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오리게네스에 대한 평가
그는 엄청난 수의 저서들을 남겼다. 경제적 후원자인 암브로시우스는 그에게 7명의 속기사를 주어 그의 말을 받아쓰게 도와주었다. 에로니무스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저서가 2천권에 이른다고 하지만, 그중에 많은 저서들이 상실되었다. 오리게네스는 이처럼 많은 저서를 통해 창조적인 신학사상들을 남겼지만, 생전에 시기와 질투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듯이, 사후에도 논란이 될 몇가지 학설 때문에 몇 세기를 두고 「오리게네스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오랫동안 가르친 알렉산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체사리아에는 그를 열렬히 따르는 추종자들이 많았으며, 그래서 이 두 곳은 오리게네스 신학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신학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에 못지 않게 많았으므로 양 편의 신학논쟁은 세기를 두고 계속되었다. 사실 동방교회의 신학발전은 이런 논쟁들에서 나온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