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요약
이미 고대교회에서 우주의 미래에 대해서 가졌던 관심이 개개의 인간 집단의 운명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1고린 15,29에 의존한 보편적 완성에 대한 희망은 묵시문학적 심판의 사고의 뒤로 물러 서면서, 인류 역사의 종말은 선과 악으로 결정적으로 나뉘게 된다고 전망하게 되었다. 근세에는 인간학적의 강조점이 더욱 강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몇몇 신학자들은 인간이 결정적으로 멸망할 가능성에 반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롭게 만물회복설로 이끌리게 된다.
3.2. 부활, 불멸 그리고 중간상태
개인의 종말론적 운명에로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서 최종 목표가 아니라 죽은 다음의 인간의 길을 설명하려는 관심이 점점 증가하였다. 그래서 비교적 단순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인 죽은 이들의 부활 신앙은 죽음과 종말 사이에 “시간”을 포함시키고 또한 인간의 구성(“육체”와 “영혼”)에 대한 숙고를 전제로 하는 이론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런 이론이 형성되는 데에는 작용한 본질적인 요인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불멸의 사고와 고대의 인간학과의 대결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관습인 순교자 공경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이다.
3.2.1. 사도적 교부들
사도적 교부들은 모두 일치해서 죽은 이들의 부활을 가르쳤다. 그들이 사용한 정식인 “육신의 부활”은 아직 반유심론(反唯心論)적 색채를 띄지 않았다. 여기서 sarx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히브리 단어 “basar”와 비슷하게 피조물로서의 무상함 속에 있는 세상 전체를 의미한다. 죽은 직후의 운명에 대해서는 통일된 가르침을 발견할 수가 없다. 클레멘스 전서(96년 경)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나타날 때까지의 “경건한 이들의 장소”, 혹은 “단지 짧은 순간 방에 들어간다”(1Clem 50,3-4)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중간시기를 생각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117년경)는 순교 이후에 가능한 빨리 하느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기를 갈망한다(IgnRom 4,1; 5,3 참조).
3.2.2. 호교론자들
초기의 그리스도교 호교론자들은 아주 다양한 사조(思潮)들이 지배하는 이방인 세계와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모든 종말론적 이론에 대해서 극단적인 회의를 보이면서 어떤 희망도 갖지 않으려는 경향은 “대중적인 에피쿠로스주의(향락주의)”로 흘러갔다. 이런 향락주의자들은 바오로가 인용한 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먹고 마십시다.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말입니다”(1고린 15,32). 이런 경향 외에도 죽음 육신 안에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플라톤적 가르침이 (육신을 멸시하는) 이원론적 특징을 지니면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플라톤 자신이 존재론적 혹은 단지 윤리적 이원론을 주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토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초기의 몇 세기 동안에 플라톤 사상은 존재론적 이원론의 의미로 수용되었다. 더욱 강하게 이원론적으로 물들은 영지주의는 영적인 영혼이 어두운 물질의 영역에서 구원된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영역으로 “천상여행”을 떠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교의 호교론자들은 플라톤 사상에서 극단적인 회의와 절망적 태도에 반대하는 동맹자(同盟者)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불멸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사상에 접목하여 이 사상을 능가하게 된다. 즉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도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호교론자들은 그리스 철학의 용어(“육신”과 “영혼”)를 넘겨 받는데, 이 용어는 그리스 철학과는 다른 의도로 사용된다. 즉 종말에 영혼과 육신의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는 가(假)유스티노 저서이다. “부활에 대해서”: 하느님은 “육신도 부활하도록 부르셨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 합쳐진 이성적 생물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신 중에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둘이 합쳐진 것을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간을 삶과 부활로 부르셨다면, 하느님은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즉 영혼과 육신을 부르신 것이다”(Pseudo-Justinus, De Resurr. 8).
호교론자들은 유심론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의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전체 인간이 세상과 함께구원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점은 우리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육신으로”(예를 들어서 “Fides Damasi”: DS 72) 부활할 것이라는 정식을 통해서 자주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때때로 반 영지주의적 논쟁은 아주 과도하게 물질적인 상상으로 흘러갔다. 즉 부활한 육신의 모든 뼈와 신경, 눈과 기관들은 이승에서의 육신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3.2.3. 오리게네스
오리게네스는 위와 같이 너무 단순한 상상이나 영지주의적 육신의 포기에서 거리를 둔다. 그는 부활한 육신을 묘사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부활한 육신과 이승의 육신과의 동일성은(이틀 이상 같은 것으로 머물지 않는) 질료의 동일성을 근거로 하지 않고 영속적인 eidos, 즉 세상의 삶에서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구별짓도록 하는 특징적인 형상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유사하게 오리게네스도 부활은 죽은 다음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세례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삶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는 죽음 안에서, 또 죽은 이후의 정화를 통해서 실현되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오리게네스가 그리스도교의 종말 희망을 내면적, 정신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고, 그래서 위험한 영지주의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이 때문에 죽음과 부활에 대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해석은 신학의 역사에서 관철되지 못하였다.
