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대철 베드로(劉大喆 Peter)


 

성인명 – 유대철 베드로(劉大喆 Peter)

축일 – 9월 20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소년,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Korea)

활동연도 – 1826-1839년

같은이름 – 베드루스, 유 베드로, 유베드로, 페드로, 페트로, 페트루스, 피터




 성 유대철 베드로(Petrus)는 역관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장남이다. 그런데 이 집안은 이상하게도 부자는 열심히 천주교를 믿는 반면, 모녀는 믿기는커녕 이를 반대하여 가정에 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고 신자들을 욕하기까지 하였다. 어머니가 “어째서 너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 베드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복종하겠으나 하늘의 임금, 만물의 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온순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어머니의 눈이 어두움을 한탄하면서도 어머니께 대하여는 언제나 지극한 효성을 보여주었다.

 


 박해가 일어나자 그의 마음속에는 순교하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이 일어났다. 당시 옥에 갇혀있던 부친과 여러 신자들의 본보기는 그의 마음에 불을 질러 놓았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체포된 후 하느님께 대한 열광적인 사랑에 끌려 1839년 7월경 관헌들에게 자수하였다. 재판관은 그의 집안 내력을 자세히 물어보고 신자의 자식임을 알게 되자 옥에 가두고, 배교한다는 말을 하게 하려고 어르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였다. 그리고 옥사장이 혹형을 대철에게 가하여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사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도 이 용감한 어린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루는 어떤 포졸이 구리로 된 담뱃대 통으로 그의 허벅지를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러면요, 이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 그러자 포졸들은 벌겋게 달군 숯 덩어리를 집어 들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대철이 “예” 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포졸들은 놀라서 물러나고 말았다. 다른 교우들이 그에게 “너는 아마 많은 괴로움을 당한 줄로 생각하겠지만 큰 형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말했다. 대철은 “저도 잘 알아요. 이건 쌀 한 말에 대해서 한 알 같은 것이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 후 고문을 당한 끝에 까무러친 그를 데려와서 다른 죄수들이 정신이 들게 하려고 허둥지둥할 때 그가 한 첫마디는 “너무 수고를 하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 해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해 형리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유 베드로는 문초받기를 1회, 고문 14회, 태형 6백대 이상과 치도곤 45대 이상을 맞았지만 항상 기쁜 얼굴로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관헌들은 어린 그를 공공연히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서 1839년 10월 31일 형리가 옥 안으로 들어가 상처뿐인 이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쥐고 목에 노끈을 잡아매어 죽였다. 이때 베드로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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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대철 베드로(劉大喆 Peter)에 1개의 응답

  1. 9월20일 님의 말:

    첫번째 사진은 – ‘성 유대철 베드로’ 부조석상

    공예가 고 이순석 선생 후기작
    배경은 한국 103위 성인 상징

    “장소와 사용되는 도구의 본질과 아름다움이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아 주며 미사의 성스러움을 드러내야 한다”(미사경본의 총지침 257항)

    성물은 신상 자체를 섬길 목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의 다양한 진리를 깨닫고 묵상하도록 정신과 마음을 들어 높이려는 의도에서 생겨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체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물은 실용을 넘어 종교적 체험으로 이끄는 예술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작가가 지닌 각기 다른 시각과 체험을 통해 표현되는 성물은 신앙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그런 점에서 공예가 고(故) 이순석(바오로·1905~1986) 선생의 성미술 작품들은 신앙의 대상으로 기능을 다하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돼 있다.

    이순석 선생은 자신이 다니던 본당마다 작품을 남겼다. 서울 중림동과 후암동, 청담동성당에서는 아직도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가톨릭성물이야기’에서는 청담동성당의 ‘성 유대철 베드로’ 부조석상을 소개한다.

    작품은 한 손에는 ‘천주’라는 글자가 보이는 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성인의 순교를 상징하는 칼을 들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아래에 보이는 별을 따르고 있는 형상이다. 배경에는 한국교회 103위 순교성인들을 상징하는 103송이의 무궁화와 휘광이 새겨져 있다.

    작가가 순교성인 중 가장 어린 성인인 유대철 베드로를 석상의 주제로 삼은 것은 본당 주보성인이기 때문이다. 청담동본당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지역에서 가장 활력 있고 중심으로 위치할 성당이 되기 위해 성 유대철 베드로를 주보성인으로 택했다. 이 선생은 어린 성인의 모습이 새겨진 거대한 돌을 성당 마당에 세워 성당에 오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풍요로워 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순석 선생의 후기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이 부조석상 작품에는 또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작품에 사용된 돌이 작품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1982년 성전증축공사를 하면서 터에서 나온 돌을 사용했다. 환경에 조화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이선생의 작품관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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