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다케

 

「디다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은 고대에 매우 명성이 높았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의 주교 피로테오스 브리엔니오스가 187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완전한 원전을 발견할 때까지, 곧 근대까지는 경전 목록과 교부들의 언급을 바탕으로 이 작품이 저술되었다는 사실밖에 모르고 있었다. 그 뒤 더 상세한 전승계보가 다른 본문들, 「사도 헌장」, 「사도 교회규범」, 「사도들의 가르침」, 「바르나바의 편지」, 여러 교부의 인용문에서 확인되었다. 그밖에 파피루스 옥시린쿠스 1782호와 콥트어, 에티오피아어, 게오르기아어 번역본이 전승 계보를 알려준다.


시리아/팔레스티나에서 2세기 초에씌어진 것으로 보이는 공동체 규범서인 「디다케」는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윤리에 관한 태도, 전례, 떠돌이 예언자들과 유랑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공동체 생활, 종말론에 관한 공동체 규범을 가르친다. 이러한 규범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디다케」는 초대 공동체의 구조에 관해 폭넓지는 않지만 중요한 증언을 싣고 있다. 1-6장은 「바르나바의 편지」의 18-20장과 같이 “두 가지 길”을 기록하며, 이로써 두 작품 모두 유다계 원전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디다케」는 「바르나바의 편지」와 달리 “두 가지 길”을 생명과 죽음의 길로 부르며, 후자보다 내용이 더 풍부하고 정돈된 구조를 보여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2세기 초의 전례 규범이나 공동체 규범과 달리 카리스마 교직자가 공동체에서 선출되어 성직이 수여된 주교나 부제와 같은 교직자보다 아직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참된 사도는 떠돌이 예언자로 그는 공동체에 하루만, 예외적인 경우에 이틀만 머물러야 하며, 생계 유지를 넘어서는 요구를 할 수 없었다. 성찬은 성찬 제정에 관한 말씀 없이 축복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린 뒤에 행한 풍족의 만찬, 곧 애찬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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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다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디다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은 고대에 매우 명성이 높았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의 주교 피로테오스 브리엔니오스가 187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완전한 원전을 발견할 때까지, 곧 근대까지는 경전 목록과 교부들의 언급을 바탕으로 이 작품이 저술되었다는 사실밖에 모르고 있었다. 그 뒤 더 상세한 전승계보가 다른 본문들, 「사도 헌장」, 「사도 교회규범」, 「사도들의 가르침」, 「바르나바의 편지」, 여러 교부의 인용문에서 확인되었다. 그밖에 파피루스 옥시린쿠스 1782호와 콥트어, 에티오피아어, 게오르기아어 번역본이 전승 계보를 알려준다.

    시리아/팔레스티나에서 2세기 초에씌어진 것으로 보이는 공동체 규범서인 「디다케」는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윤리에 관한 태도, 전례, 떠돌이 예언자들과 유랑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공동체 생활, 종말론에 관한 공동체 규범을 가르친다. 이러한 규범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디다케」는 초대 공동체의 구조에 관해 폭넓지는 않지만 중요한 증언을 싣고 있다. 1-6장은 「바르나바의 편지」의 18-20장과 같이 “두 가지 길”을 기록하며, 이로써 두 작품 모두 유다계 원전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디다케」는 「바르나바의 편지」와 달리 “두 가지 길”을 생명과 죽음의 길로 부르며, 후자보다 내용이 더 풍부하고 정돈된 구조를 보여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2세기 초의 전례 규범이나 공동체 규범과 달리 카리스마 교직자가 공동체에서 선출되어 성직이 수여된 주교나 부제와 같은 교직자보다 아직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참된 사도는 떠돌이 예언자로 그는 공동체에 하루만, 예외적인 경우에 이틀만 머물러야 하며, 생계 유지를 넘어서는 요구를 할 수 없었다. 성찬은 성찬 제정에 관한 말씀 없이 축복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린 뒤에 행한 풍족의 만찬, 곧 애찬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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