서의 理의 지배에 의한 계층적 존재론에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主氣說에서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氣化의 대상자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다름아닌 「不擇善惡」의 근거이다.


따라서 수운은 庶民들 즉 「세상사람」 누구나 道成德立하여 聖人君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데 근대사상의 선각자로서의 의의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도 역시 君子의 규정에서 君子는 氣가 바르고 마음이 정하여진 고로 천지와 더불어 그 德이 合一된다고 했고 小人은 氣가 不正하고 마음이 정해지지 아니하여 天地와 그 命이 어긋난다고 썼다.


「君子之德 氣有正而 心有定故 與天地合其德 小人之德 氣不正而 心有移故 與天地違其命 此非盛衰之理耶」2)


그가 降靈呪文에서 「侍者」 즉 天主를 모신 심적 상태를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也」의 「不移」란 바로 「心有定」과 같은 뜻이다. 또한 그가 항상 강조하며 동학의 근본원리로 내세우는 「守心正氣」 역시 성리학의 君子之德을 쌓은 상태와 다를 바 없는데 다만 그 군자적 인격을 양반층 이외의 모든 서민들에게 열어준 것이 특색이다.


또한 그는 성리학적 개념체계를 수용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 개념체계를 이용하여 유학이나 불교를 비판하고 있으며, 조선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유교나 불교가 운이 다하고 무력해졌다고 해서 時運觀的 觀點에서 衰運期에 접어들었다고 豫斷하고 있다.


「儒道 佛道 累千年에 運이 역시 다했던가」


「아서라 이 세상은 堯舜之治로도 不足施요, 孔孟之德이라도 不足言이다」3)


그 전에도 그는 유교의 기본사상인 「三綱五倫」 「仁義禮智」 「元亨利貞」, 「誠敬二字」등을 들고 있으며 孔子를 「先聖」으로 떠받들기를 잊지 않는다. 그의 「修德文」에서 「仁義禮智는 先聖之所敎요 守心正氣는 惟我之更定이니」4)라고 해서 「仁義禮智」를 先聖의 가르침으로 일단 긍정해놓고 자신의 주장인 「守心正氣」도 역시 자신의 독창이 아니라 다만 자기의 「更定」이라 했으니 「仁義禮智」의 실천을 다시 강조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여기서 수운자신에 의해 주장된 「守心正氣」는 聖人이나 君子와 같은 도덕적 인격수양을 위한 주관적 방법으로서의 수양방법이다. 그의 「守心正氣」는 오랜 修學期間을 요하는 儒學的 학습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平民 누구나가 닦아 군자의 인격이 될 수 있는 수양법이다. 그러나 주자학에는 이와는 다른 또하나의 객관적 방법인 「格物治知」의 知的 確定方法이 있다. 이 後者의 방법은 학문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양반층이나 지배자들만의 것이다. 이와는 달리 최제우가 내세운 도성덕립의 수양법은 이른바 「格物治知」의 합리주의적 방법과는 달리 비합리적인 주관적 방법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주자학의 엄격한 규법주의는 人欲의 自然性(本然之性)을 순화시킬 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治國平天下」의 濟世安民의 정치과정을 담당할 수 있는 계층을 다만 유학의 교양을 닦은 독서인계층・통치자계층 즉 「士大夫」 계층에만 국한시켰다. 따라서 주자학의 규범은 上下主從의 계층적 규범인 동시에 上下差等의 계층적 존재론인 理氣哲學에 의해 인간을 上下・聖人小人등의 계층적 차등으로 구분한다. 따지고 보면 주자학에서의 「仁義禮智」나 「誠敬」은 「大夫」가 되기 위한 「士」의 교양 즉 官學的 교양의 덕목들이었다.


수운의 東學에서는 「格物治知」의 지적 탐구면은 부정되고 유교적인 교양없이도 오직 「守心正氣」의 내면적 수양만으로 누구나 「道成德立」하여 「君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최제우 자신의 「惟我之更定」한 바 「守心正氣」의 수양법은 유교・불교뿐만 아니라 「天主」등 보편자를 만인이 주체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소외되었던 서민들이 「侍天主」신앙을 통해 우선 인격적 자기동일성을 얻고 자아를 자각하여 個人格의 존엄성의 바탕을 가질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그의 侍天主사상은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각기 普遍者 天主를 내면화하게 되고 따라서 양반과 서민, 대인과 소인의 본질적 차등은 인정할 수 없게 되어 만인이 군자가 될 수 있는 인간평등의 이념이기도 했다.


「네 몸에 모셨으니 捨近取遠한단 말가」  <교훈가>


天主를 멀리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이 「네 몸에 모셨으니」가 곧 그의 「侍天主」의 본뜻이다. 각 개인이 「天主를 모신다」는 것은 첫째로 각 개인이 侍天主의 인격적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는 뜻과 둘째로 天主를 모시는 侍天主신앙을 통해서 비로소 인격적 존엄성을 얻게 된다는 두가지 뜻이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는 西學에서와 같이 天主를 멀리 천당에 계시다든가 초월적인 존재로 인정하여 「徐近取遠한단 말가」와 같이 멀리 구하지 말고 각자가 스스로 천주를 모신 주체임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최제우의 단계에서는 아직 인간이 곧 天이라고 하는 「人卽天」 「人乃天」의 범신론적인 범천주의에까지 철저화되지 못하고 그의 「侍天主」는 아직 인간위에서 만물을 主宰하는 上帝로서 혹은 「敬畏之心」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지고 때로는 천주를 모신 신비적 체험의 종교적 자각상태에 머물렀다.


「무지한 세상사람 아는 바 천지라도 경외지심 없었으니」  <교훈가>


최제우의 사상이 갑오동학농민혁명에 있어서 사상적 역할을 한 것은 바오 이 점이다. 산발적인 農民亂속에서 동학사상은 농민대중을 侍天主신앙을 통해 자아의 자각을 가지게 했고 반왕조적 반항에 동원될 수 있도록 혁명적인 자의식을 가지게 했다. 즉 王朝下의 상민・천민등 농민들이 보국안민의 주체자라는 자각을 가지게 되는데는 東學의 侍天主신앙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侍天主」사상의 「侍」자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동학사상은 보다 근대적 인간관을 마련하게 되고 인간 이외의 자연계에까지 「天主를 모신것」으로 擴大시킬 때 범천론적인 자연존중사상이 싹트게 된다. 이 侍天主사상이 근대적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에 대한 사상적인 기초를 주고 대인관계를 가르쳐줌으로써 근대적 사회관의 선구적 사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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