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우구스티누스

7)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한분이신 하느님, 성삼이 동일 본질을 지닌 분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는 Co – substantial보다 Co – essential을 받아들인다. 그의 관심은 증명이 아니라 이해가 보다 큰 관심사였다. 즉 믿음이 전제된 것이다. 동방 교부와 달리 성삼에서 출발하지 않고 하느님의 일치성에서 시작된다. 즉 한분의 하느님에서 어떻게 세 위격이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려 하면서 이떤 종속론도 거부한다. 그는 이같이 성삼을 구분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의지, 한분이심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성삼의 역할을 무시하지도 않는다(양태론을 거부한다). 성삼은 항상 외적 행위에서 하나로 연루되어 있다. 그는 성삼의 본질적 관계에 대한 개념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즉 성부는 낳음을 받지 않았고, 성자는 성부에서 낳음을 받았다는 본질적 개념외에는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즉 관계에서만 구별이 있다. 그는 성삼의 내재적 삶을 인간의 의식에서 이끌어내어 유출한다. 가령 인간의 인식과정은 지성,기억,사랑(대상,마음,감수성)을 필요로 한다. 그는 세가지 비유를 만족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창조주 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 마음에는 지성,기억,사랑이 있지만 오직 삶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유추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한다. 인간 인식의 작용을 성삼의 일치와 동일시하는데에는 오히려 상이성이 더 많다. 지성, 기억, 사랑은 인간안에서 나눌수 있는 것이지만 하느님안에서는 나눌수 없고, 인간안에서는 이것이 독립적으로 활동하지만 하느님안에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성서와 그리스도교 이론은 하느님을 성삼으로 묘사하면서 하느님의 유일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런 신비 차원에 그의 이론이 영향을 준것도 사실이다. 그는 결국 이 신비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 도전적인 가르침을 전해준다. 아타나시우스 신경, 똘레도 공의회에서 그의 신학의 영향을 찾아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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