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Ignatius de Loyola의 영신수련

 

Ⅲ. 영신 식별

1. 영신 식별이란?

 사도적 영성의 원천이며 그 대명사인 Ignatius 영성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라는 표어 아래 ‘활동 중에 관상하는’ 영성으로 불리는데, 그 핵심 주제는 영신 식별이다. 즉 聖 Ignatius 영성의 핵심은 영혼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마음의 움직임의 방향성을 감지하고 이해하면서, 하느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움직임을 식별하고, 거기에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열망을 강조하는 것이다. 과거 사백여년 동안 그리스도교 영성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 온 [영신 수련]에 실려 있는 두 묶음의 ‘선신과 악신을 분별하는 규범들’은 영신 식별에 관심을 가지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어 왔다. 이렇게 聖 Ignatius de Loyola의 [영신 수련]은 모든 이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향해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영신 식별의 실천적 지혜와 기술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어 왔다.

 이러한 이유에 의해서 많은 이들은 영신 식별에 관한 이해를 聖 Ignatius의 영신 식별의 범주에 국한시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영신 식별은 악의 영향을 떨쳐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따라 올바른 생활 양식을 찾아내고,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찾아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다. 희랍어로 ‘영신 식별’(διαχρισις πνευματον)이라는 말은 마음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을 살펴보고 그것들의 원천을 밝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움직임을 따라가도록 결정하는 과정을 뜻한다. 희랍어 διαχρισις와 라틴어 discernere 혹은 discretio는 원래 ‘구분하다’, ‘가르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1) 그러므로 영신 식별은 성서와 그리스도교 전통의 가르침에 합당한 어떤 구체적인 행동 양식을 찾고 선택하는 결정 과정을 의미한다. Ignatius의 [영신 수련]에서도 ‘식별’이라는 단어는 ‘선신과 악신을 분별하는 규범들’에서 사용되고, ‘선택’은 이 식별 규범들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사례이다. 그리고 Ignatius이 작성한 예수회의 「회헌」에서 영신 식별의 의미와 방법은 더 폭넓게 적용되고 응용된다.2)

 영신 식별의 의미, 과정, 실천적인 적용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개별적인 차원이거나 공동체의 차원이거나 영신 식별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노력이기에 그 근본 배경이 기도임에는 틀림없고, 기도와 더불어 진행되는 식별이야말로 참다운 영신 식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은 영신 식별이란 결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신 식별은 기도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심각하게 숙고하면서 그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고 찾으려는 근본적 열망이 없이, 그분의 현존을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구현하려는 의지가 없이, 영신 식별을 운운한다면 그것은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기도가 일상 중에 익숙해진 신앙 행위라면 영신 식별 역시 일상 생활에서 익숙한 신앙 행위가 될 수 있다. 영신 식별은 인내심, 꾸준함, 그리고 기꺼이 시간과 힘을 바치겠다는 관대한 마음을 요구한다. 끊임없이 주님의 현존을 찾으려는 참을성 있는 신앙심도 요구한다.





2. 영신 식별의 기준3)

① 훌륭한 식별에 대한 기준은 성서이다. 하느님은 성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2)

② 그 외에 교회와 수도회의 가르침이다.

③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 수행해야 할 책임 등의 관계에서 본다. 하느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봉사하려는 사람에게, 그분은 늘 평화 안에서 그리고 서서히 일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聖 Ignatius이 말하듯이 하느님께 진심으로 봉사하기를 원하는 영혼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맞추며, 하느님이 그 영혼 안에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그분은 소란을 일으키려 하지 않으시고 평화 중에 그리고 서서히 그 사람을 변화시키신다.

④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참 성장과 그분의 뜻에 대한 민감성의 성장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좋은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지도자의 역할은 우리 생활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건 안에서 하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동 식별자가 되는 것이다.



3. 영신 식별과 회심의 내적 체험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는 의미는 어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성령께서 보다 더 밀접히 활동하실 수 있도록 어떤 공간을 남겨 놓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어떤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의 뜻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 방해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 방해 요소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향한 개방성이 부족하거나, 이 뜻을 향해 우리의 관심을 이끌어 가는 내적 체험에 대한 인식 능력이 부족할 때 생긴다. 우리는 선택된 결정이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대변한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애썼음을 상기한다면 위안이 되기도 할 것이다.

