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과: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파견하시다.

 

제 11과: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파견하시다.

1. 말씀읽기: 마태10,1-5

열두 사도를 뽑으시다 (마르 3,13-19 ; 루카 6,12-16)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다 (마르 6,7-13 ; 루카 9,1-6)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과 병자들을 고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선택받은 제자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요? 자신들이 예수님의 12명의 사도들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자랑거리였을까요? 하지만 뽑힌 목적은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명예를 위해서 살아가지 말고, 예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려고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악마와 모든 병고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할 의무도 아울러 받았습니다(마태10,7).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으로 자기들의 일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입증할 것입니다.



 사도들의 권한과 의무를 생각해 보면서 나는 의무보다는 권한에 더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의무에는 관심 없고 오직 권한만을 찾으려고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당에서는 봉사자들을 교육 합니다. 그래야 참된 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교육에 참례하지 않고, 본당의 힘든 일에는 참여하지 않고, 폼 나는 곳에만 얼굴을 내민다면 신자들은 그를 따르지 않습니다. 내 삶이 내가 전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사도들의 구성을 보면 단순한 어부들과 급진적인 열성당원과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불러 모으신 12명의 제자들은 유순하고 다루기 쉬운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학식이 출중하거나 사회적 지지도가 높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제자들은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됩니다. 교회의 초석이 됩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이름입니까? 모든 이들이 기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유다 이스카리옷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 또한 그런 모습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나라와 사탄의 영역간의 경계가 서로 밀접하게 붙어 있다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마음을 조금만 잘못 먹으면 곧바로 악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많은 경우 체험하게 됩니다. 마음을 조금만 잘못 먹으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막지 않으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하느님께서 그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신 것처럼, 하지만 가슴아파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보내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의지를 꺾지 않으십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마음을 조금 잘못 먹으면 곧바로 불신과 배신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행동에 대한 책임”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방인들에게는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구원은 유다인들로부터”라는 원칙을 예수님께서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유다인들로부터 시작하여 세상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세상 모든 이들이 구원되는 것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제한을 따르는 것이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순명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 하느님께 맡기는 삶을 보여주시는 것이고, 그것을 본받아 우리 또한 행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유대민족의 순수혈통이 아니라 이방인들과 혼혈이었던 사마리아인들은 유다교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민족으로서도 또 종교상으로도 서로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과는 언제나 사이가 나빴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서에 아름다운 예외가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루카10,25, 사마리아 여인-요한4장), 서로의 안 좋은 감정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적대감정은 1세기 말까지 계속되었고, 2세기 로마에 대한 혁명이 끝날 무렵부터 이 반목은 완화되고, 이윽고 같은 종교,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 가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또 있었을 것입니다. 내 믿음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하면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또 그들의 궤변에 내 믿음도 흔들리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에게 맞는 음식이 필요하듯이,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시기에 유다인들에게만 파견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교하러 나가서 힘 빠지고, 죄 짓고 오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신부님! 저 죄만 짓고 왔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구역의 글라라 자매 있잖아요. 지금 냉담하고 있는…,”

“네! 요즘 냉담하고 있지요!”

“성당 나오라고 했더니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간섭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보고 ‘자매님 걱정이나 하세요!’ 하더라구요.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그래서 말싸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감정상하고, 원수지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좀더 굳은 믿음을 청하며 기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전할 수 있는 내가 되 보려고 노력합시다.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선포는 말이 아니라 내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를 살아 갈 때, 비신자들은 나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선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웃으면서, 친절하게, 기쁘게, 진실한 마음으로, 내 것을 나누면서, 한번 참고, 정화된 말을 전하고, 손잡아 주며, 인사하며” 복음을 전한다면 모두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리고 엄청난 권한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제자들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병자를 고쳐 주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①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②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며, ③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④ 마귀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사도들은 하늘에서 받은 선물을 이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들어납니다. 그럴 능력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즉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고, 병자를 방문하고, 냉담자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저 주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해 주고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해 준 것을 기억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줄 때 계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있어야 줍니다. 해 주고 싶어도 아무것도 없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그 평화를 줄 수 있고, 가슴 한 가운데에 신앙이 넘쳐야 신앙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없으면 줄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주고 싶어도 못 줍니다. “주는 체”할 수 있지만, 그걸 받아 본 사람은 “아! 이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줄 수 있도록 영적인 것을 쌓기 위해 노력합시다.



 또 주고도 생색내지 않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해도 말로 다 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습을 통해서 다듬지 않으면 결국 말로 다 까먹는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자기자랑을 통해서“받을 상 다 받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① 전대에 돈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아야 하며, ② 여행 보따리나 여벌 옷도, ③ 신발도, ④ 지팡이도 지니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믿음만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간다는 것이 대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아무것도 지니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생활에 방해가 되고, 혹은 섭리에 대한 불신의 표시가 되는 것들, 혹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그러한 위험을 내포하는 쓸 데 없는 세속적인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가르치십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유다인은 속옷을 두 벌씩 입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만 입는 사람은 아주 가난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절대적 청빈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열 두 사도들은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대를 이은 후계자들에게는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탁발 수도회의 수도자라도 사람들이 베풀어 주는 빵을 넣기 위한 자루를 가지고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제들이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신자들이 무척 힘들어 할 것입니다. “이것도 준비해 드려야 하지, 저것도 준비해 드려야 하지, 인사이동 때 마다 준비해 드려야 하지…,” 하지만 그렇게 예수님 말씀처럼 살아갈 때, 엄청난 힘을 얻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에서는 지팡이는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지팡이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지팡이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는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 청빈. 지팡이 하나 가지고 있다 해서 그것이 결코 사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주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께서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기억하고 있는가?”를 늘 고민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의 선물을 돈을 받고 팔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선교사들의 생활을 당연히 돌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어 주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 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1코린9,11-14). 하지만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천막 짜는 부업을 갖고 계셨습니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마땅한 사람의 집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3일 정도는 그 집에 머물 수 있다고 합니다. 좋은 잠자리, 맛있는 음식을 찾아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다른 곳에만 관심이 있어!”하면서 그를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또 “내일부터는 저 집에서 머물겠습니다.”하면 집 주인이 많이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성의를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사람을 잘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신앙이 있고,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앞에서만 그렇게 보이고, 뒤에서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과감하게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를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축복한다는 것은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인사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보통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였습니다. “평화”란 성경에서 보면, 정신적, 물질적 축복을 의미하는 대단히 넓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나는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어떻게 축복해 주고, 어떻게 인사하고 있습니까?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는 기도로 청해 준 사람에게 머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치 못하면 그 평화가 기도를 드린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좋은 행동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평화를 빌어주고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만큼 평화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거나 야유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면서도 신앙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 제자들이 파견되는 곳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파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전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박해하거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발의 먼지를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고하고 또 권고해야 하겠지만 그에게 가서 오히려 신앙을 빼앗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됩니다. 오히려 멀리하는 것이 공동체에 유익이 될 때가 있습니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죄로 얼룩져서 결국 망해 버린 도시의 사람들이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신앙인은 신앙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신앙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내가 됩시다. 옳은 것을 이야기 하고, 좋은 것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말고 관심을 갖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전파합시다.



3.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며, 왜 와 닿았습니까?



② 제자들이 받은 사명을 기억하면서 내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③ 예수님께서는 가서 하늘나라가 다고 왔다고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누구를 찾아가고 있습니까?



4. 실천사항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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