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프란치스코 마삽키(Francis Masabki)


 

성인명 – 프란치스코 마삽키(Francis Masabki)

축일 – 7월 10일

성인구분 – 복자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860년

같은이름 – 방지거,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크림 전쟁(Crimean War) 후 파리(Paris)의 의회는 터키에 대하여 오토만 황제의 어떤 개혁, 즉 터키 내의 소수집단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올바른 대우를 요구하였고, 1856년에는 술탄이 칙령을 내려 제국 내의 모든 신하들은 인종과 종교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의 자유가 확대되고 화해 무드가 조성되던 중 1860년에 어느 청년 그리스도인과 힌두교인 사이의 논쟁이 화근이 되어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그 해 5월 30일과 6월 26일 사이에 레바논(Lebanon) 전역에서 6천 명 이상의 신자들이 살해되었다. 잘레에서는 5명의 예수회원이 목 졸려 죽었고, 다일 알-카말에서는 마로니트 수도원의 원장이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만행 끝에 순교하였고 그곳의 수도자 20명은 도끼에 맞아 죽었다. 7월 9일에는 이 불길이 다마스쿠스(Damascus)로 옮겨 붙었다.

 


 그 당시 엠마누엘 루이스(Emmanuel Ruiz)는 프란치스코회의 원장이었는데 모아브인(Moabite)들의 급습을 받고 성당으로 피신하였으나 곧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죽는다.”고 말하고 제대 앞에서 도끼에 맞아 순교하였다. 또 프란치스코 마삽키(Franciscus Masabki)는 70세 된 노인이자 그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분으로 프란치스코회를 적극 후원하였다. 이들은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서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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