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명 – 펠릭스 2세(Felix II)
축일 – 7월 29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대립교황, 순교자
활동연도 – +365년
성 펠릭스 2세 대립교황의 행적은 혼란과 불확실 및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355년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교황 리베리우스(Liberius)를 밀라노(Milano)에 잡아놓았다가 트라스로 추방하였다. 이유는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의 정의를 찬성하였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를 단죄하라는 명을 거부한 것이었다.
이때 펠릭스는 로마(Roma)의 부제로서 3명의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들로부터 축성을 받고 교황궁으로 들어갔다. 펠릭스는 이 직을 수락하였으나 로마의 극소수 성직자와 신도들 그리고 궁중의 몇몇 관리들만 인정하는 교황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콘스탄티우스가 로마를 방문했을 때 리베리우스 교황의 사면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357년에 리베리우스 교황이 귀향하자 시민들의 환영은 열렬하였다. 펠릭스는 자신의 지위를 고수하려고 힘쓰다가 피신하였으며, 포르토(Porto) 교외에서 운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위대한 성인의 개인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로마 순교록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로마의 아우렐리아 가도에는 거룩한 교황 펠릭스 2세가 묻혀 있는데 그는 교황으로서 순교하였다. 그는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보전하려다가 축출되었으며, 비밀리에 보낸 자객에 의하여 토스카나(Toscana)의 체라에서 살해당하였다. 그의 유해는 성직자들이 몰래 거두어 장례 지냈고, 그 후 성 코스마(Cosmas)와 다미아누스(Damianus) 성당에 안치되었다.”
이런 내용을 보면 로마 순교록의 펠릭스는 리베리우스 교황의 생애와 뒤바뀐 듯도 하다. 1947년 이후 교황청 연감은 펠릭스 2세를 대립교황으로 분류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