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하느님-신약성서(예수의 하느님-아버지)

 

1.2.1.2. 아버지




구약성서에서 이미 야훼 하느님께서는 백성의 아버지, ‘메시아-왕’의 아버지, 이스라엘 신앙인들의 아버지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 덕분에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가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았다(출애 4,22 ; 호세 11,1). 같은 맥락에서 그들은 야훼 하느님을 ‘당신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이사 63,15이하 ; 64,7 ; 예레 31,9)라고 말한다. 기다리던 메시아에 대해서, 야훼 하느님이 몸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시편 2,7)다고 선언하신다. 지혜문학에서는 경건한 이스라엘인이 야훼 하느님을 ‘내 생명의 주인이시며 아버지이신 주님’(집회 23,1 ;51,10참조)이라고 외치며, 시편 저자는 ‘고아들의 아버지’(시편 68,6)라고 노래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자기 부모가 버린 자녀들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시편 27,10). 이처럼 야훼를 아버지로 고백하는 그들은 그분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음을 체험한다.


또한 구약성서는 하느님을 ‘어머니’나 ‘여인’에 비유하면서 하느님의 모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이사 49,15 ; 66,13 ; 호세 11,1-4.8 ; 예레 31,20). 부성적이거나 모성적인 유비가 하느님에게 각각 다르게 적용되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성(性)을 초월하는 특성을 드러낸다. 시편 131,2의 말씀은 H. Urs von Balthasar의 하느님 인식방법 비유인 ‘어머니 품에 안긴 인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 “젖 떨어진 어린 아기, 엄마 품에 안긴 듯이 내 마음 평온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유로이 선택되어 끊임없는 신뢰로 견지되어 온 하느님 사랑의 표현 방법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자기 계시에 있어서 이미 장엄한 이 상태를 또 다시 뛰어넘고 있다. 그분의 부성이 집합과 확장의 이중적 운동처럼 완성을 이루면서 계시된다.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부성이 ‘하느님 나라의 예언자’(예수)에 의해 전에 없던 강한 모습으로 계시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의 부성이 보편성을 띄게 된다. 지금부터 ‘아버지’는 야훼의 전형적인 이름 혹은 호칭이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님의 기도에서 드러나고 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지칭하는 부분이 복음서 전체에 170회 정도 나나오는데, 예수께서는 개인적으로 기도하실 때 ‘아버지’란 말을 사용하시기도 하고(마태 11,25/ ; 루가 29,46 ; 요한 17, 1.5.11.21.25) 아라메아어 호칭인 ‘아빠’(Abba)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시기도 한다. 바울로는 후자에 대해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사용을 증언하고 있다(갈라 4,6 ; 로마 8,15). 거의 대부분의 성서 주석가들은 이 ‘Abba’라는 말을 예수께서 직접 발설하셨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처음으로 그 당시 어린이들의 말이거나 가족적인 말이었던 ‘Papa’를 야훼께 애칭적인 호칭으로 사용하신다. 이것은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고 있다. 초대 교회의 증언대로 이러한 관계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마태 6,9-13 ; 루가 11,2-4)를 가르치실 때 이 사실이 더욱 확인된다. ‘아버지’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분이시며(루가 15,11-32), 자연과 동물들에도 무관하시지 않으신다(마태 6,26.30 ; 10,29). 그러나 때때로 인간에 대한 심판도 잊지 않으신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태 18,23-35)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 모든 심판도 그분의 사랑에 근거한다. 예수의 하느님은 부성과 모성의 유비에 따라 다가올 미래와 똑 같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현재를 돌보신다. 적어도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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