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역사발전 2

 




           5. 군주사회와 제국주의사회


 역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봉건사회 다음에 오는 것은 군주사회인 것이다. 그러면 이 때의 서구에 있어서의 정치면에서 본 군주사회는 어떻게 이루어졌었는가 ?


 서구에 이동된 게르만 민족이 세웠던 국가들은 모두 그 존립기간이 짧았으마, 프랑크왕국만은 오래도록 존속되었다. 프랑크는 서게르만의 한 부족이었는데, 그가 메로빙왕조를 세운 후, 기독교와 결합하고 로마문명을 흡수하여, 서구에다 게르만적인 로마풍의 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왕조가 몰락한 후 촬스․마르텔은 서쪽에서 침입한 아라비아인을 물리쳐 세력을 폈고, 그의 아들 피핀은 카롤링왕조를 세웠다. 피핀의 아들 카알대제는 일찍부터 성어거스틴의 ‘신국론’을 숭상하였었는데, 왕위에 오르자 그는 어거스틴의 ‘신국론’을 국가이념으로 하는 군주국가를 세우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카알대제는 주우유럽을 통일하고, 민족대이동으로 혼란된 서구를 안정시켜서 강력한 프랑크왕국을 확립하였었다.


 다음으로 종교면에 있어서 기독교봉건사회에 뒤따라 온 기독교군주사회는 <메시아를 위한 영적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세워졌던 국토없는 영적왕국사회 였다. 그리고 교황 레오3세가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고, 그에게 황제의 관을 수여하여 천적인 기업을 상속함으로써,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영적인 왕국과 정치적으로 형성된 프랑크왕국이 하나되어 기독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기독왕국시대는 구약시대의 통일왕국시대와 동시성의 시대였다. 이처럼 봉건시대에 뒤따라 왕국시대가 왔던 것은 봉건사회를 통합함으로써 더욱 큰 하늘편의 주권과 백성과 판도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천사장의 입장에서 실체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온 교황은 국왕을 축복한 뒤에 가인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하고, 또 국왕은 교황의 이념에 따라 메시아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하여 기독왕국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웠더면, 그 시대가 바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말세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 그 때까지 서로 타협을 보지 못하고 상충되어왔던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과제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왔더면, 그 때 바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하나의 이념을 중심하고 완전히 일치된 방향으로 발전함으로써, 이 터전 위에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왕국시대가 옴으로써 봉건시대는 그 때에 완전히 끝나야만 할 것이었다. 그러나 교황이나 국왕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됨에 따라서, 카알대제의 본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완강한 봉건제도의 기틀은 무너지지 ㅇ낳고 그 뒤 오래도록 존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여전히 서로 분립됨으로써,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도 여전히 분립되어 상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되어 카알대제는 원숙한 봉건제도의 터전 위에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그 장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실상 일개 대영주의 입장에 불과하였다. 기독왕국이 이렇듯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봉건제도는 점점 더 강화되어 정치면에서의 봉건계급사회는 전제군주사회가 일어날 때가지 번성하였다.


 17세기 중엽부터 봉건계급이 몰락됨에 따라, 지방으로 분할되었던 영주들의 권력은 국왕을 중심하고 중앙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권신수설을 정치이념으로 하고 군림한 국왕은 절대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같이 국왕이 봉건계급사회의 영주의 입장을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군주사회를 사실상 이룩하였던 것은 17세기 중엽으로부터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날 때까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종교사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군주사회의 귀추는 어떠하였던가 ?


 이 시대의 교황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고 세속화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심령적인 면에서 쇠퇴의 길을 밟아 가게 되었었다. 더구나 십자군 전쟁에 패함으로 말미암아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한편 또 교황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 갇힘으로써, 그들은 허명무실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이었던 기독교군주사회는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경제면에서의 발전과정을 보면, 봉건적 경제제도는 봉건적인 정치제도가 몰락되고 중앙집권화한 전제군주사회에 있어서도, 의연히 존속되어 프랑스혁명 때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농업경제의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본주의화해 가던 다른 경제면에 있어서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넘을 수 없었다. 즉 자영농민들도 봉건영주의 지배에 맞서기 위하여 국왕의권력에 의뢰하였으나, 그들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또 메뉴팩처의 경영자들도 봉건적인 분열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중앙집권의 국왕과 결탁하였으나, 결국 그들도 역시 봉건화한 상업자본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이 군주사회라면, 경제면에 있어서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은 무엇일것인가 ?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사회와 그 뒤에 따라오는 제국주의사회인 것이다. 국정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 특색인 것 같이, 금융자본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국정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의 특색인 것 같이, 금융자본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17세기 중엽 전제군주사회가 시작될 무렵부터 싹이 터, 영국의 산업혁명기로부터는 점차 원숙기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가 오게 된 것은, 봉건적인 경제제도에 의하여 확보된 작은 단위의 경제기대를 더 큰 기대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경제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본보기노정은 서구를 중심하고 이룩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논하는 제국주의도 서구를 중심하고 전개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서구에서 팽창된 제국주의사상은, 서구의 각 기독교국가로 하여금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지구의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획득하게 하였다. 이렇게 되어 세계는 급진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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