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경 사도행전, 베드로 행전, 바울로 행전

 

외경 사도행전


3.1. 문학장르


대부분 단편만 남아 있는 외경 사도행전은 외경 복음서와는 달리 루가가 쓴 사도행전의 차례나 내용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외경 사도행전은 경전 사도행전을 모방한다거나 사도행전을 보완하겠다는 의도도 없이 후대의 두 시기에 저술되었다. 2세기와 3세기에 씌어진 다섯 편의 사도행전(안드레아, 요한, 바울로, 베드로, 토마 행전)은 마니교도들이 한 권의 전집으로 묶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다섯 행전을 레우키오스 카리노스라는 한 저자가 엮은 작품으로 여겼다. 4세기 이후에 저술된 사도행전들은 위의 다섯 편의 사도행전을 모방하거나 다른 사도들을 다룬다. 많은 작품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2-3세기의 작품과 달리 소재나 사상의 독창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사도행전에 공통되는 주제는 인물. 여행 또는 행위와 관련된 생애, 거룩한 사람들로 불리는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도들의 가르침, 신앙에 대한 확실한 증언이다. 아울러 작품들은 순교에 관한 부분과 다른 개별적인 부분으로 나뉘거나 따로 전해지면서 후대 성인전의 모태가 되었다.


사도행전의 문학 유형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작품들의 문학 장르를 일관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고대의 소설, 여행기 문학, 행위 문학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작품들은 허구가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오는 단편들과 성인들의 생애, 죽음, 순교에 관한 종교적 설화들을 개작하였다는 점에서 고대의 소설들과는 구분된다. 쇠더는 이 작품들의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1) 여행의 동기


2) 영웅담적 요소, 곧 영웅들의 뛰어난 덕과 능력에 대한 강조


3) 기담적 요소, 곧 사도들이 빠져들어간 기이한 세계에 대한 묘사


4) 의도적 요소


5) 실제적인 사랑의 동기에서뿐만 아니라 금욕적․절제적 특징에서도 나타나는 성적(性的) 요소


사도행전들은 그리스도교적 즐거움과 교화 및 가르침의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나 신학문제와 교회의 문제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대중문학이다. 행전들은 새로 발견된 영지주의 작품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영지주의에서 유래하였다는 이론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이 영지주의의 개별 요소를 담고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3.2. 「베드로 행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외경 사도행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베드로 행전」은 180-190년경에 소아시아 아니면 로마에서 씌었다. 작품의 약 3분의 1은 소실되었으며, 제2부의 대부분 내용과 결론 부분 및 제1부의 서로 다른 두 이야기는 라틴어로 씌어진 「베르첼렌수스 행전」과 그리스어로 씌어진 두 수사본, 그리고 여러 단편에 전해진다. 그밖에 동방의 여러 번역본이 증언하는 베드로의 순교에 관한 소식이 따로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제1부에서는 베드로가 12년 동안 머물렀고 마술사 시몬을 처음으로 만난 예루살렘에서의 사건을 다룬다. 제2부에서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른 베드로의 로마 여행과 그곳에서의 활동을 이야기한다. 바울로가 로마에서 스페인으로 전도여행을 떠난 뒤, 시몬은 로마에 나타나 그곳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불가사의한 행위로 로마 사람들을 경탄시켰다. 베드로는 시몬에 맞서 많은 기적을 행하고 공개적으로 열린 “기적 시범 시합”에서 그를 이겼다. 시몬이 비행술을 보여주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을 때, 베드로의 기도가 이루어져 시몬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대결의 마지막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결론 부분은 여러 사도행전에 자주 나타나듯이 성적․금욕적 요소를 통해 야기된 베드로의 순교를 서술한다. 베드로는 정결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로마 시의 총독 아그리파는 설교에 본노하였고 도시에서는 소요가 일어났다. 새로운 정결문제로 아그리파의 소실 네 명이 그를 떠났으며, 많은 부인이 남편과 헤어지거나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임박한 체로를 두려워하여 로마에서 아피아로 도망가는 길에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가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물었을 때, 그리스도는 “나는 십자가에 못박히러 로마에 간다”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로마로 되돌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물론 그는 예수와 반대로 머리를 거꾸로 한  채 십자가에 못박혔다. 쿼바디스 이야기에서 바로 이 행전의 대중적인 영향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베드로가 예수를 만났다고 전해지는 장소에ㅐ는 이러한 만남을 기억하기 위한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의 대리석에는 예수가 이곳을 떠나 하늘로 올라갈 때 남긴 발자국이 조각되어 사람들에게 공경받고 있다. 폴란드 작가 헨릭 시엔키비즈는 「쿼바디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1905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문학적으로 베드로 행전은 행위 문학에 속한다. 작품의 목적은 이단자와 벌이는 논쟁이 아니라 악인에게 하느님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거룩한 사람인 베드로의 놀랍고도 비범한 행위를 묘사하는 데 있다. 영웅담적 요소가 작품의 주된 구조이며, 작품 안에 연설, 대화, 기도가 되풀이하여 삽입된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여행 보고는 단지 두 장소를 연결시킬 뿐, 작품 전체의 줄거리를 이루지 않기 때문에 여행기 문학에 속하지 않는다.




