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명 – 요한(John)
축일 – 12월 4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신부,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 다마스쿠스(Damascus)
활동연도 – 650?-754년
같은이름 –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Joannes)은 그리스 교부로서는 마지막 인물로 그리스도교적 아리스토텔레스 학풍을 개척한 분이며, 성 로마누스 작곡가(Romanus the Melodist)와 더불어 동방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아랍인들이 635년 다마스쿠스를 정복한 후 마호메트의 후계자인 칼리프들의 치하에서 전 생애를 보냈지만, 성 테오도루스 스투디테스(Theodorus Studites, 11월 11일)와 더불어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고, 성상 공경 논쟁이 가장 극심하던 시기에 끝까지 성상 공경의 정당성을 펼쳤던 위대한 교부이다.
성 요한은 그의 대표작인 “올바른 신앙에 관한 해설”에서 교회의 가르침 곧 하느님과 창조, 인간론, 그리스도론, 마리아론, 성인 공경과 성화 공경, 구원론, 종말론을 100장에 걸쳐 다루었다. 이 저서는 서방 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의 \”신학대전\”에 버금가는 역저로 동방 교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교육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때의 다마스쿠스는 아랍인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칼리프들은 다마스쿠스를 정복한 후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펼쳤다. 성 요한의 가문은 몇 세대에 걸쳐 국가 재정을 담당하는 고위 관리였고, 이 직책은 세습제였다. 그래서 요한은 유아세례를 받고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부친이 직접 그에게 교육을 시키고, 말 타는 법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부친 외에 요한은 코스마(Cosmas)라 부르는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코스마는 그에게 여러 학문을 가르쳤는데, 특히 신학을 강조했다. 장성한 요한은 부친의 직업을 계승하여 국가의 관리가 되었다. 그는 궁중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교적 덕행, 특히 겸손한 자세로 많은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가 이토록 훌륭하게 성장한 것은 그의 스승 코스마의 덕분이었다.
그러나 후임 칼리프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포기하자 더 이상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고위 관직을 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직하고 코스마와 함께 예루살렘 근처의 마르 사바(Mar Saba) 수도원으로 가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곳의 분위기는 아직도 성상 공경 문제가 쟁점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도자들 가운데에서도 그들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어쨌든 요한과 코스마는 책을 저술하거나 찬미가를 짓는 등의 일을 하면서 이곳에 정착하였다. 장상과 다른 수도자들의 냉대와 질시 속에서도 그는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롭게 처신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성모님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성모님은 그의 스승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한다. “그대의 제자에게 많은 책을 쓰고 또 아름다운 시를 쓰도록 허락하여라.” 이때부터 요한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성서와 교부 문헌 연구 및 저술 활동에 할애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다마스쿠스 거리로 나가 광주리를 팔았다고도 한다. 이때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요한 5세는 그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먼저 코스마를 마유마의 주교로 축성하고, 성 요한은 사제로 서품하여 예루살렘으로 불렀다.
그런데 코스마 주교는 죽을 때까지 주교로서 양떼를 돌보았으나, 성 요한은 이내 수도원으로 되돌아와 자신의 저술을 다시금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다듬었다. 이때부터 그의 저서는 도처에서 읽혀졌으나 반대자들의 질시 또한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요 시인으로서의 삶을 마치고 754년 12월 4일 고령으로 선종해서 마르 사바 수도원에 묻혔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0년 8월 19일 교령에서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축일:12월 4일
7세기 후반 다마스커스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훌륭한 철학교육을 받은 후 예루살렘 근처의 성 사보소 수도원의 수도자가 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특히 성상 파괴를 주장한 이들을 거슬러 많은 신학서를 저술했다. 8세기 중엽에 세상을 떠났다.
요한은 자기 생애의 대부분을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성 사바소 수도원에서 보냈으며, 회교도의 규율 밑에 있던 그의 생애는 참으로 그 규율에 의해 보호를 받았다. 다마스커스에서 태어난 그는 고전과 신학 교육을 받았으며 정부 관리로서 아랍인들을 다스리던 아버지를 계승했다. 몇 해 뒤에 그는 관리직을 사임하고 성 사바소 수도원으로 갔다.
그는 세 가지 분야에서 유명하다.
첫째로, 그는 성상의 공경을 반대하는 성상 파괴주의자들에 대한 글로 잘 알려져 있다. 역설적으로 성상 공경을 금지한 것은 동방 교회의 그리스도인인 레오황제였는데 요한은 모스렘 영토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자들이 그를 모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 희랍 교부들-그는 마지막 교부이다-의 총서인 그의 ‘정통 신앙론’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동방 교회에서는 서방 교회의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견줄 만한 책이다.
셋째로, 그는 시인으로서 유명한데 로마누스 멜로디스트와 함께 동방 교회의 가장 위대한 두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그의 신심과 마리아의 축일에 관한 그
의 설교도 잘 알려져 있다.
요한은 성상 공경에 대한 교회의 이해를 옹호했고 다른 여러 가지 논쟁들에 대하여 교회의 신앙을 설명했다. 그는 30년 이상을 이러한 옹호론과 다른 저술로써 기도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그의 성덕은 문학적으로 뛰어난 재능과 설교 안에 그대로 나타난다.
“성인들은 신학자이며 복음 사가인 요한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친구이며 하느님의 자녀요 상속자로서 영광을 받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서 당신의 자녀가 되는 힘을 주셨다….’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미리 선포한 모든 사도들,순교자들,고행자 및 의인들의 생활방식을 상세히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사랑,희망,열성,생활,고통중의 인내,죽음에까지 이르는 끈기 등과 비교해 보고 그들을 본받음으로써 우리도 영광의 월계관을 나누어 받을 수있는 것이다.” (정통 신앙론,제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