 聖 Ignatius은 기본적으로 하느님께서는 개개인이 자신의 내적 체험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성찰하는 과정에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이는 바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실천적인 지혜로서 영신 식별의 기술은 회심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즉 각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사건들을 이해하면서 그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의도를 알게 된다. Ignatius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들(내면의 체험들)을 관찰하면서 영혼의 내부 현상을 배웠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내부 세계에 관심을 갖도록 자극시킨 주 요인은 그 모든 움직임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호기심이었다.

 현실적인 적응력과 박동감이 넘치는 Ignatius 영성의 한 가지 특징은 지성적으로 이해된 내부 세계에 대한 확신이 모든 영적 성숙의 기반이 된다는 점이다. 이 지성적 확신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표현되는데, 첫째는 지적 호기심이고, 둘째는 이 지적 호기심이 충족될 때 형성되는 진리를 향한 단호한 투신이다. 즉 영혼의 내부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영혼의 여러 현상에 대해 이해하도록 촉구하고, 지성적으로 이해할 때 얻은 확신은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4) ‘영신 수련’은 엄밀한 의미에서 회심을 위한 체계적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영신 수련의 체험은 피정자를 하느님을 향해 회심하도록 유도하고, 더 나아가서 이 회심의 체험이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하나의 통합된 과정으로 형성되도록 이끈다. 회심이란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바꾸는 결단을 의미한다. Bernard Lobergan의 분석에 의하면 회심의 과정은 네 차원으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지성적 차원의 회심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경험들을 하느님과 연관해서 이해하게 되는 지성관의 변화를 의미한다. 윤리적 차원의 회심은 자녀답게 행동하게 되는 윤리관의 변화를 의미한다. 감성적 차원의 회심은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이 움직여서 이에 응답하면서 이웃을 위해 삶을 영위하려는 행동 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종교적 회심은 하느님의 빛에 따라 자신과 이웃들, 그리고 하느님을 진정 존경하는 태도를 지니게 되는 신앙 양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회심은 어느 한 차원, 혹은 두 가지 차원, 혹은 네 차원 모두의 수준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이 회심이 단번에 급작스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영신 수련’이 이끌어 가는 회심의 과정은 마치 사다리를 오르는 상승의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존재와 삶의 다양한 차원들 사이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면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원추 꼴의 나선 운동과 같은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5) 여기에서 움직임이란 마음속에 일어나는 내적 충동들이 갖는 방향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영신 식별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들에 관심을 갖는다. 기도와 마음의 정화, 그리고 영적 지도의 도움으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들 중에서 어떤 것이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는 움직임인 가를 따져 보면서 이 움직임에 따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선 지적인 호기심은 내부의 느낌과 떠오르는 생각들이 단지 자기 자신이            라고 여긴다. 즉 내부의 움직임들에 대한 현실감이 없다.

 둘째, 자신에게 불안을 일으키는 느낌들과 생각들을 관찰하면서, 이러한 움직임들            에 대응해 보면서 내적 행동 양식을 배운다.

 셋째, 이렇게 내부의 느낌과 생각들을 대면하면서 자신의 내부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남을 발견한다.

 넷째,이때 자신의 내부 세계의 여러 움직임들(위안과 불안의 변화)을 현실로써 인           식하게 된다.   다섯째, 이러한 내부 세계의 여러 움직임들에 대한 현실감은           그 움직임들의 내용 그 너머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을 유발시키는 다양한 원천           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다.

 여섯째, 이 다양한 원천들 사이의 대립된 양상을 파악한다.

 일곱째, 인간이 지닌 다양한 열망들과 생각들의 역할을 파악한다. 즉 우리의 행동              에 구체적으로 미치는 영향들을 파악한다. 예를 들어,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열망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구체적 행동 양식에 영향을 끼친다.

 여덟째, 이러한 파악과 인식을 바탕으로 일상적 경험을 바라본다. 여기에서 역으              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올바른 열망을 지녀야 하는가를 알게 된다.

 아홉째, 모든 실천적 결심과 현실감의 핵심적 경험은 바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위              안, 혹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적 깨달음의 경험이다.

 열째, 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위안’이야말로 실천적 결정에 대해 하느님께서 인            정해 주시는 확인이다.



