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명 – 제르마노(Germanus)
축일 – 7월 31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오세르(Auxerre)
활동연도 – 378?-448년
같은이름 – 게르마노, 게르마누스, 제르마누스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378년경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 있는 오세르의 좋은 가문에서 출생하여 갈리아(Gallia)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후 로마(Roma)에 가서 법학을 공부하여 로마 시의 변호사가 되었다. 황제 호노리우스로부터 갈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6명의 고위 관리 중 하나로 임명받아 지방 장관으로 재직하였다. 내적 회개를 체험한 성 게르마누스는 관직에서 물러나 사제가 되었다.
오세르의 주교였던 성 아마토르(Amator, 5월 1일)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였고, 그가 사망하자 즉시 선출되어 418년 7월 7일 주교품을 받았다. 이때 그는 자신의 부인(로마에서 결혼한 에우스타키아)과 헤어져 엄격한 고행을 택하여 수도자로 생활하였다. 그는 투르(Tours)의 마르티누스(Martinus, 11월 11일)와 더불어 갈리아에 공동체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 당시 영국에는 이단인 펠라기우스주의가 퍼져 교회가 동요하고 있었다. 영국 주교들의 도움을 요청하자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 4월 6일)는 429년 성 게르마누스에게 영국으로 가도록 지시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영국으로 가는 도중 후에 성녀가 된 어린 시절의 제노베파(Genovefa, 1월 3일)를 만나 신앙 성숙을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는 영국의 이단들을 평정하고, 영국 군대로 하여금 픽트족과 색슨족의 연합 공격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승리는 ‘알렐루야 승리’라고 기록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성 알바누스(Albanus) 무덤 앞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승리의 기쁨을 하느님께 돌렸다. 그는 448년 7월 31일 라벤나(Ravenna)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 게르마누스는 여러 세기 동안 투르의 마르티누스 다음으로 가장 사랑받고 공경을 받는 프랑스 성인이다. 말과 행동과 기적의 능력이 뛰어난 성인으로서,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은 그를 일컬어 ‘갈리아의 기적의 게르마누스’라고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