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말라키 오모르(Malachy O’More)


 

성인명 – 말라키 오모르(Malachy O’More)

축일 – 11월 3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아마(Armagh)

활동연도 – 1095-1148년

같은이름 – 말라기, 말라끼, 말라끼아스, 말라키아스

 




 성 말라키 오모르(Malachias O’More, 또는 말라기 오므르)는 어느 교사의 아들로서 아일랜드의 아마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는데, 부모의 사후에 그는 은수자이던 에이마(Eimar)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25세의 나이에 성 켈수스(Celsus, 4월 1일)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리즈모어(Lismore)의 성 말쿠스(Malchus) 주교의 지도하에 학업을 계속하였고, 1125년에 코너(Connor)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즉시 교구민들에게 신앙심을 일깨우고 북돋우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1127년 비적들이 뱅거(Bangor)를 침략했을 때 그는 다른 수도자들과 리즈모어로 피했고, 거기서 또 수도원을 세웠다. 1129년 성 켈수스는 아마 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그 주교좌는 선임자 가문의 세습 관습 때문에 극심한 반발과 함께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성 말라키 오모르는 아마를 떠나 데리 수도원으로 갔다가, 로마(Roma)에서 아마와 카셀 주교좌의 대주교 문장을 받았지만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는 그를 아일랜드 교황 대사로 임명하였다. 이때 그는 아일랜드 최초의 시토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임무를 마치고 귀향하던 중 클레르보(Clairvaux)에서 병을 얻어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8월 20일)의 품에 안겨 운명하였다. 그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말라키와 꼭 같은 예언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1190년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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