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 마리아 피냐텔리(Joseph Mary Pignatelli)


 

성인명 – 요셉 마리아 피냐텔리(Joseph Mary Pignatelli)

축일 – 11월 28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신부

활동지역 – 에스파냐(Espana)

활동연도 – 1737-1811년

같은이름 – 요세푸스, 요제프, 조셉, 주세페, 쥬세페, 피나뗄리, 피나텔리, 피냐뗄리




 1737년 12월 27일 에스파냐 북동부 사라고사(Zaragoza)에서 칼라브리아(Calabria)의 몬텔레오네(Monteleone) 공작 가문 출신의 아버지 돈 안토니오(Don Antonio)와 에스파냐 백작 가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성 요셉 마리아 피냐텔리(Josephus Maria Pignatelli)는 16세 때에 타라고나(Tarragona)의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칼라튜드(Calatyud)와 사라고사 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일생 동안 그를 괴롭힌 결핵에 걸렸다. 1762년 사제품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감옥에서 죄수 담당 신부로 활동하였다. 특히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들을 자애롭게 돌보아 \’사형수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1767년부터 에스파냐 예수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났을 때 원장직을 물려받은 그와 동료들은 그들의 수도회를 포기하도록 종용받았으나 거부하였다.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가 에스파냐의 강력한 요구에 굴복하여 예수회의 해체를 선언했을 때, 그는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로 은거하여 약 20년 동안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예수회 역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여기서 그는 백러시아(White Russia, 오늘날의 벨로루시) 선교를 위한 수련소 허가를 교황청으로부터 받아내어 후보자를 양성하는 한편 예수회의 재건과 쇄신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는 실제로 1807년 사르데냐(Sardegna)의 예수회 관구를 회복시켰고, 로마(Roma)와 티볼리(Tivoli) 그리고 오르비에토(Orvieto)에서도 그 기초를 공고히 하였다. 그러던 중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1811년 11월 11일 로마의 산 판탈레오네(San Pantaleone)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그렇게도 원하고 또 노력하였던 예수회의 재건은 1814년 8월 7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교서로 발표되었다. 그는 1933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4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한편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일컬어 \’예수회의 재건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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