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은 무슨 뜻일까요?

 

‘임마누엘’은 무슨 뜻일까요?


1. 마태오 복음에서의  ‘임마누엘’


이사야 예언서의 예언 말씀, 즉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7,14)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께서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임마누엘임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성서에서 ‘천사’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천사는 하느님께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여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새로운 길로 인도합니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 이름을 갖는 사람의 전체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수아’를 희랍어로 번역할 때 쓰여진 것이며, 이 이름은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또 ‘구원’은 ‘죄에서의 해방’, ‘죄에 대한 용서’를 뜻합니다. 모든 인간이 처하는 죄, 구속은 결정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해방되기 위해서는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구원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 즉 임마누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부터의 구원’은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해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신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음을 직접 보여주는 구원의 징표인 것입니다.




2. 이사야 예언자의 ‘임마누엘’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는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임마누엘’의 예언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유다왕 아하즈에게 ‘하느님께 표징을 보여달라고 청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하즈는 ‘야훼 하느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며 표징을 청하지 않습니다. 성서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지 않고 ‘나는 표징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야훼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하는 그의 대답만을 놓고 볼 때 매우 경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하즈는 시리아와의 전쟁에 있어서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세운 정치적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경건을 가장하며 하느님을 벗어납니다. 즉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느님께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임마누엘’에 관한 예언을 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자신의 힘에만 의존하고, 실질적으로 힘을 주시는 하느님을 멀리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죄의 시작입니다. 우리들이 참으로 자유롭고 죄에서 해방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 마음을 모으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또한 내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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