3.3. 「바울로 행전」


185-195년경 소아시아의 어느 장로가 저술한 「바울로 행전」은 바울로의 많은 여행을 보고하면서 그의 행적들을 기술한다. 따라서 바울로 행전은 유형에서 여행기 문학에 속하나 베드로 행전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 작품도 처음과 중간에 있는 단락이 많이 없어져 완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밖의 부분은 여러 방식으로, 그리고 여러 작품들, 곧 그리스어와 콥트어로 씌어진 파피루스, 「바울로와 테클라 행전」, 「바울로와 고린토인들과의 서신 교환」, 「바울로의 순교록」에서 전해진다. 수네멜호는 이 작품들을 바탕으로 행전 본디의 형태를 가능한 한 재현하였다. 작품의 구조를 결정하는, 바울로가 거쳐 간 체류지는 다마스쿠스 – 예루살렘 – 안티오키아 – 이코니움 – 안티오키아 – 미라 – 시돈 – 티루스, 내용이 빠져있음, 스미르나 – 에페소 – 필립비 – 고린토 – 이탈리아 – 로마이다. 여기에 나오는 일화들은 거의 틀에 박힌 도식(여정의 묘사, 부활과 정결에 관한 바울로의 설교, 이로 인해 부인들이 남편들을 멀리하여 소동이 일어남, 기적을 통하여 구출됨, 여행을 계속함)을 따른다.


단편들에 근거하여 추측할 수 있듯이 없어진 앞부분은 아마도 다마스쿠스에서 바울로의 회개, 그곳에서의 첫번째 활동과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을 묘사하는것 같다. 나머지 작품에 남아 있는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난 일화가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에 이어지며, 바로 「바울로와 테클라 행전」의 주요부로 넘어간다. 여기서 바울로는 조연 역할만 한다. 처녀 테클라는 이코니움에서 바울로의 설교에 감복하여 약혼자 곁을 떠났다. 그녀의 약혼자는 다른 남자들과 함께 바울로를 전집정관에게 고소하였다. 이때문에 바울로는 감옥에 갇혔지만 테클라는 바울로에게서 더 배우려고 간수를 매수하여 밤에 감옥을 드나들었다. 곧 이 사실이 알려져 두 사람 모두 법정에 서게 된다. 바울로는 도시에서 추방되고 테클라는 화형을 선고받지만 화형의 불길은 그녀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못했다. 인접한 도시인 안티오키아의 원형경기장에서 어떤 동물도 공격하지 않아 그녀는 죽음을 모면하였다. 오히려 암사자 한 마리가 죽으면서까지 그녀를 보호하였다. 그녀는 스스로 세례를 받기 위하여 물이 담긴 통에 몸을 던졌으며, 마침내 공식적으로 풀려났다.


