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명 – 알트만(Altman)
축일 – 8월 8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파사우(Passau)
활동연도 – 1020-1091년
같은이름 – 앨트먼, 올트먼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 파더보른(Paderborn)에서 태어난 성 알트만은 파리(Paris)에서 수학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파더보른 주교좌 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그 후에는 아헨(Aachen)의 의회 의장 그리고 하인리히 3세의 전속 사제가 되었다. 1064년 성지를 순례하던 그는 팔레스타인의 사라센인들에 의하여 수많은 다른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가, 우정 깊게 사귀던 어떤 족장의 중재로 석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였다. 그 당시의 순례자들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 길에 나섰다.
그 태반이 병이나 어려움 때문에 숨지거나 혹은 사라센인들의 공격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던 때였다.
그는 10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파사우의 주교로 임명된 후 교구를 개혁하고 교육을 개선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사업을 착수하였다. 또 그는 괴트바이그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세웠으며, 다른 수많은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성직매매와 성직자 결혼을 금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쇄신 칙서를 강력히 시행하고자 했을 때 그는 대부분의 성직자들로부터 큰 반대를 받았고,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다.
그 다음 해 평신도 성직수여를 금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칙서에 대한 그의 지지는 자기 적들의 명단에 하인리히 왕을 추가하는 결과가 되어 주교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독일의 교황청 사절이 되었으나, 1081년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 자신이 재차 해임되어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괴트바이그 수도원에서 여생을 지냈다. 교황 레오 13세가 그의 공경을 확인하였다.

성인명 – 알트만(Altman)
축일 – 8월 8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파사우(Passau)
활동연도 – 1020-1091년
같은이름 – 앨트먼, 올트먼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 파더보른(Paderborn)에서 태어난 성 알트만은 파리(Paris)에서 수학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파더보른 주교좌 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그 후에는 아헨(Aachen)의 의회 의장 그리고 하인리히 3세의 전속 사제가 되었다. 1064년 성지를 순례하던 그는 팔레스타인의 사라센인들에 의하여 수많은 다른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가, 우정 깊게 사귀던 어떤 족장의 중재로 석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였다. 그 당시의 순례자들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 길에 나섰다.
그 태반이 병이나 어려움 때문에 숨지거나 혹은 사라센인들의 공격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던 때였다.
그는 10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파사우의 주교로 임명된 후 교구를 개혁하고 교육을 개선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사업을 착수하였다. 또 그는 괴트바이그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세웠으며, 다른 수많은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성직매매와 성직자 결혼을 금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쇄신 칙서를 강력히 시행하고자 했을 때 그는 대부분의 성직자들로부터 큰 반대를 받았고,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다.
그 다음 해 평신도 성직수여를 금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칙서에 대한 그의 지지는 자기 적들의 명단에 하인리히 왕을 추가하는 결과가 되어 주교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독일의 교황청 사절이 되었으나, 1081년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 자신이 재차 해임되어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괴트바이그 수도원에서 여생을 지냈다. 교황 레오 13세가 그의 공경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