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이 아가타(李 Agatha)


 

성인명 – 이 아가타(李 Agatha)

축일 – 9월 20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Korea)

활동연도 – 1823-1840년

같은이름 – 아가다, 아가따, 이 아가다, 이아가다, 이아가타




 성녀 이 아가타는 서울에서 출생했고, 앞서 순교한 이광헌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회장과 권희 바르바라(Barbara)의 딸로서 온 가족이 함께 1839년 4월 7일에 체포되었다. 당시 80세의 할머니와 8세의 남동생은 석방되고, 이 아가타는 17세의 어린 처녀의 몸으로 부모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아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는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다. 당시 그녀의 집은 남명혁 다미아누스(Damianus)의 집과 이웃하여 있었는데, 배교자의 밀고로 양쪽 집안 식구들이 모두 체포되었던 것이다.

 


 이 아가타는 포도청에서 형조로 옮겨 갔다가 다시 처음 갇혔던 포도청으로 끌려왔다. 형조판서는 어린이들을 형조에서 심문하는 것이 법에 어긋난다는 구실로 남명혁 다미아누스의 아들과 이영희 막달레나(Magdalena)의 조카딸과 이 아가타의 남동생과 함께 포청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들은 부모와 헤어지기 싫어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포청에 끌려온 이 아가타는 주림과 목마름뿐 아니라 고문까지 거듭 당했는데, 3백 대 이상의 태장과 곤장 90대를 맞았다.

 


 형리들은 그녀에게 부모가 배교하고 석방되어 집에 돌아갔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때 아가타는 동생의 대답까지 대신하여 “저희 부모님이 배교를 하고 안하고는 그분들의 일입니다. 저는 늘 섬겨 온 천주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하며 자신의 신앙을 더욱 분명히 했다. 이 아가타는 9개월 이상이나 옥중에서 온갖 고통을 당했고 또 파렴치한 옥졸 손아귀에 혼자 갇혀 있었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순결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김 테레사(Teresia)와 함께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때는 1840년 1월 9일이요, 그녀의 나이는 17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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