일부 내용이 없어진 채 전해지는 다른 작품도 이와 같은 도식을 따른다. 「바울로와 고린토인들과의 서신교환」은 두 사람이 고린토에서 선포한 영지주의의 유설, 곧 규약성서의 거부,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부인, 육체의 부활에 대한 부인, 세상의 창조주로서 하느님에 대한 부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하느님 아들인 그리스도에 대한 부인을 소재로 한다. 행전은 로마에서 바울로의 순교로 끝난다. 그러나 루가가 쓴 사도행전의 보고와 달리 바울로는 자유인으로서 로마에 갔다. 그는 정결에 관한 설교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원한 통치자로 선포하였기 때문에 순교하였다. 네로 황제는 이 선포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전의 전승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새로운 작품으로 짜맞추었다. 작품의 목적은 결코 신학적 내용을 전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교화하고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저자가 경전 사도행전을 알고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바울로의 여정과 관련된 많은 지명이 일치하며, 일부 유사한 내용이 확인되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 작품과 경전 사도행전이 공통된 원전을 사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밖의 내용에서 바울로 행전은 완전히 다른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작음 몸집에 모리는 벗겨지고, 다리는 휘었으며, 두 눈썹은 붙어 있어 기품이 있는 태도를 보이고, 코가 매우 낮은 남자”로 묘사되는 바울로의 모습은 초대교회의 성화(聖畵)에 밑그림을 제시하였다. 성화 작가들은 그를 전형적으로 홀쭉한 얼굴, 뾰족한 수염, 머리가 벗겨진 인물로 그리는 반면, 베드로는 둥근 얼굴, 숱이 많은 머리, 곱슬곱슬한 수염을 지닌 인물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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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 사도행전, 베드로 행전, 바울로 행전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외경 사도행전

    3.1. 문학장르

    대부분 단편만 남아 있는 외경 사도행전은 외경 복음서와는 달리 루가가 쓴 사도행전의 차례나 내용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외경 사도행전은 경전 사도행전을 모방한다거나 사도행전을 보완하겠다는 의도도 없이 후대의 두 시기에 저술되었다. 2세기와 3세기에 씌어진 다섯 편의 사도행전(안드레아, 요한, 바울로, 베드로, 토마 행전)은 마니교도들이 한 권의 전집으로 묶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다섯 행전을 레우키오스 카리노스라는 한 저자가 엮은 작품으로 여겼다. 4세기 이후에 저술된 사도행전들은 위의 다섯 편의 사도행전을 모방하거나 다른 사도들을 다룬다. 많은 작품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2-3세기의 작품과 달리 소재나 사상의 독창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사도행전에 공통되는 주제는 인물. 여행 또는 행위와 관련된 생애, 거룩한 사람들로 불리는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도들의 가르침, 신앙에 대한 확실한 증언이다. 아울러 작품들은 순교에 관한 부분과 다른 개별적인 부분으로 나뉘거나 따로 전해지면서 후대 성인전의 모태가 되었다.

    사도행전의 문학 유형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작품들의 문학 장르를 일관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고대의 소설, 여행기 문학, 행위 문학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작품들은 허구가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오는 단편들과 성인들의 생애, 죽음, 순교에 관한 종교적 설화들을 개작하였다는 점에서 고대의 소설들과는 구분된다. 쇠더는 이 작품들의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1) 여행의 동기

