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엘리사벳(Elizabeth)


 

성인명 – 엘리사벳(Elizabeth)

축일 – 11월 5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신약인물, 부인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이던 성 즈가리야(Zacharias)는 마리아의 사촌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의 남편이다. 그는 아비야 반에 속하는 제관으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어김없이 지키며 하느님 앞에 떳떳하고 올바르게 살았다. 그의 차례가 되어 분향하는 직책을 수행하던 중에 천사의 발현으로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탄생 예고를 들었다. 그는 이 사실을 의심함으로써 벙어리로 지냈고, 요한의 탄생 이후에 그의 혀가 풀렸다(루가 1장 참조). 전승에 의하면 그는 세례자 요한이 있는 곳을 대라는 헤로데의 명을 거절했기 때문에 성전에서 살해되었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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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성녀 엘리사벳(Elizabeth)

  1. user#0 님의 말:

    엘리사벳(elizabeth)

    축일 : 11월 17일

    1207년에 태어났다. 헝가리의 왕 안드레아의 딸로서 어린나이에 튀린지아의 루드비히 4세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았다. 천상 사정에 몰두하였으며, 남편이 죽은 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요양소를 세워 병자들을 돌보았다. 1231년 마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헝가리의 국왕 안드레아 2세와 안데크-메란의 젤뜨루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14세 되던 해에 투린지아의 백작, 루디비그 4세와 결혼하였다. 비록 이 결혼이 정치적 이유로 이루어졌지만, 화목하고 평화스러웠다고 하며, 6년 동안을 서로 만족스럽게 살았다. 그들의 집은 아이제나크 근교의 바트부르그성에 있었고, 자녀는 3명을 두었다. 그러나 1227년에 루드비그가 아뿔리아로 출정하는 십자군에 가담하였다가, 오트란토에서 급서하였다. 그 후 그녀는 온갖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자선활동에 전념키 위하여 집안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자녀들을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한 뒤에 프란치스꼬회 3회원이 되어, 세속을 떠났다. 이 때부터 그녀는 헤쎄의 마르부르그에 살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엘리사벳은 마르부르그의 콘라드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았는데, 그녀의 영적 생활은 날이 갈수록 풍요롭게 변화되었다. 누구나 놀랄 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깊은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쌌던 것읻. 그녀는 운명하기 4년 전에 자신을 쫓아냈던 시동생으로부터 성으로 돌아올 허가를 받았고, 또 그녀의 아들에게 백작을 승계시킬 수 있었다. 황후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직접 음식을 날라주고 옷을 지어 준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녀는 게르만인들에게서 가장 사랑받는 성녀가 되었다. 그녀는 불과 24년밖에 살지 못하고 마르부르그에서 운명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성 프란치스꼬 재속 3회의 수호성인으로 높은 공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1235년,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하여 시성되었고, 빵 제조업자 및 빵 집의 수호성인이다


    성녀 엘리사벳의 영적 지도 신부였던 마르부르크의 콘라트가 쓴 편지에서

    (Ad pontificem anno 1232: A.Wyss,Hessisches Urkundenbuch Ⅰ, Leipzig 1879, 31-35)


    엘리사벳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했다


      엘리사벳은 그때부터 덕행에 있어 특출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가난한 이들을 위로해 왔지만, 자기 궁 옆에다 병원을 짓게 하여 거기에서 온갖 종류의 환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어려운 이들을 돌보아 주는 데 온전히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 병원에 도움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기 남편의 관할 지역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도 혜택의 선물을 너그러이 나누어 주곤 했다. 그래서 자기 남편이 관할하는 4개의 영토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재원을 모조리 나누어 주고 심지어는 자기 귀중품과 값비싼 옷들마저 팔아 거기서 얻은 돈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

      하루에 두 번씩 즉 아침과 저녁에 모든 환자들을 몸소 방문하는 관례를 가져 가장 흉한 환자들을 직접 간호해 주었고 어떤 이들은 먹이고 어떤 이들에겐 침상을 마련해 주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업고 다니고 하여 자신의 자비심을 여러 형태로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생전에 남편의 뜻을 어긴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완덕에 더 가까이 이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와 자기가 문전 걸식을 하도록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어느 성금요일 날 제대보가 벗겨져 있을 때, 자기가 프란치스꼬회 회원들에게 기증했던 궁중 성당의 제단 위에 손을 얹고는 친한 벗들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세상의 모든 허영 및 구세주께서 복음에서 버리라 권고하신 모든 것들을 포기했다. 이렇게 한후, 남편과 함께 살 때 모든 이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던 그 곳에서 계속 머문다면 세상의 소란과 세속의 영광이 자기 마음을 끌어 잡아당길 그런 위험이 있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가 그것을 원치 않았는데도 나를 따라 마르부르크로 가기로 했다. 거기다 병원을 세워 많은 환자들과 불구자들을 모으고는 가장 버림받은 비참한 이들에게 식탁에서 시중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단지 그녀의 외부로 드러난 활동에 불과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그녀에 대해 이 말을 하고싶다. 이 여인만큼 관상에 깊이 젖어 들어간 이를 일찍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수사들과 수녀들이 여러 번 목격했듯이 그녀가 기도의 은밀함에서 나올 때 그 얼굴은 광채로 빛나 그 눈에서 태양 광선과 같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나는 그의 고해를 들었다. 남기고 가는 재산과 의류를 가지고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내가 물어보자, 자기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니고 모두 가난한 이들의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자기가 그때 입고 있던 낡은 옷을 계외하고는 (그 옷을 입고 묻히기를 원했다.) 전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달라고 간청했다. 이 말을 마치고 주님의 몸을 영했다. 그리고 나서 저녁 기도 때까지 자기가 전에 설교 말씀에서 들은 거룩한 이야기를 되새겼다. 마침내 열렬한 신심으로 주위에 모인 모든 이들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면서 평온히 잠들듯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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