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 믿음의 기대

   ㄹ.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성막을 위한 기대가 3차나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은 세울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제2차로 세우려던 실체기대를 조성하지 못하게 되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3.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ㄱ. 믿음의 기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이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웠던 미디안 광야 40년기간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 40일기간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함으로써, ‘날’을 ‘해’로 환산하여 광야를 떠돌아 다니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오는 40년기간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제3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이 광야 40년기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모시고 표류하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다시 돌아온 모세는,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민족적인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입장도 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ㄴ. 실체기대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 40일 노정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하고 불신과 반역으로써 실패하였으므로, 성막을 위한 기대는 여전히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제2차 노정을 위한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성막을 충성으로 받들고 모셧던 모세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는 여전히 남아져 있었기 때문에, 이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표류의 40년기간을, 변치않는 신앙으로 성막을 받들고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 정탐 40일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기대를 세우면, 그 때에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조성되는 동시에 성막을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과 순종으로,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빋드록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그 때에 제3차 민족적 가나안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실체기대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광야 40년 표류기간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제3차 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워가지고 제2차 노정에 그들이 모세를 받들고 성막을 건축하던 입장으로 돌아감으로써, 제3차노정의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기 위한 기간이었다.




      ㄱ)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받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잇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제2차 민족적 가나안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나타내셨던 3대 기적을 불신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그들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40일 시련기간을 거치게 하신 후에,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3대 은사를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또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하려 하였을 때, 라반이 야곱을 열번이나 속였던 것을(창세기 31장 7절1))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10재앙을 내리셨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또 이것을 분신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심으로써 3대은사와 십계명을 지키게 되면, 그들은 제2차노정에서 3대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을 출발하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민족이 믿음과 순종으로 모세를 따라 광야 40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온 후, 모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시고 받을었더면, 그들은 제2차노정에서 3대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을 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의 목적을 이루었던 입장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석판은 법궤의 축소체요 법궤는 성막의 축소체이므로 결국 석판은 성막의 축소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법궤나 성막은 석판이나 그의 뿌리 되는 반석으로써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가데스바네아를 출발하는 것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받들고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그 때에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짐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어떻게 이루려 하셨던가 ? 광야 40년기간을 뜻앞에 세우지 못하고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민수기 20장 4~5절2))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여가지고 그들에게 마시게 하셨다(민수기 20장 8절3)). 만일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한 번 쳐서 샘물을 내어 먹임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권능을 새로이 깨달아 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면, 그들은 모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서,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모세를 믿고 순종하여 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갔더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게 됨으로써, 제3차 노정의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는 백성을 보자, 격분하여 치밀어오르는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수기 20장 12절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모세는 이와 같이 한 번 쳐야 할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기대’도 이루지 못하게 되어, 드디어 약속받은 가나안 복지를 눈 앞에 바라보면서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민수기 20장 24절5), 민수기 27장 12~14절6)).


 우리는 이제 반석을 한 번 쳐야 하는 이유와, 두 번 친 것이 어떻게 되어 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겠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7)에서는 예수님을 흰 돌로 상징하였고, 한편 또 고린도전서 10장 4절8)을 보면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런데 타락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생명나무로 오신 분이시므로(요한계시록 22장 14절9)), 반석은 곧 생명나무이기도 하다. 한편 창세기 2장 9절10)의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있어서의 장차 오실 완성한 아담을 상징한 것으로서, 이 생명나무도 또한 반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반석은 그 완성한 아담을 상징하기도 하다.


 그런데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장차 반석이 될 그 아담을 쳐서 타락시켰다. 따라서 아담은 생명나무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창세기 3장 24절11)), 그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수 샘물을 영원히 그 자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반석도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모세가 지팡이로 치기 이전, 샘물을 내지 못하던 반석은 바로 타락된 아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사탄이, 장차 생명수를 낼 수 있는 반석으로 성장하고 있던 아담을 한 번 쳐서 타락시킴으로써, 그를 ‘샘물을 내지 못하는 반석’으로서의 아담이 되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샘물을 태게 함으로써, ‘샘물을 낼 수 있는 반석’으로서의 아담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려 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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