    2) 영웅담적 요소, 곧 영웅들의 뛰어난 덕과 능력에 대한 강조

    3) 기담적 요소, 곧 사도들이 빠져들어간 기이한 세계에 대한 묘사

    4) 의도적 요소

    5) 실제적인 사랑의 동기에서뿐만 아니라 금욕적․절제적 특징에서도 나타나는 성적(性的) 요소

    사도행전들은 그리스도교적 즐거움과 교화 및 가르침의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나 신학문제와 교회의 문제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대중문학이다. 행전들은 새로 발견된 영지주의 작품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영지주의에서 유래하였다는 이론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이 영지주의의 개별 요소를 담고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3.2. 「베드로 행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외경 사도행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베드로 행전」은 180-190년경에 소아시아 아니면 로마에서 씌었다. 작품의 약 3분의 1은 소실되었으며, 제2부의 대부분 내용과 결론 부분 및 제1부의 서로 다른 두 이야기는 라틴어로 씌어진 「베르첼렌수스 행전」과 그리스어로 씌어진 두 수사본, 그리고 여러 단편에 전해진다. 그밖에 동방의 여러 번역본이 증언하는 베드로의 순교에 관한 소식이 따로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제1부에서는 베드로가 12년 동안 머물렀고 마술사 시몬을 처음으로 만난 예루살렘에서의 사건을 다룬다. 제2부에서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른 베드로의 로마 여행과 그곳에서의 활동을 이야기한다. 바울로가 로마에서 스페인으로 전도여행을 떠난 뒤, 시몬은 로마에 나타나 그곳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불가사의한 행위로 로마 사람들을 경탄시켰다. 베드로는 시몬에 맞서 많은 기적을 행하고 공개적으로 열린 “기적 시범 시합”에서 그를 이겼다. 시몬이 비행술을 보여주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을 때, 베드로의 기도가 이루어져 시몬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대결의 마지막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결론 부분은 여러 사도행전에 자주 나타나듯이 성적․금욕적 요소를 통해 야기된 베드로의 순교를 서술한다. 베드로는 정결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로마 시의 총독 아그리파는 설교에 본노하였고 도시에서는 소요가 일어났다. 새로운 정결문제로 아그리파의 소실 네 명이 그를 떠났으며, 많은 부인이 남편과 헤어지거나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임박한 체로를 두려워하여 로마에서 아피아로 도망가는 길에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가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물었을 때, 그리스도는 “나는 십자가에 못박히러 로마에 간다”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로마로 되돌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물론 그는 예수와 반대로 머리를 거꾸로 한  채 십자가에 못박혔다. 쿼바디스 이야기에서 바로 이 행전의 대중적인 영향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베드로가 예수를 만났다고 전해지는 장소에ㅐ는 이러한 만남을 기억하기 위한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의 대리석에는 예수가 이곳을 떠나 하늘로 올라갈 때 남긴 발자국이 조각되어 사람들에게 공경받고 있다. 폴란드 작가 헨릭 시엔키비즈는 「쿼바디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1905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문학적으로 베드로 행전은 행위 문학에 속한다. 작품의 목적은 이단자와 벌이는 논쟁이 아니라 악인에게 하느님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거룩한 사람인 베드로의 놀랍고도 비범한 행위를 묘사하는 데 있다. 영웅담적 요소가 작품의 주된 구조이며, 작품 안에 연설, 대화, 기도가 되풀이하여 삽입된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여행 보고는 단지 두 장소를 연결시킬 뿐, 작품 전체의 줄거리를 이루지 않기 때문에 여행기 문학에 속하지 않는다.


