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구약의 하느님 이해의 종합적 결론

3.5. 구약의 하느님 이해의 종합적 결론

1. 구약의 하느님 이해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계속적으로 장소를 이동하며 생활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가능케해 주는 미지의 세력을 체험하고 자연스럽게 이를 하느님으로 공경하였고, 그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만사를 하느님께 돌렸다. 비록 그 것이 악일지라도. 즉 하느님을 만사를 통괄하는 실재로서 체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구약에서 일차적으로 인간의 선물체험이며 해방체험이다.
2. 아브라함이 체험한 하느님은 토재신이 아니라 대인신이었으며, 인격신이었다. 떠돌이였던 그들을 보호해주고 촉복해준 실재로서의 하느님은 이방인들처럼 어떤 장소의 신이 아니라 인간들의 신이었다. 그렇기에 어디든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존재하면서 권능을 드러내시며 인간과 함께 하시는 신이었다.
3.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즉 선조들의 하느님은 ‘길의 신’, ‘초원의신’으로 ‘엘’ 또는 ‘엘로힘’으로 불리웠다. 엘신은 이방인들의 만신전에서 임금으로 군림하고 있는 엘신의 이미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제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요, 세계의 창조주며, 우호적이고, 거룩하고, 인간에게 연민적이고, 품위있는 모습의 신으로서)
4.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약속의 신이었다. 이방인들의 신화에서 나타나듯이 신들은 인간들로 하여금 우주의 자연법칙을 따라 기계 돌아가듯 살게 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자신의 역사가 향해가고 있는 미래의 현실을 가르키고, 궁극적 의의와 목표를 제시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살도록하고 그렇게 도와 주는 계약의 하느님이였다.
5. 야훼라는 하느님은 모세로부터 이해된 하느님이다. 야훼신이 미디안 사람들의 신이었다는 학설도 있지만, 모세로부터 체험한 야훼 하느님은 출애급 사건을 통하여 결정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이다. 이 사건을 통해 조상들의 하느님 엘의 약속의 하느님, 대인신으로서의 인격신의 모습을 체험하며 쉽게 엘=야훼의 동일성을 보았다.
6.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을 해석하는데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 (있다)라는 어근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아서 <존재자>, <내가 있노라>하는 풀이가 있다. 이 <존재자>로서의 풀이는 희랍철학가들이 모든 현상 이면에 이 현상을 받쳐주는 근원으로서의 포괄적 개념과 만나며, 여기서 철학자들의 신과 신앙인들의 신이 교류될 수 있는 교량을 보게 된다. 여기에 대해 체험을 무시하고 신을 개념화, 신앙을 철학화, 이스라엘의 그리이스화에로의 전락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또 하느님의 이름을 ‘있다’(to be)의 사역형으로서, ‘있는것을 생기게 하는’(He causes to be, creates) 뜻을 가졋다고 해설하기도 한다. 이와같은 불가사의한 표현은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를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즉, ‘나는 내가 있게 하는 것을 있게 한다’(I cause to be what I cause to be), 또는 ‘나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창조한다’(I create what I create)는 것으로서, 달리 말하면 자연현상과 역사의 사건들이 창조주요 주님인 하느님의 뜻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또 여기서의 동사의 단순형을 미래시제로 번역하기도 한다. ‘나는 있을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14절의 선포를 그 다음 구절과 연관시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다음 구절에서는 조상들의 하느님이 모세와 함께 있고 함께 가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3,12); “나는 너희 입과 함께 있을 것이다”(4,12.15)“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어 주리라”(6,7)
“나는 ‘있노라’하는 자이다”라는 이 야훼의 이름의 신학적 의미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존재로서 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야훼라는 이 이름이 인간을 돕고 보호하시는 분으로서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심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또 한편 야훼라는 이 이름은 본격적인 이름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나는 곧 나다”라고 해석되는 이 뜻은 판관 13,18이나 창세 32,30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름을 알려 주었다기보다 미지의 현실로 숨기는 부정적인 답변으로서, 야훼 하느님은 굳이 주변의 이방인들 신처럼 이름을 밝혀야만 드러날 수 있는 그런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이는 거절의 표정에서 이방인들의 신들과는 달리 무한한 거리에 존재하시는 분임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진술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신에 대한 상(우상)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7. 가나안 정착과 더불어 가나안 주민들의 신인 바알로 인해 이스라엘은 야훼 신앙의 위기를 맞이한다. 여호수아가 이끈 세켐 대집회에서 이스라엘 12부족은 새롭게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쇄신하는 의미로 계약갱신을 하면서 12부족 공동 연맹체를 결성하였지만, 주변 국가의 경제, 문화가 앞서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풍산신인 바알에게 매력을 느껴 자주 야훼신앙를 저버리며, 바알과 야훼 사이에서 갈등을 느껴왔다. 이런 갈등속에서 극복된 야훼신앙을 야훼가 바알처럼 성(性)을 지닌 신이 아니라 성 역시도 야훼 하느님은 초월하시는 존재요, 인간의 마술로도 조정되거나 지배되는 하느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바알 신신앙과의 갈등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사실은 야훼 하느님의 끊임없는 용서와 사랑에 대한 체험이다. 이 사랑의 신체험 역시 이스라엘 민족이 조상들의 하느님으로부터 일관성 있게 연결해주는 신 이해의 요소다.
8. ‘질투하는 신’, 또는 ‘복수자’로 소개되는 야훼의 모습은 주변의 바알 신앙과 조금도 타협되거나 절충될 수 없는 하느님이심을 드러낸다.
9. 주변의 제국들의 출현과 조우는 가족 수호신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조상들의 하느님 엘신, 민족의 수호신의 면모를 드러내셨던 모세의 하느님 야훼가 그 한계를 넘어 만방의 하느님, 더 나아가 우주의 하느님,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으로 소개된다. 이러한 점진적인 하느님의 이해는 예언자들에 의해 절정을 이룬다. 아모스, 호세아, 제2 이사야 등의 예언자로 말미암아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는 신조는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온 우주에도 해당되는 신앙고백으로 본격적인 유일신 신앙이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다른 신들은 그 권위가 실추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선언되고 배제된다.
10. 지혜문학은 하느님이 인간과 자연의 창조주 이심을 고백하면서 창조활동에 있어서 어떤 인격화된 말씀, 또는 지혜하는 중재자를 언급하면서 신약의 제2 위격인 ‘말씀’(Logos)에 대한 사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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