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은 세계와 역사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그 시작과 끝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창조론과 종말론이다.
이 마지막 실재는 개인과 인류집단의 두가지로 구분된다. 개인의 종말과 관련된 것은 四末(죽음, 심판, 천당, 지옥)로 다루었고, 인류 공동체의 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 최후심판, 육신부활이 중심이 된다. 즉 최종적 완성으로서의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한다. 과거 전통신학에서 종말론은 항상 교의신학의 마지막에서 부록처럼 다루었다. 그후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 교회에 대한 새로운 관심, 역사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안목 등에서 재발견 된다. 이제 종말론은 가장 마지막의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우리 삶의 목적, 구원의 정점으로써 마지막에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인식되었다. 즉 모든 것의 이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제 1 장 그리스도교 종말론의 형성과정과 전통적 종말론의 핵심내용
종말론은 과거 교의신학의 부록처럼 다루어져왔다. 그러나 이미 초세기의 사도신경안에서 다루어져왔다. 우리의 위대한 신앙을 미래의 영원한 희망과 연결시키기 위해 연대기적으로 마지막에 다루어진 것이지, 그 중요성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382년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니체아-콘스탄티노플신경의 마지막 부분 역시 종말론을 보여준다. 4-6c의 아타나시오 신경은 육신부활.심판.영벌의 내용을 포함한다. 교회는 신경을 통해 육신부활과 영생을 가르친다. 그러나 언제나 동일한 양식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오늘날도 입으로는 육신부활을 고백하고 있지만 영혼의 불멸성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종말신앙이 죽음에서 육신을 떠난 영혼의 불멸성에 더 희망을 두고 있고, 사도신경의 육신부활의 측면과는 거리가 멀다. 신경에 나타난 종말론적 주제는 성서적이고 유대적인 전통을 따라 다루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희랍 문화권에 정착하면서 희랍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ꠏ 성서; 유대아적 입장은 단체적, 우주적, 인간은 영육의 단일한 합일체
ꠌꠏ 희랍; 영혼의 불멸성, 개인의 심판, 상선벌악에 관심, 영육의 분리경향
교회는 초기에 전인적 존재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고 확신했다. 또한 세상 마지막에 인간들의 부활을 기대했고, 신자들은 죽기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종말을 체험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달리 종말이 지연되면서 현실적 문제들이 나타난다. 즉 종말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죽음과 더불어 파멸되는 육체, 죽음 이후에 대한 희망의 현실성의 문제등이 발생한다.
구약에서는 인간의 종말은 세상 마지막에 가서 이루어지고 그때까지는 수면상태로 보았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죽음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만난다고 믿었다 (2Co 5,1- ).
플라톤 이전인 기원전 6c 오르페오스가 오르페오교를 세웠는데, 육신이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했고, 죽음은 바로 영혼이 감옥을 떠나 자유로운 상태로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플라톤 역시 이를 받아들여 육신은 쓸데없는 것이고, 영혼은 해소할 수 없는 불멸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즉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 선함.진실.아름다움등을 지니기에 불멸성을 지닌다. 그래서 영혼은 지상의 현실세계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고, 다시 Idea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플라톤에 있어 죽음은 육신으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이고, 단지 육신만 파멸시키는 것이다. 이런 플라톤의 입장이 동방의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그리스도교안에 들어온다.
오리게네스; 영혼만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했다. 현실세계보다 선재한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해방(죽음)될 때까지 육신과 함께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영혼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 육신도 자체로는 선하지만, 원죄 이후 사욕편정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만이 인간의 본질이다. 그래서 늘 천상을 갈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육신을 경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면서 영혼구원사상이 전면에 떠오르게 되고,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다. 이런 사상은 13c 토마스에 이르러 새로운 면모를 띤다.
토마스 아퀴나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따른다. 영혼은 육신의 형상이다. 그에 있어 인간은 이질적인 2개의 실재의 합성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간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현실적 인간은 전적으로 영혼적이고, 동시에 전적으로 육신적이다. 그러므로 육신이 부정적으로 생각되지 않고 영혼과 육신은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즉 육신이 영혼의 현존의 조건이고 따라서 육신 없이는 영혼도 존재할 곳이 없는 것이다. 이제 육신은 더이상 영혼의 감옥도 이니고 방해물도 아니다. 이런 토마스의 사상은 교회에 수용되어 교회는 인간을 영육의 합일체로 가르친다. 이런 기본입장은 구원은 영육의 단일성으로서의 전인의 완성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가르친다. 즉 전체적인 충만이다.
한편 인본주의적인 신(아리스토텔레시즘? 아퀴나시즘?)이 나와서 하나의 영혼과 다수의 육신을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교회는 영혼의 불사불멸과 지복을 가르치면서도 마지막에 육신과 결합할 것을 가르쳐야만 했다.
675년 제11차 똘레도 공의회; 모든이가 머리이신 주님을 따라 부활할 것이다. 현세적 육신을 입고 부활할 것이다(DZ 540).
1336년 베네딕도 15세교황; 성인과 의인의 영혼이 육신과 재결합하기 이전에 이미 지복직관을 누리고 있다. 즉 육과 합일되기 이전에 지복을 누리고 육과 결합된 상태에서 공심판을 받게 된다(DZ 1000).
개인적 종말론; 원죄의 벌로 맞은 죽음은 영혼이 하느님께 나아가 사심판을 받게되고, 공로.죄의 중량에 따라 천국.지옥.연옥으로 판별된다. 죽을 당시 은총중인 영혼은 천당으로, 대죄의 영혼은 지옥으로 간다. 천국에 간 영혼은 지복직관을 누리고 지옥에 간 영혼은 실고(失苦;하느님을 상실한 아픔)와 각고(각고;감각적 고통)를 겪는다. 연옥영혼은 시한부로 실고와 각고를 겪는다.
우주적 종말론; 세상 끝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육신부활, 곧이어 심판자인 그리스도가 사심판의 결과를 만인 앞에 공표한다. 이때 세상은 둘로 나뉘어진다.
이상의 전통적 종말론은 미래에 대해 자세히 보여주지만, 그에 따라 문제점도 많다. 이에 의하면 세상은 종말로의 잠재적 상태에 불과하다. 또한 뼉다귀에서의 육신의 소생을 믿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전통적 종말론이 오해를 지니게 된 것은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으려 했고, 따라서 성서와 전통의 상징들을 올바로 보지 못하였고 이를 사전정보로써 그대로 받아들임으로해서, 그리고 성서를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함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즉 성서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한데서 발생한 문제이다. 성서는 어두운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흔히 종말론에 있어서 어두운면만을 강조하고, 그 부분들만 인용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오해가 비롯되는 것이다. 천지창조 설화는 만물의 주인이 하느님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말에 있어서도 그 정점이 하느님임을 말하는 것이 중심이다. 즉 하느님이 만물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다. 이제 시작 뿐 아니라 끝도 하느님에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종말론은 사람들에게 도덕과 윤리를 너무 강조하여 위협한 것이었다. 이제 이런 사상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사목 66호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