    3.3. 「바울로 행전」

    185-195년경 소아시아의 어느 장로가 저술한 「바울로 행전」은 바울로의 많은 여행을 보고하면서 그의 행적들을 기술한다. 따라서 바울로 행전은 유형에서 여행기 문학에 속하나 베드로 행전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 작품도 처음과 중간에 있는 단락이 많이 없어져 완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밖의 부분은 여러 방식으로, 그리고 여러 작품들, 곧 그리스어와 콥트어로 씌어진 파피루스, 「바울로와 테클라 행전」, 「바울로와 고린토인들과의 서신 교환」, 「바울로의 순교록」에서 전해진다. 수네멜호는 이 작품들을 바탕으로 행전 본디의 형태를 가능한 한 재현하였다. 작품의 구조를 결정하는, 바울로가 거쳐 간 체류지는 다마스쿠스 – 예루살렘 – 안티오키아 – 이코니움 – 안티오키아 – 미라 – 시돈 – 티루스, 내용이 빠져있음, 스미르나 – 에페소 – 필립비 – 고린토 – 이탈리아 – 로마이다. 여기에 나오는 일화들은 거의 틀에 박힌 도식(여정의 묘사, 부활과 정결에 관한 바울로의 설교, 이로 인해 부인들이 남편들을 멀리하여 소동이 일어남, 기적을 통하여 구출됨, 여행을 계속함)을 따른다.

    단편들에 근거하여 추측할 수 있듯이 없어진 앞부분은 아마도 다마스쿠스에서 바울로의 회개, 그곳에서의 첫번째 활동과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을 묘사하는것 같다. 나머지 작품에 남아 있는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난 일화가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에 이어지며, 바로 「바울로와 테클라 행전」의 주요부로 넘어간다. 여기서 바울로는 조연 역할만 한다. 처녀 테클라는 이코니움에서 바울로의 설교에 감복하여 약혼자 곁을 떠났다. 그녀의 약혼자는 다른 남자들과 함께 바울로를 전집정관에게 고소하였다. 이때문에 바울로는 감옥에 갇혔지만 테클라는 바울로에게서 더 배우려고 간수를 매수하여 밤에 감옥을 드나들었다. 곧 이 사실이 알려져 두 사람 모두 법정에 서게 된다. 바울로는 도시에서 추방되고 테클라는 화형을 선고받지만 화형의 불길은 그녀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못했다. 인접한 도시인 안티오키아의 원형경기장에서 어떤 동물도 공격하지 않아 그녀는 죽음을 모면하였다. 오히려 암사자 한 마리가 죽으면서까지 그녀를 보호하였다. 그녀는 스스로 세례를 받기 위하여 물이 담긴 통에 몸을 던졌으며, 마침내 공식적으로 풀려났다.

    일부 내용이 없어진 채 전해지는 다른 작품도 이와 같은 도식을 따른다. 「바울로와 고린토인들과의 서신교환」은 두 사람이 고린토에서 선포한 영지주의의 유설, 곧 규약성서의 거부,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부인, 육체의 부활에 대한 부인, 세상의 창조주로서 하느님에 대한 부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하느님 아들인 그리스도에 대한 부인을 소재로 한다. 행전은 로마에서 바울로의 순교로 끝난다. 그러나 루가가 쓴 사도행전의 보고와 달리 바울로는 자유인으로서 로마에 갔다. 그는 정결에 관한 설교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원한 통치자로 선포하였기 때문에 순교하였다. 네로 황제는 이 선포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전의 전승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새로운 작품으로 짜맞추었다. 작품의 목적은 결코 신학적 내용을 전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교화하고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저자가 경전 사도행전을 알고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바울로의 여정과 관련된 많은 지명이 일치하며, 일부 유사한 내용이 확인되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 작품과 경전 사도행전이 공통된 원전을 사용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밖의 내용에서 바울로 행전은 완전히 다른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작음 몸집에 모리는 벗겨지고, 다리는 휘었으며, 두 눈썹은 붙어 있어 기품이 있는 태도를 보이고, 코가 매우 낮은 남자”로 묘사되는 바울로의 모습은 초대교회의 성화(聖畵)에 밑그림을 제시하였다. 성화 작가들은 그를 전형적으로 홀쭉한 얼굴, 뾰족한 수염, 머리가 벗겨진 인물로 그리는 반면, 베드로는 둥근 얼굴, 숱이 많은 머리, 곱슬곱슬한 수염을 지닌 인물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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