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명 – 빅토르 3세(Victor III)
축일 – 9월 16일
성인구분 – 복자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1027-1087년
같은이름 – 빅또르, 빅똘, 빅톨
이탈리아 베네벤토(Benevento)의 란돌포 5세(Landolfo V) 왕자의 아들로 태어난 다우테리우스(Dauterius)는 억지로 결혼을 시키려는 부친의 뜻을 늘 반대하며 지내던 중, 부친이 1047년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은수자가 되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그를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갔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지내는 척 하다가 일 년 뒤에 다시 집을 뛰쳐나왔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일부로 고향 마을에 있는 성 소피아 수도원에 살면서 이름을 데시데리우스(Desiderius)라고 개명하였다.
그 후 그는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면서 방랑생활을 하였고, 살레르노(Salerno)에서는 의학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1053년에는 교황 레오 9세(Leo IX)를 도와서 노르만족과의 평화협상을 시도하였고, 다음 해에는 빅토르 2세의 궁에서 활동하였다. 1054년 그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원장, 교황청 대사 등을 역임했는데, 1058년에 교황으로 선출된 뒤에도 몬테카시노의 원장으로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는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재건하고, 유럽의 학문과 문화의 전당으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건축물과 예술 그리고 수도원의 규칙 등으로 특히 유명한 수도원이 되게 하였다. 그는 빅토르 3세란 이름으로 그레고리우스(Gregorius) 교황을 계승하여 1086년 5월 24일에 착좌할 수 있었지만, 황제 측의 농간으로 1087년 5월 9일까지 착좌하지 못 하였다. 이때의 대립교황은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였다. 그는 불과 만 4개월 동안 교황직에 있었다. 그는 1887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