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구약성서


“신약”성서가 경전으로 확정되면서 유다인의 성서인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결정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되었다.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유다교에 있기 때문에 구약성서는 이때까지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성서였다. 여하튼 히브리어 성서의 경전은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한 1세기 말경에 이르러서야 확정되었다. 2세기의 그리스도교에는 이미 그리스어가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서 대신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유다교에서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을 사용하였다. 아리스테아스 편지에 적힌 전승에 따르면, 이집트 왕 프톨레메우스 2세의 위탁을 받은 72명의 팔레스티나 율법학자가 영감을 받아 모세 오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70인역이라고 부른다.


그때에는 아직도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경전으로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70인역”에는 후대에 유다교에서 경전으로 받아들어짖 않은 구약의 책들이 실려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러한 구약성서를 이른바 “제2경전”으로 여긴다. 제2경전은 다니엘서의 그리스어 부록, 에스델, 예레미야의 편지와 바룩, 마카베오 상․하, 유딧, 집회서, 솔로몬의 지혜서이다. 개신교는 이 작품들을 다시 외경으로 분리하는 반면, 트렌토 공의회는 1546년 4월 8일 「성서와 채택된 성전에 관한 교령」에서 가톨릭 교회의 성서로 새로 승인하였다. 따라서 개신교가 구약성서의 제2경전을 “외경”으로, 구약성서의 경전이 아닌 다른 모든 작품을 “위경”으로 부르는 반면, 가톨릭교는 경전이 아닌 구약성서의 모든 작품을 “외경”으로 여긴다.


그리스도교의 첫 수세기 동안 경전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경전으로 인정받은 구약성서의 작품수는 일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부들이 이 작품들을 사용하고 많은 작품이 그리스도교적으로 개작되거나 확대되는 한 교부론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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