4. 영신 식별의 세 가지 단계6)

 하느님으로부터 빛을 구하는 첫째 단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성부로부터 파견되셔서 우리의 모범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삶의 빛에 비추어 식별하고자 하는 주제를 살펴보고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방향을 감지하는 단계이다. 영신 식별이 진정한 영적 자유로움 안에서 진행되기 위해서 기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개방되고,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반자로서 사도직에 헌신하기 위한 관대하고 아낌없는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도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강조하는 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혜로서 이제 식별하고 결정하려는 문제에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부탁드리는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하느님 말씀의 빛에 비추어 수집한 여러 정보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숙고하고 살펴볼 때 주님께서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올바른 식별을 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빛에 의해서 자신이 처한 구체적인 현실이 새롭게 조명되도록 성령께서 비추어 주시는 빛이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고 행하셨는가 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지금 여기에서 당신의 뜻을 찾고 있는 우리가 올바른 식별을 통해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어 주신다. 그러므로 이 빛은 자신의 깊숙한 내부에 비치는 빛으로서 내면 속에 숨겨진 여러 동기들을 환히 비추셔서 여러 다양한 생각들과 느낌들의 움직이는 방향을 들추어 주시도록 구하는 빛이다.

 둘째 단계는 식별하려는 주제에 대한 정보들을 살펴보는 단계로서, 수집된 정보들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눈으로 주의 깊게 고려해 보며, 동시에 관계된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문제를 살펴보는 단계이다. 식별의 마지막 단계에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도 중에 성찰하면서 필요한 정보들과 지식, 그리고 상황의 징표들을 올바로 읽어야 한다. 특별히 공동 식별인 경우에는 이 정보들이 합당한 경로를 통해 얻어진 것들이어야 한다. 즉 당면한 문제에 개입된 상황과 인물 모두에 대한 정보들이 충분히 나누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영적 자유로움과 관대함이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에 성실하고 솔직한 대화는 불가능하게 된다.

 셋째 단계는 결정한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확인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도록 구하는 단계이다.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여러 확인들을 찾아보는 것은 식별의 마지막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과정이 진행되는 각 단계에서도 필요하다. 각 개인이 영적 위안을 체험하거나, 공동체 전체에 성령께서 내려 주시는 내적 평화 등은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확인들이다. 식별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결정과 함께 구체적인 행동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도 다시 식별해야 할 가능성을 언제나 지니고 있는 결정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5. 영신 식별의 실천적 방법7)

5.1 영신 식별을 위한 조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방법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첫째,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어떠한 의도를 지니고 계시다고 믿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의도하고 계신가를 알아내는 방법은 그 자체로서 선하고, 보편적인 하느님의 뜻에도 일치하는 서로 다른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가능성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까의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관해 하느님께서 어떤 뜻을 지니고 계심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내적 경험과 의식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성찰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결코 우리의 경험 세계 바깥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표시를 찾는 방법이 아니다.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드러내신다.8)

 셋째, 우리 자신이 지니는 의향을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시기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지녀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자유로워야 한다. 사실상 무엇을 결정할 때 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하느님의 뜻을 성공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영향들을 의식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서, 그것들이 나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별히 절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면서 때로는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다음의 세 가지, 즉 문화와 주변 환경, 성령의 인도하심과 자만감 사이에 벌어지는 분열, 합리화를 유의해야 한다.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첫째, 우리는 누구나 어느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 우리의 사고 방식은 이 집단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느님의 뜻을 찾는데 있어서 그저 생각없이 자신이 속한 가족 관계, 친구 모임, 종교 모임 혹은 사회 조직 등의 집단의 사고 방식에 따라 깊은 숙고 없이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어느 집단이 지닌 선입견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 집단적 편견을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한 내적 체험들과 대비시키면서 그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다.

 둘째, 성령의 인도하심과 자만감 사이에 벌어지는 분열에 의해서 결정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많은 경우 과연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덧인가 하는 질문도 없이 그저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그 무엇을 원하곤 한다.

 셋째, 감정에 이끌려 결정을 내릴 때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합리화시킨다. 일반적으로 합리화는 자만감에서 생기고 때로는 내린 결정이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고 자축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들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을 의식함으로써, 비로서 그것들의 영향을 감소시킬 수 있고 만일 이들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저 아무런 성찰없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진정 자신의 내부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러한 방해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마음에 귀기울여야 하되 머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 우리 존재의 더깊은 차원인 마음과 접촉하게 되면 성령의 움직이심과 접촉하게 됨으로써 사고 방식, 염원, 느낌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분명히 마음의 차원에서 내리는 결정은 머리의 차원에서 내리는 결정과는 다르다. 머리는 좀더 주위의 환경, 죄스러움과 합리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 깊숙이에서 움직이시는 강력한 힘이시며 우리의 죄스러움보다 훨씬 강하다. 자신의 마음에 도달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가 지닌 피상적인 열망보다 더깊은 곳에서 들려 오는 하느님의 뜻을 들을 수 있게 해주신다.

