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신학적 근거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신학적 근거는 특히 사도 바울로께서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1,12-20)에 풍부히 나타나고 있다.


첫 세 구절은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시고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고 옮겨 주시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나게 해주심”(1,13-14)에 대해 천주 성부께 감사드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흑암의 권세’(13절) 즉 사탄의 나라와 정반대의 나라로 이해되고 있다. 사탄의 나라는 사람들을 굴복시켜 이루어지지만, 그리스도의 나라에서는 그와 반대로 사람들이 참된 ‘자유’를 얻는다.


나머지 구절들은 그 유명한 그리스도 찬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찬가는 바울로 이전에 구성된 것 같고, 여기서는 분석을 하지 않지만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우주적’ 중심성에다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한다. 세상 만물이 그분을 통해 ‘의미’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창조된 만물의 창작자이시며 또한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있다가 내일 말라 버리는 풀 한 포기조차 인간과 광대무변한 은하계와 마찬가지로 창조의 놀라운 계획안에서 존재이유를 갖는다. 그분이 성부의 완전한 ‘형상’이시듯이 세상 만물은 어떤 모양으로든 그분의 ‘형상’이다.


사도 바울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결코 신학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놀라운 운문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15-17절).


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이실 뿐만 아니라 끝이시기도 하다. 사실 그분은 만물을 존속케 하시며 모든 창조물의 마지막 목적지이신 당신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신다. 이것이 “만물은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라는 16절의 의미다. 모든 창조물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와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창조된 만물은 분명히 사람에 의해 다스려지고 또한 부추겨진다. 그러므로 이미 그리스도의 날인을 받음으로써 원천이신 그분께로 되돌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짊어져야 할 무한한 역할의 가능성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절대통치권’은 영신적인 내면 세계에 그칠 수 없고 모든 만물을 ‘흑암의 권세’(13절 참조)에서 건져내신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고 계시는 교회라는 특권이 부여된 ‘공간’을 바로 지금부터 갖고 계시다 :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18-20절).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의 형상은, 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실체를 통해 드러나는 그분의 통일된 생명력을 뜻한다. 즉 그분의 모든 풍부한 생명력이 그분 자신의 ‘연장’인 교회 안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 교회의 머리로서의 형상 – 또한 그분의 ‘절대통치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머리’는 ‘몸’의 모든 생명적 활동을 통합 조정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극단적으로 하게 되면 위험하다. 여기서 자문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 일반 신자들로부터 사목자들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구성원 전체가 항상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또 임금이신 그분의 ‘통치’에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있는지!


그리고 문맥 전체에 비추어 볼 때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권리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만물의 으뜸’(18절)이 되신다는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20절) 이룩하신 ‘만물’과의 ‘화해’가 교회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간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 과연 교회가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을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끔 할 수 있는 그런 확장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스도의 왕권은 교회 전체와 온 세상이 단지 기본논리상으로만 수긍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생활로써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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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신학적 근거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신학적 근거는 특히 사도 바울로께서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1,12-20)에 풍부히 나타나고 있다.

    첫 세 구절은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시고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고 옮겨 주시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나게 해주심”(1,13-14)에 대해 천주 성부께 감사드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흑암의 권세’(13절) 즉 사탄의 나라와 정반대의 나라로 이해되고 있다. 사탄의 나라는 사람들을 굴복시켜 이루어지지만, 그리스도의 나라에서는 그와 반대로 사람들이 참된 ‘자유’를 얻는다.

    나머지 구절들은 그 유명한 그리스도 찬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찬가는 바울로 이전에 구성된 것 같고, 여기서는 분석을 하지 않지만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우주적’ 중심성에다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한다. 세상 만물이 그분을 통해 ‘의미’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창조된 만물의 창작자이시며 또한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있다가 내일 말라 버리는 풀 한 포기조차 인간과 광대무변한 은하계와 마찬가지로 창조의 놀라운 계획안에서 존재이유를 갖는다. 그분이 성부의 완전한 ‘형상’이시듯이 세상 만물은 어떤 모양으로든 그분의 ‘형상’이다.

    사도 바울로는 이와 같은 사실을 결코 신학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놀라운 운문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15-17절).

    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이실 뿐만 아니라 끝이시기도 하다. 사실 그분은 만물을 존속케 하시며 모든 창조물의 마지막 목적지이신 당신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신다. 이것이 “만물은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라는 16절의 의미다. 모든 창조물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와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창조된 만물은 분명히 사람에 의해 다스려지고 또한 부추겨진다. 그러므로 이미 그리스도의 날인을 받음으로써 원천이신 그분께로 되돌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짊어져야 할 무한한 역할의 가능성이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절대통치권’은 영신적인 내면 세계에 그칠 수 없고 모든 만물을 ‘흑암의 권세’(13절 참조)에서 건져내신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고 계시는 교회라는 특권이 부여된 ‘공간’을 바로 지금부터 갖고 계시다 :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18-20절).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의 형상은, 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실체를 통해 드러나는 그분의 통일된 생명력을 뜻한다. 즉 그분의 모든 풍부한 생명력이 그분 자신의 ‘연장’인 교회 안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 교회의 머리로서의 형상 – 또한 그분의 ‘절대통치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머리’는 ‘몸’의 모든 생명적 활동을 통합 조정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극단적으로 하게 되면 위험하다. 여기서 자문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 일반 신자들로부터 사목자들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구성원 전체가 항상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또 임금이신 그분의 ‘통치’에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있는지!

    그리고 문맥 전체에 비추어 볼 때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권리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만물의 으뜸’(18절)이 되신다는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20절) 이룩하신 ‘만물’과의 ‘화해’가 교회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간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 과연 교회가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을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끔 할 수 있는 그런 확장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스도의 왕권은 교회 전체와 온 세상이 단지 기본논리상으로만 수긍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생활로써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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