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 대축일

모든 성인 대축일

11월1일 축일



모든 성인 대축일\’은 8세기에 켈트 지방에서 지내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오늘, 겨울의 문턱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지상에 있는 우리와 천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한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성인들의 축제를 지낸다. 우리는 성인들이 하느님 곁에 영원히 살아 있으며, 그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성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고, 이제 그들은 모두 하나의 도시, \”천상 예루살렘\”, 곧 참 행복 선언에 따라 산 사람들이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를 이룩한다. 그들은 천상의 교회이다.

우리의 행복은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성인들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본래의 인간 존재를 이룩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성인들의 축제를 지내며 홀로 거룩하신 하느님을 경배한다.

세상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았다. 모든 이는 그리스도의 뚫린 옆구리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 이런한 이유에서 성체성사는 성인들과 통공을 이루는 탁원한 자리이다. 성체성사는 주 예수님께서 성인들을 \”주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거룩하게\” 하신 바로 그 자리이며, \”현세의 나그네 식탁에서 천상 고향의 잔치에 가게\”하여 달라고 겸손하게 하느님께 청하는 자리이다.



묵시록에서 요한은 우리에게 천국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곳에는 하느님의 종들이 하느님과 어린양 앞에 서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굶주렸지만 이제 배부르게 되었고, 힘들여 일한 이가 얻는 휴식과 순교자가 받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또 근심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안전하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생명 자체이신 분을 만났을 때 얻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평화이다. 그곳에는 불안도 없고 희망에 대한 의심도 없다. 기쁨의 축제가 끝없이 계속될 뿐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듯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삶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인들과 모든 믿는 이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생명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하느님을 알게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고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여기에 있다. 그 문은 가난한 사람들, 미천한 사람들, 겸손한 사람들, 옳은 일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만이 통과할 수 있다. 이 참된 행복은 이집트에서 고통을 겪던 히브리 백성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은 가난한 사람, 종, 박해받는 사람, 굶주린 사람, 억압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상황을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해방자가 오셨다. 그러므로 참 행복 선언은 또 다른 하나의 파스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해방의 선포이며 희망의 성취이고 가까이 다가온 새 시대의 선포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 희망을 잃고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들을 보호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Sermo 2: Opera omnia, Edit. Cisterc. 5 [1968], 364-368)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형제들에게로 서둘러 나아갑시다



  우리가 바치는 칭송과 찬양 그리고 오늘 지내고 있는 이 축일 자체마저 성인들께는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드님의 진실한 약속에 따라 하늘의 아버지에 의해 영광에로올림받은 이들에게 우리가 바치는 지상적 영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의 영광을 널리 전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보탬 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인들은 우리가 바치는 영예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공경심으로 그들에게 바칠 것이란조금도 없습니다. 그분들을 기억하며 존경심을 바치는 것은 우리 편의 유익이지 그분들의 유익이 아닙니다. 내 느낌을 솔직히 말한다면 내가 그들을기억할 때 마음속에 열렬한 욕망으로 불타 오름을 느낍니다.

  성인들에 대한 기억이 우리 안에 일으키거나 자극시켜 주는 첫 소망은 그들과 동반자가 되고 복된 영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 같은 가쪽 성원이 되며, 성조들의 집회와 예언자들의 지위, 사도들의 모임과 무수한 순교자들의 군단, 증거자들의 무리와 동정녀들의 합창단에 한 자리를 얻어, 마침내 모든 성도들의 통교에 하나가 되어 그들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과거에 쁩힌 이들의 교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무관심합니다. 성인들은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의인들은 우리를 고대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체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의 게으름을 떨쳐 버리고 일어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위의 것을 찾고 그것을 향유하도록 합시다. 우리를 고대하고 있는 이들을 우리도 고대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로 서둘러 나아가며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는 이들과 마음의 열망으로 함께 하도록 합시다.그들과 함께 있는 것만 바라지 말고 열의와 뜻을 다해 그들이 현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인들의 행복과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을 염원합시다. 그들의 영광을 염원하고 열망하는 것은 결코 위험한 것도, 해로움이 되는 것도 아넙니다.

  성인들을 기념할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소망이 또 하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생명인 그리스도께서 성인들에게 드러내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드러내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중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그런 소망입니다. 우리의 머리이신 분은 아직도 실제 그대로 드러나시지 않으며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실 때의 그대로만 즉 영광의 관을 쓰지 않으신 채 우리 죄의 가시로 둘러싸여 드러나시기 때문입니다.우리의 머리께서는 가시관을 쓰고 계신데 그 머리의 지체인 우리가 호의호식한다면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화려한 옷은 그분께는 영예가 되지 않고 오히려 조롱 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사 오실 날 즉 그분의 죽으심이 더 이상 전파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역시 죽어서 우리 생명이 그분과 함께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께서는 영광 중에 나타나시고 당신과 함께 영광을 입은 당신의 지체들도 빛날 것입니다. 그때에 그분은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모시키시어 머리이신 당신처럼 영광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성을 다하여 이 영광을 회망합시다. 그러나 이 비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소망이 성취되고자 한다면 성인들의 전구를 간절히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신속히 그것을 청합시다. 이렇게 하여 우리 힘만으로써는 얻기 불가능한 것을 그분들의 전구로써 얻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saint, TN-saint-C11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