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명 – 엠마누엘 루이스(Emmanuel Ruiz)
축일 – 7월 10일
성인구분 – 복자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860년
같은이름 – 에마뉘엘, 임마누엘
크림 전쟁(Crimean War) 후 파리(Paris)의 의회는 터키에 대하여 오토만 황제의 어떤 개혁, 즉 터키 내의 소수집단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올바른 대우를 요구하였고, 1856년에는 술탄이 칙령을 내려 제국 내의 모든 신하들은 인종과 종교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의 자유가 확대되고 화해 무드가 조성되던 중, 1860년에 어느 청년 그리스도인과 힌두교인 사이의 논쟁이 화근이 되어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그 해 5월 30일과 6월 26일 사이에 레바논(Lebanon) 전역에서 6천 명 이상의 신자들이 살해되었다. 잘레에서는 5명의 예수회원이 목 졸려 죽었고, 다일 알-카말에서는 마로니트 수도원의 원장이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만행 끝에 순교하였고 그곳의 수도자 20명은 도끼에 맞아 죽었다. 7월 9일에는 이 불길이 다마스쿠스(Damascus)로 옮겨 붙었다.
그 당시 엠마누엘 루이스는 프란치스코회의 원장이었는데 모아브인(Moabite)들의 급습을 받고 성당으로 피신하였으나 곧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죽는다.”고 말하고 제대 앞에서 도끼에 맞아 순교하였다. 또 프란치스코 마삽키(Franciscus Masabki)는 70세 된 노인이자 그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분으로 프란치스코회를 적극 후원하였다. 이들은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서 복자품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