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명 – 알퀴노(Alcuin)
축일 – 5월 19일
성인구분 – 복자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요크(York)
활동연도 – 735-804년
같은이름 – 알뀌노, 알뀌누스, 알퀴누스, 알퀸, 앨퀸
영국의 요크에서 출생한 알퀴누스(Alcuinus, 또는 알퀴노)는 고향의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에드베르투스(Edbertus)의 지도하에 수학하고 부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767년경에 주교좌성당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의 지도하에 이 학교는 학문의 전당으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로마(Roma)를 방문한 후 파르마(Parma)에서 샤를대제(Charlemagne)를 만났고, 그의 초청을 받아 781년에 독일 아헨(Aachen)의 궁중에 학교를 세우고 왕의 스승이자 고문이 되었다. 796년에 그는 샤를대제에 의해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고, 그 이후 페리에르, 트루아(Troyes), 코메리(Cormery)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카롤링거 르네상스(Carolingian Renaissance)를 주도하는 힘이자 정신이었고, 프랑크 왕국의 왕실을 유럽 문화와 학문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는 제국을 통하여 문맹을 퇴치하였고, 초급 교육제도를 신설했으며, 7과목을 배우는 고등 교육제도, 삼학(문법, 수사, 논리)과 사학(산술, 음악, 기하, 천문학)을 근거로 한 교육제도를 만들어 중세 유럽 교육제도의 기반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고문(古文) 사용을 장려했던 알퀴누스는 뛰어난 신학자로서 794년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교회회의에서 단죄된 그리스도 양자론(adoptianismus) 이단을 반박하였다. 그는 성경 주해서도 저술하였고 지금도 수사학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요약\”(Compendia)의 저자로서 놀라운 언어구사와 함께 수많은 편지들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크게 발전시킨 학교 가운데 하나인 투르의 성 마르티누스에서 사망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바는 없으나 흔히 복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