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보잘 것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보잘것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잠재력은 나보다 수십 배 더 커나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줘야 합니다. 작은 것 하나 하나를 실천해 나갈 때 어느 순간 커다란 그 무엇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도 작은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겨자씨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씨는 3-4미터의 나무로 자랍니다. 즉 처음에는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가지고 있는 힘으로 차차 크게 자라나 새들도 쉬려고 그 나무를 찾아올 정도로 커집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시초는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이지만, 후에는 그렇게 커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신앙인지만 내가 노력하고 하느님께서 끌어 주신다면 나는 커다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 나라가 어떠한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교는 밀가루에 섞여져 있는 누룩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은근히 숨겨진, 그러나 활발한 전파력을 가진 하느님의 힘인 것입니다. 이 힘은 점차로 퍼져 가, 모든 것을 변화 시킵니다. 밀가루가 누룩을 통하여 발효되어 향기를 풍기게 되듯이 복음에 따라서 변화된 나도 그렇게 향긋한 냄새를 풍길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희생과 봉사를 통하여 양식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는 누룩이 밀가루를 변화시키듯이 그렇게 내 옆에 있는 이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의 기쁨이 전해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누룩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그 공동체를 성화 시키고, 하느님 백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 사도가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 가정, 내가 속한 단체, 직장 등을 하느님 보시기 좋은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나는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으로 본당 공동체에 참여하여 본당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본당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고, 확장시켜 나가는 샘이 되어야 하고, 빛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선교 활동과 함께 밝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시작하셨고 또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 나라가 도래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기적과 마귀를 쫓아내신 기적들은 하느님 나라의 여명을 알리는 수많은 표징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하느님의 나라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식으로 오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만이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알게 되는 유일한 길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에 의해서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실재합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를 통해서 말입니다. 내가 작은 누룩이 되어 밀가루를 부풀리는 역할을 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커져 나갈 것입니다. 내가 작은 겨자씨가 되어 땅에서 썩을 때 하느님의 나라는 커져나갈 것입니다.
누룩이 된다는 것, 겨자씨가 된다는 것은 주변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누룩이 밀가루 안에 들어가 변화를 시키는 것처럼 나 또한 주님의 누룩으로서 형제자매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활동들에 있어서 나의 행동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어떻게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몇 명만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나에게 힘이 되는 존재는 바로 누룩으로서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입니다.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되면, 그도 나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공동체는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룩이 아니라 곰팡이와 같은 삶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누룩은 빵을 맛있게 만들어주지만, 곰팡이는 빵을 못 먹게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공동체에 있어서 어떤 존재입니까? 공동체를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부풀리는 누룩과 같은 존재입니까? 아니면 공동체를 상하게 하는 곰팡이와 같은 존재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