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이경이 아가타(李璟伊 Agatha)


 

성인명 – 이경이 아가타(李璟伊 Agatha)

축일 – 9월 20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부인,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Korea)

활동연도 – 1813-1840년

같은이름 – 아가다, 아가따, 이 아가다, 이 아가타, 이아가다, 이아가타




 성녀 이경이 아가타는 원래 천주교를 믿는 시골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고, 장성한 후에는 궁녀를 감독하던 내시에게 속아서 출가하였지만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로부터 그 결혼은 교회법상 무효라는 선언을 받았다. 그래서 남편과 헤어졌지만 친정어머니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한영이 막달레나(Magdalena)와 그녀의 딸인 권진이 아가타의 집에 의지해 함께 살았다. 이 아가타는 같은 처지이던 그들과 함께 항상 기도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기해박해가 극에 달했던 1839년 6월 7일 어떤 배교자의 밀고로 잡혔는데, 포장은 그들의 성명을 물은 다음 같이 잡힌 한 막달레나만 옥에 가두고 권 아가타와 이 아가타는 이웃집에 남겨두고 지키게 하였다. 오래지 않아 그들을 감옥에 가두지 않은 이유가 밝혀졌는데, 배교자 김여상이 찾아가서 권 아가타를 감언이설로 꾀어 함께 도망치려 했기 때문이었다. 포졸들은 이러한 사실을 막기 위하여 이 이가타를 풀어주었다.

 


 한편 조정에서도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고 난 다음 관원을 파면시키고, 여러 포졸들을 귀양 보내고, 그들을 다시 체포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아가타와 권 아가타는 서울의 어느 초라한 신자 집에 숨어 있었는데, 함께 탈출했던 여종이 먼저 잡혀서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어 다시 붙잡히게 되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포청으로 압송된 이 아가타는 무서운 형벌을 받았지만 불굴의 인내심으로 형벌을 극복하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형조로 옮겨져서도 새로운 심문과 고문을 당하였지만 순교의 의지를 더욱 굳혔을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1840년 1월 31일 서울 당고개에서 27세를 일기로 순교하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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