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그레고리오(Gregory)


 

성인명 –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 – 3월 9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주교, 교부, 신학자

활동지역 – 니사(Nyssa)

활동연도 – 335?-395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성 바실리우스(Basilius, 5월 30일)와 성녀 엠밀리아(Emmilia, 5월 30일)의 아들로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태어나 그의 형인 성 대 바실리우스(1월 2일)와 누나인 성녀 마크리나(Macrina, 7월 19일)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에 수사학자가 되어 테오세베이아(Theosebeia)와 결혼하였다. 그는 수사학 교수가 되었으나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1월 2일)의 영향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한 후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아르메니아(Armenia)의 니사 교구의 주교가 되었으나, 아리우스파(Arianism)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폰투스(Pontus)의 집정관으로부터 교회 재산을 남용했다는 무고를 받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도망쳤는데, 그라티아누스(Gratianus) 황제가 그를 다시 복직시켰다. 379년 그는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을 단죄한 안티오키아(Antiochia)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이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아라비아의 이단들을 척결하도록 파견되었다. 또한 그는 381년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도 참석하여 아리우스(Arius) 이단을 공격하고, 니케아(Nicaea) 선언문을 재확인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서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자로 칭송을 받았다. 그는 오리게네스(Origenes)와 플라톤(Platon)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학자로서 많은 논문을 남겼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680-681년)는 그를 \’교부들 중의 교부\’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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