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신학 사상
아타나시우스는 독창적인 신학자는 아니지만, 신학사와 교회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은 대단히 크다.
35.3.1. 성삼론
아리우스이단은 궁극적으로 신론과 연관된 성삼론의 문제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학파의 전통에 따라, 하느님은 영원 불변하고 전능하신 분, 어떤 물질적인 요소도 없는 단순하고 순수하신 분, 언제 어디에나 내재하시며 만물을 초월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하느님은 성삼(聖三)으로 되어 있는데, 그 성삼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거룩하고 완전한 단 하나의 성삼, 곧 성부, 성자, 성령 안에 계시는 하느님만이 존재하실 뿐이다. 성삼은 결코 그 어떤 외부적 요소를 지니지 않고 외부로부터 침해를 받지도 않는다. 성삼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합일체가 아니며, 홀로 가장 완전한 창조능력이며 생산자이시다. 성삼은 본질상 상호 상통성을 지니며 나누일 수 없고, 성삼의 효력은 다만 하나일 뿐이다”(세라피온에게 보낸 제1서간). 그러면 아타나시우스는 성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성자는 성부 안에 계신다. 성자의 모든 것이 성부의 것인데,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는가? 빛의 광체와 샘의 물줄기처럼 성자를 보는 것이 바로 성부를 보는 것이며, 성자의 것이 곧 성부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성자는 늘 성부 안에 계시고, 성부도 성자 안에 계신다. 광체 속의 태양과, 말씀 안의 성령, 물줄기 안의 샘처럼 사실 성부의 것은 모두 성자의 것이다”(아리우스이단을 반박하는 변론 3,3). 아리우스는 성부께서 세상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로고스(성자)를 창조하였다고 하는데, 아타나시우스는 이러한 논리가 하느님께 대한 불경(不敬)이라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머리카락, 참새들과 들풀등 작은 것까지 염려하시는 분이신데, 세상창조라는 막중한 일을 직접하시지 않으시고 먼저 창조한 성자를 시켜 창조하게 한다는 것은 그분의 자비와 섭리에 모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는, 성자께서 성부와 “동일한 본성”(homousios) 즉 같은 천주성을 지니신 분이라는 니체아 공의회의 결정을 강변한다. 또 성자께서 성부와 같은 본성은 이니지만 “비슷한”(homoios) 본성을 지니셨다고 하는 후기 半 아리우스이단의 주장도 배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