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하느님-구약 성서(하느님의 지혜)

 

1.1.4. 하느님의 지혜




‘지혜’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hokmah’와 희랍어 ‘sophia’의 일반적인 개념의 뜻을 먼저 살펴보면, 그 의미는 한 사람이 지속되는 체험 덕분에 누리게 되는 생활의 실천적 장악 능력을 말한다. 성서적인 관점에서 ‘hokmah’는 그 의미가 더 풍부하게 드러나는데, 솜씨 있는 예술가(이사 40,20참조)나 경험 있는 농부와 같이(이사 28,23) 손으로 작업하는 지혜를 말하기도 하며,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더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하는 예술적인 행위나 하느님의 은총인 지혜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hokmah’는 일상에 있어서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서로 넘나들며 나타난다. ‘hokmah’는 야훼에 의해 주어진 카리스마들만큼 주어지지 않은 능력이든 주어진 능력이든 함께 수합한다 : 성서는 여기에 대해 분명한 구별을 하는 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C. Westermann에 의하면, 그는 창세기 1,28에 따라 인간에게 창의성과 경작의 파견임무를 맡기신 창조주의 축복의 연장선에서 지혜를 본다. 인류는 땅을 답사하고 관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K. Marx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자연을 인간화하도록’ 책임지어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류는 발전하며 자기 성장의 과업을 완수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지혜 사이의 균형을 견지할 줄 아는 한 더욱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세속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일상 체험과 그 안에서의 하느님의 간섭에 동시에 주의를 기울이는 성서적 메시지에 부합한다. 구약성서의 가장 최근 전통 안에서 인격화되어 나타났던 ‘hokmah’가 이처럼 소개된다. 따라서 야훼 하느님의 지혜는 말씀과 영의 경우처럼 구약성서 안에서 인격화(위격화)되어 나타난다. 지혜와 영은 특히 지혜문학에서 이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지만, 말씀은 더 오래된 전통을 전해주는 구약성서의 그 외 본문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시편 33,6참조). 후자의 경우 하느님의 말씀(Verbum)은 지혜와 마찬가지로 창조의 힘, 적어도 창조의 도구로 소개된다(창세 1장 참조). 다른 본문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단순한 도구보다는 신적인 힘이나 인격에 더 가깝다(시편 119,89 ; 147,15 ; 147,18 ; 이사 55,11 등).


지혜는 비록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하더라도 창조적인 능력으로 제시된다 : “야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던 한 처음에 모든 것에 앞서 나를 지으셨다.”(잠언 8,22) 좀더 계속해서 읽어 나가면, “그가 하늘을 펼치시고 깊은 바다 둘레에 테를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다.”(8,27) “나는 붙어 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 언제나 그의 앞에서 뛰놀며 날마다 그를 기쁘시게 해 드렸다.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 그가 만드신 땅위에서 뛰놀았다….. 날마다 내 집 문을 쳐다보고 내 집 문 앞에 지켜 서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복 받으리라. 나를 얻으면 생명을 얻고 야훼의 은총을 받는다.”(8,30-34) ‘지혜’를 야훼와 똑같은 위치에 놓지는 못할지라도, ‘지혜’(hokmah)는 창조주의 면전에서 대화의 상대자로 등장한다. 따라서 창조주 하느님은 고립된 신이 아니라 공동체적 신이라는 사실이 계시된다. 그분은 창조행위를 그분의 ‘지혜’와 함께 나누어서 한다. ‘지혜’가 창조주로부터 파견된 자처럼 소개되기도 한다(잠언 3,19 ; 9,1-6참조). 또한 ‘지혜’는 ‘영’과 동일시되기도 한다(지혜 1,6 ; 7,22.25참조). 지혜서 7,26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강하게 예시하고 있다(요한 1,1-14 ; 골로 1,15 ; 히브 1,3참조) :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며 하느님의 활동력을 비춰 주는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보여 주는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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