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코(Dominic)


 

성인명 – 도미니코(Dominic)

축일 – 5월 12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은수자

활동연도 – +1109년경

같은이름 –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성 도미니쿠스(Dominicus, 또는 도미니코)는 도미니쿠스 드 라 칼차다로도 불리는 \’드 라 칼차다\'(de la Calzada)라는 말은 \’방죽 길\’이란 뜻으로 그가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순례 길을 개척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는 에스파냐 바스크(Basque) 지방의 비스케이(Biscay) 만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그는 수차례에 걸쳐서 발바네라(Valvanera)에 있는 베네딕투스 수도원에 입회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무뚝뚝한 그의 외모와 무식한 것이 수도자 생활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는 리오하(Rioja) 근방에 움막을 짓고 은수자로서 독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오스티아(Osti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5월 9일)가 그 지방에 설교하러 왔을 때 성 도미니코는 스스로 그를 수행하였고, 성 그레고리우스가 운명할 때까지 그와 함께 머물렀다.

 


 스승이 운명하자 그는 이전의 은둔생활로 돌아가면서 원래의 은둔소에서 멀지 않은 부레바의 황야에 은둔소를 세웠다. 그곳은 사도 성 야고보(Jacobus, 7월 25일)의 유해가 모셔진 경당으로 가는 순례자들의 통행로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원시림이 가득하고 매우 위험한 곳이라 통행하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다. 그는 이곳에 움막과 기도소를 짓고 살면서 원목을 베어내고 순례자들을 위한 좋은 길을 만들었다. 그의 노력은 성공적이어서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순례자들을 위한 좋은 길과 다리 그리고 대피소 등을 만들어 편익을 제공하였다. 그는 1109년경에 운명하였으며 그가 머물던 은둔소와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서 그 자체로 유명한 성지가 되었다.

이 글은 카테고리: saint, TN-saint-C5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