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명 – 플라비아노(Flavian)
축일 – 2월 18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총대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 +449년
같은이름 – 플라비아누스, 플라비안
콘스탄티노플의 사제이며 경리 담당이던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리비아노)는 447년에 성 프로클루스(Proclus, 10월 24일)를 계승하여 총대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러나 그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3세의 대관식에 특별 선물을 보내라는 크리사피우스(Chrysaphius) 재상의 제안을 거부해서 큰 공경에 빠진 적이 있었다. 또 448년에 그가 소집한 회의에서는 크리사피우스의 대부이던 에우티케스(Eutyches) 원장의 가르침이 이단이라 하여 단죄하고 사제직을 박탈하여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에우티케스는 이에 불복하여 로마(Roma)에 상소했으나 교황 대 레오 1세(Leo I, 11월 10일)는 정통교리를 고수하고자 노력한 성 플라비아누스의 용기를 격찬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레오의 책\”(Tome of Leo)으로 전해오는 유명한 문서이다.
황제 측은 이에 분개하여 에페수스(Ephesus) 공회의를 소집하였지만 교황은 이를 \’불법 시노드\’로 단정하였다. 황제의 측근들은 성 플라비아누스를 몰아내고 리디아(Lydia)의 히페페(Hypepe) 감옥에 투옥시켰다. 그는 그 후 얼마 뒤에 운명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순교자로도 불린다. 왜냐하면 황제 측근 군사들에 의한 심한 고문과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Chalcedon) 공의회에서 성 플라비아누스는 성인이자 순교자로 선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