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의 구원관 제시

(3) 그리스도교의 救援觀 提示


증산교에서는 그리스도교를 영혼만을 구원하는 종교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나누어 주시기 위해 세상만물을 창조하셨다. 당신의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영광을 위해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 중 인간은 특별한 위치를 지닌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26)라는 말씀처럼 하느님을 닮은 존재, 곧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인격은 육체와 영혼으로 하나인 존재이다. 인간은 진선미(眞善美) 자체이신 하느님을 닮았기에 진리를 알고 선한 것을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사랑의 내적관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시고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기 1,27-8)는 말씀처럼 우주의 중심이 되게 하셨다. 인간은 原初的인 거룩함과 의로움의 상태에 있었고, 하느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존재인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피조물이 궁극적인 완성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지혜와 사랑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 곧 섭리(攝理)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피조물인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하느님처럼 되려 함으로써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자유의지를 남용함으로써 하느님을 등지게 되었다. 인간의 완전성은 완전하신 하느님과의 관계안에 있을 때만이 가능하나, 그러한 관계를 거부함으로써 생명을 등지게 되었다.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게 됨으로써 피조계의 유한성에 예속되었고, 그리하여 죽음에로 치닫게 된 것이다. 


원래 하느님안에서 자연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게 되어 있었으나,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써 그러한 조화도 깨어지게 되었다. 죄악과 심각한 불평등 그리고 다툼과 재난이 생겨나게 되었다. 자연은 온갖 엉겅퀴를 내고 동물마저 인간을 해치려 들었다. 인간은 수고의 땀을 흘려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생명이신 하느님을 등지게 됨으로써 근원적인 죽음에로 이르게 되어 인간은 죽음앞에 허무한 존재, 죽음을 향해 치달리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죄악과 고통속에서 허덕이다가 죽음에 걸려 넘어져 버리는 우리네 삶은 하느님을 등진 죄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죄와 죄로 인한 파멸의 결과를 두고 보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친히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당신을 낮추시고 참으로 인간이 되시어,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고통받으시고 결국 십자가상의 죽음에 이르셨다. 그리고는 부활하셨다. 그 분은 참 인간으로 오시어 참 인간으로서 고통받으시고 죽으시고 그리하여 부활하심으로써 죄의 결과인 죽음을 물리쳐 주셨다. 원래 인간이 하느님과 누리던 친교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는 하느님만이 사해주실 수 있다. 인간의 죄는 하느님을 상대로 범한 것이기에 인간적 차원에서는 갚을 수 없다. 오직 하느님편에서만이 없애주실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은 하늘 아래 없습니다.”(사도 4,12) 인간의 구원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선물인 것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으로 말미암아 죽음앞에 사라져 버리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이셨던 것처럼 인간은 부활하여 하느님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존재, 거룩하신 성삼위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결국은 무덤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의미없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시의 상태, 곧 원죄 이전의 상태보다 더 영광을 받게 되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부활찬송(Exsulltet)에서는 첫 인간이었던 아담의 죄를 두고 “오 복된 탓이여!”라고 노래한다.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완전한 구원이 인간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도로 인해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에로 나아가는 문’이 되었다. 영혼만이 아니라 靈肉의 완전한 인간이 새로운 삶에로 불리게 되었다. 하느님을 밝히 알게 되어 至福直觀에 이르게 되었다. 인간은 죽음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모습을 따라 ‘변화된 모습으로, 영적인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복된 존재인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타종교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