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명 – 아이슈타인(Eystein)
축일 – 1월 26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대주교
활동지역 – 니다로스(Nidaros)
활동연도 – +1188년
노르웨이(Norway)의 국왕 잉게(Inge)의 전속 사제였던 성 아이슈타인은 1157년 니다로스(현재의 트론헤임, Trondheim)의 제2대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그 후 로마(Roma)로 순례의 길을 떠나 1161년까지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귀족들의 간섭을 물리치고 자유롭게 노르웨이의 교회를 지도하였고, 그 당시 유럽의 교회관습들을 노르웨이 교회에 적절하게 이식하여 큰 공헌을 쌓았다. 또한 그는 교황 대사로도 활약하면서 성직자들의 공동생활을 유도하고, 또 이에 알맞은 규정을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노르웨이 성직자들은 독신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성 아이슈타인은 자국 내의 정치 문제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가 국왕 마그누스(Magnus)의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스베레(Sverre)란 사람 때문에 잠시 영국으로 피신하여 성 에드문즈버리(Edmundsbury)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아마도 그는 이곳에서 노르웨의 성왕 올라부스(Olavus, 7월 29일)의 성인전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인전의 원고는 영국에서 발견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주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캔터베리의 성 토마스 베케트(Thomas Becket, 12월 29일) 성당을 참배했기 때문이다. 그는 1183년에 스베레와 화해한 뒤 고국으로 돌아왔고, 몇 년 뒤에 운명하였다. 그의 유해는 니다로스 대성당에 안장되었고, 1229년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