 넷째,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면 이것을 행하려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열망은 그것들 알게 될 때 반드시 실천에 옮기겠다는 결심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제가 되거나 수도자가 되는 것 외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다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이 조건이 첨부된 상황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올바른 식별로 이끄실 수가 없다.

 다섯째, 다다른 결론은 물론 다른 경로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보편적 뜻과 모순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영신 식별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서, 윤리적 사고, 성서, 종교 사회적 권위 등의 경로를 통해 얻어지는 하느님의 뜻과 모순되는 그 어떤 것을 얻는 방법이 아니어야 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보편적인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어떤 이들을 움직여서 사회법에 대항하고 불복종하게 하시거나 양심을 통해 어떤 법의 조항을 거부하도록 이끄신다. 예수께서도 바로 이러한 분 중의 한 분이셨다.



5.2 결정하는 방법

 위의 조건이 충족되면 방법을 사용하기에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상 경험에서는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한 상태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이 결정의 방법에는 다섯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성찰한 문제를 정확히 서술하고 다음의 세 단계에서는 차례로 지성, 의지 그리고 감성을 서술된 문제에 적용하며 숙고해 본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내려진 결정에 대한 확인을 구한다.

 첫 단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찰해서 결정한 문제를 정확하게 서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지침이 필요하다. 첫째는 문제 자체가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서술되어서 내려진 결정을 실천에 옮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야 하며, 둘째로는 결정하려는 사항은 가능하면 하느님의 활동을 능동적으로 표현하고 내용이 긍정적으로 표현되면 도움이 된다.

둘째 단계는 지성을 사용해서 결정하려는 문제를 숙고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두 부분이 있는데, 첫 부분은 내릴 결정에 대해 찬성하는 이유들과 이에 반대하는 이유들을 의식의 수준에서 제시해 보는 것이며, 둘째 부분은 이 찬성의 이유들과 반대의 이유들을 평가해 보면서 어느 것이 성령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어느 것이 그렇지 못한 것들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결정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이유들을 성찰하면서 의지의 방향을 관찰하는 것이다.

성령의 빛의 도우심에 의해 조명된 이성을 활용해서 찬성하는 이유와 반대하는 이유들을 살펴보면 동시에 의지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어느 쪽으로 이끌리는가를 살필 수 있게 된다.

넷째 단계는 감성의 영역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그분의 영광에 보다 더 합당한 가능성에 더 감성적으로 이끌리도록 기도한다. 이렇게 지성, 의지, 감성을 작용하는 세 단계는 서로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다. 성령께서 지성을 비추어 주셔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게 해 주시고, 당신의 뜻을 향해 의지가 이끌리도록 인도해 주시며, 그리고 이 하느님의 뜻에 더 합당한 가능성에서 감성적 위안을 베풀어주시도록 청하는 것이다.

결정의 마지막 단계는 내린 결정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근본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잠정적으로 내린 결정을 일정 기간 동안 지켜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지성, 의지, 감성의 내적 체험을 관찰하면서 이 결정에 계속해서 이끌리는 가를 살피기 위해서이며, 둘째로는 식별하는 과정과 방법을 올바로 적용했는가를 살피기 위해서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위안이 따를 때 이것이 하느님께서 확인해 주시는 표시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성서에 근거한 내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공적 가르침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이는 성 聖 Ignatius의 「영신 수련」에 근거한 내용으로서, 이 기간에 경험하게 되는 영적 위안인 평화와 기쁨에 대해 세 가지의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이러한 내적 평화와 기쁨은 우리가 내부 깊숙이에서 자신과 만나게 될 때에만 기대할 수 있다는 것과, 둘째, 우리는 때때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은 감성적 위로는 결정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다른 요소들에 의해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영적 눈이 성령을 향해 열려 있다면 그 대답은 간단하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바로 세세한 삶의 자리에서 내려야 하는 작은 결정들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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