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코르비니아노(Corbinian)


 

성인명 – 코르비니아노(Corbinian)

축일 – 9월 8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주교, 선교사

활동지역 – 프라이징(Freising)

활동연도 – 670/680?-725/730년?

같은이름 – 꼬르비니아노, 꼬르비니아누스, 꼬르비니안, 코르비니아누스, 코르비니안




 성 코르비니아누스(Corbinianus, 또는 코르비니아노)는 프랑스 파리(Paris)에서 남동쪽으로 45km 떨어진 믈룅(Melun) 근처 샤트르(Chatres)에서 프랑크 혈통의 아버지 발데키소(Waldekiso)와 어머니 코르비니아나(Corbiniana)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그는 아버지의 성을 따랐으나,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성 코르비니아누스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까지 사망하자 샤르트르에 있는 생제르맹(Saint-Germain) 성당에서 은수자로 생활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성덕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영적인 지도를 청하며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이런 번잡함을 피해 로마(Roma)로 갔고, 베드로(Petrus)의 묘지 근처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명성을 들은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 2월 11일)가 그를 주교로 서품하고 선교 임무를 맡겼다. 그는 바이에른(Bayern) 지방의 프라이징으로 파견되어 열렬한 선교사로서 활약하던 중 자신의 후원자이던 그리모알트(Grimoald) 공작의 결혼을 공적으로 반대하게 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왜냐하면 공작이 자기 동생의 미망인인 빌트루디스(Bildrudis)와 결혼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 코르비니아누스는 특히 그 미망인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그녀가 자신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발견하자마자 미란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리모알트가 전투에서 희생될 때까지 머물렀다. 그 후 성 코르비니아누스는 바이에른 지방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며 여생을 보냈고, 오베르마이스(Obermais)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는 725년 또는 730년 9월 8일에 바이에른 지방의 오베르마이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그가 세운 오베르마이스 수도원에 안치되었으나, 그의 계승자이자 전기 기록자인 아르베우스가 769년에 성인의 유해를 프라이징으로 옮겼다. 성인의 상징은 곰인데, 이 곰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이 쓴 가면이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이 글은 카테고리: saint, TN-saint-C9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성 코르비니아노(Corbinian)에 1개의 응답

  1. 9월8일 님의 말:

    <첫번째 그림> 얀 폴라크의 성 코르비니아노의 죽음이다.
    <두번째 그림> 프라이징의 성 코르비니아노(좌)와 부르고뉴의 성 시지스문도(우)이다.

9월8일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