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과: 바오로 사도의 1차 전교 여행

 

제 7과: 그리스도인

(읽어야 할 말씀: 사도11,19 – 12,25)

1. 말씀읽기: 사도11,19-26  안티오키아에 교회를 세우다

19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기도하는 사람들이고, 착한 사람들이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바르나바의 모습을 통해서 공동체를 돌보는 사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안티오키아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를 위해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기도하였듯이, 나의 기도가 필요한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진실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2.1. 안티오키아 교회와 바르나바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흩어진 신자들은 안티오키아에 많은 이들을 믿음에로 인도하였습니다.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안티오키아 교회가 커지자 예루살렘에서는 바르나바2)를 안티오키아 교회로 보냈습니다.




 안티오키아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습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격려하고 함께 기뻐해주니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더욱 신명나게 신앙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인도되었습니다(사도11,24).




① 사울을 찾아 타르수스로 가는 바르나바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돌볼 협조자를 구하러 타르수스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회심한 사울이 있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사울이 예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부르심이 자신을 통해서 열매 맺어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맡게 된 것은 예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께서는 바르나바를 통해 “회심 이후,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된 사울”을 선교일선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사목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팀이 필요합니다. 혼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신자들도 사제의 훌륭한 사목 협조자입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는 신자는 결코 사제의 사목 협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목은 신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고, 신앙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없는 봉사자는 사목자를 지치게 만들고, 잘못된 길로 빠지게 만들고, 공동체를 생기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목자에게는 반드시 사목의 협조자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바르나바는 잘 알고 있었고, 그 협조자로 사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봉사단체의 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단원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단원들은 도와주지 않고, 자신을 알아 달라고만 하고, 조금 한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고, 어려운 것은 안하려고 하면 그 단체는 참 어렵게 됩니다. 누가 장이 되어도 신명나게 기도하면서 기쁨에 넘쳐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게 단원들의 역할입니다.




 또한 사울에게 있어서 바르나바는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하나니아스의 도움으로 교회 안에 받아들여지는 첫걸음을 했으나 그 이후의 것들은 모두 바르나바 덕분이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지만 그가 참된 회심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바르나바가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사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안티오키아에서 타르수스에 있는 바오로를 먼저 찾아간 사람도 바르나바였습니다. 바르나바는 바오로를 이해해주고 바오로의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바오로의 친구, 영적 아버지, 사목 활동에 있어서의 스승, 사도직 활동으로 이끌어준 인도자인 것입니다.




②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티오키아 공동체에서(사도11,25-13,1) 그곳 사람들이 예언자로 인정한 인물들 중에서 바르나바는 첫째이고, 바오로는 제일 마지막이었습니다. 즉 바르나바는 선교의 책임자로 공적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그 중심이 바오로에게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에서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쳤고,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뭔가 그들의 행동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신자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충 하는 사람이나 비신자들은 “미쳤다.”고 말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안티오키아에 있는 비신자들이 보기에 신앙인들은 미쳐 보였을 것입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단식하고, 나누고, 서로 위로해주고 환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자기 가족처럼 돌보니 미쳤다고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저마다 형편에 따라 구호헌금을 하여 유다 지방의 신자들을 도왔습니다(참조: 사도11,17-30).




 의롭고 성령이 충만한 바르나바가 가르친 공동체라면 그들 모두 의로운 신앙인이었을 것이고, 성령이 충만한 신앙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즉 자신들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는 비신자들이 보기에 신자들은 이상해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바르나바가 얼마나 멋진 신앙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명인이 만들면 명품이 되고, 멋진 신앙인이 만들면 멋진 신앙공동체가 됩니다. 그리고 바르나바를 통해 바오로는 멋진 사목의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우리 본당 공동체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 공동체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에 대해서 반성을 해 보아야하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믿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비신자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성호경을 긋고, 유혹에 단호하며, 가장 우선순위에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신앙인으로서 사회생활하고, 신앙인으로서 우정을 나누고, 신앙인으로서 가족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첫 자리에 두기에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결국에는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의로운 신앙인들은 반드시 존경을 받게 되고, 또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자긍심을 느끼며,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 있기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긍심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면 서로를 존중하기 보다는 질투하고 비판하고, 더 나아가 분열을 시킵니다.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사랑 받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만이 형제자매를 존중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고, 상대방을 깎아 내리기 위해서 처절한 몸부림을 칩니다. 그렇게 공동체는 깨져 버립니다.




 세 번째, 신앙인들은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자선은 주머니에서 있는 것을 그냥 던져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선은 충동적으로 얼마를 내놓는 다기 보다는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금육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내가 먹고자 하는 것을 아껴서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데 있습니다. 금육을 지키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금육을 지키는 의미가 퇴색되고, 그것이 절대로 자선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봉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복사를 설 때나, 반주를 할 때는 봉헌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것이 몸에 익으면 자연스럽게 봉헌을 안 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봉사할 때 자신이 시간을 투자하고 땀을 흘린 것만을 생각하고 내어 놓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단체의 장이 되면 그 단체는 정말로 인색해집니다. 행사를 해도 단체에서 얼마를 내어 놓지 개인이 내어 놓지는 않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교통비라든지 자기 수고비를 따로 챙기고, 다른 이들에게는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말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나눔을 강조하고, 자신은 결코 내어놓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후임이 열심히 자신의 것을 내어 놓으면서 봉사하면 뒤에서 비방이나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인은 자선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내 것을 내어 놓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봉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망쳐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굳은 믿음을 가지고 서로 존중하며 자선을 베푼다면 비신자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비신자들에게 “성당 다니는 사람들도 별것 없더라고요!”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2.2.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헤로데 대왕의 손자인 헤로데 아그리빠 1세는 기원 후 37년경 로마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고 등장하였습니다.3) 그는 유다교의 율법을 철저히 시행하였으며, 유다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박해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예루살렘 공동체의 평온도 깨지게 됩니다. 유다인들이 야고보의 죽음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헤로데는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습니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는데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베드로 사도를 백성 앞으로 끌어내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2.3. 베드로가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남

 헤로데가 베드로 사도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4) 철저한 감시 속에 붙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감방에 빛을 비추고, 베드로를 깨우며 “빨리 일어나라.”(사도12,7)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천사는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그리고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하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습니다.




 천사와 베드로는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제야 베드로 사도는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사도12,11)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나온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주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감옥에서 끌어내 주셨는지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어서 “이 일을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알려 주십시오.”하고 이르고서,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교회의 청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시어 베드로 사도를 구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7,7-8)




 우리 공동체도 필요한 것들을 간절하게 청한다면 분명 이루어 주십니다. 나이가 들어서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교회를 잊어버린 노인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며 다가가서 그들의 기억을 되찾게 하고, 기도하게 만들고, 믿음을 가지고 주님 품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 준 공동체가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할 때, 하느님께서는 그 청을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믿음을 가진 공동체가 어떻게 성장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바르나바는 사울을 사목의 협력자로 삼습니다. 그렇게 함께 노력하여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만들어 놓습니다. 나는 어떻게 노력을 해야 내가 속한 공동체를 복음적인 공동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까?




②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리고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입니까?




③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기적적인 과정을 보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④ 우리 공동체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실천사항

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목의 협력자가 되어 공동체를 돌보기

② 그리스도인 공동체 만들기

③ 신앙생활 하면서 두려워하지 말기

④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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