3.2.4. 아우구스티노
아우구스티노도 (요한 5,25를 다루면서) 현재적 부활을 알지만, 그러나 (묵시 20,5의 “첫째 부활”이라는 말을 보면서) 분명하게 두 가지 부활을 구분한다: “지금 일어나는 첫째 부활”, 즉 인간이 죄에 죽고, 하느님 아들의 부르심을 통해서 신앙 안에서의 삶에로 부활하게 됨으로서 이루어지는 “영혼의 부활”과 “둘째 부활”, 즉 세상의 마지막 날에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인간이 심판을 받기 위해 이루어지는 “육신의 부활”을 분명하게 분리한다. “첫째 부활”에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른 사람들만 참여하고, 둘째 부활에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게 된다. “이 첫째 부활은 은총에 의한 부활이고 둘째 부활은 심판을 위한 부활이다”(Civ Dei XX 6; XX 9 참조).
이렇게 해서 세 가지 새로운 강조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 현재적 부활이라는 주제는 아직 기억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오리게네스가 중요시하였던 부활의 과정(過程)적 성격, 즉 부활은 회개, 세례, 죽음 그리고 죽은 다음의 정화라는 그리스도교 구원의 길 전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퇴보하게 되었다. (2) 미래의 부활은 더 이상 분명하게 희망적인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한편에게는 구원을, 다른 한편에게는 멸망을 선고하는 심판을 위한 중립적인 전제로 나타난다. (3) “육신”, “부활”, “마지막 날”이라는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영혼이 육신없이 존재하는 중간 시기를 생각하도록 한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육신을 아직 돌려받지 못한 순교자들의 영혼”이라는말을 한다(Civ Dei XX 9).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에게서는 아직 중간상태에 관한 분명한 이론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누리는 영혼의 행복을 가르치기도 하고(예를 들어서 De Trini. XV 25), 중간상태의 임시성을 강조하기도 한다(예를 들어서 Civ Dei XIII 8; Ench. XXIX 109). 또 다른 저서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서 자신의 견해는 불확실하다고 설명한다(Retract. 14,2).
그러나 아우구스티노 시대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가르침인 죽은 다음의 정화의 불과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중간상태에 대한 상상이 이미 연결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불을 거쳐서 구원을 받는다”(1고린 3,15)고 표현한 것에 바탕을 둔 다양한 만물회복설과의 대결에서 아우구스티노는 정화하는 불과 저주받은 이들에게 속한 영원한 불을 구분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화는 현재의 삶이나 혹은 죽으면서 고통을 수반하는 (죄의) 분리의 체험이라는 해석 외에도 “육신이 죽음 다음 그날에 이르기까지… 죽은 이들의 영혼은 일종의 불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가르침이 영향을 미쳤다. 이 가르침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노는 조심스럽게 입장을 표명한다. “나는 이 견해를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올바른 견해일 것이다”(Civ. Dei XXI 26).
아우구스티노가 인용한 견해에 따르면 죄의 오점이 묻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모든 사람이 불을 거쳐야 한다. 차이는, 태워버려야할 죄의 찌꺼기가 없는 사람은 불의 뜨거움을 느끼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불의 뜨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후대의 연옥교리와 동일하지는 않다. 아우구스티노 자신이 죽음 이후의 고통이 시간적으로 한정되고 치유적 성격의 것이라고 가르쳤는지에 대해서 오늘날의 연구에서는 계속 토론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구절은 처음에 동방의 만물회복설과 함께 등장한 정화에 대한 가르침이 이제는 서서히 형성되는 중간상태에 대한 가르침에서 새롭게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3.2.5. 중세 초기
아우구스티노 이후 수백년 동안 서방교회에서는 죽은 후의 정화의 고통에 대한 신앙이 계속 발전되었는데, 이 신앙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는 교회의 실천이고, 다른 하나는 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죽기 전이나 후에 그에 알맞는 보속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것에 근거를 둔 고대교회의 참회 실천이다. 중세 초기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교황 대 그레고리오(+604)의 설교이다. 그 자신은 죽은 다음에 가능한 정화의 불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수도자 유스투스(Justus)가 삼십일 동안 계속 그를 위해서 봉헌한 미사 덕분에 불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그레고리오 교황의 이야기(Dial. 4,57)는 후대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는 달리 동방에서는 오리게네스를 둘러싼 논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다음의 정화에 관한 어떤 생각도 위장된 만물회복설의 혐의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희랍 교부들은 정화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없었다.
3.2.6. 스콜라 신학
중세 스콜라 신학은 영혼의 불멸과 육신의 부활에서 출발하여, 두 가지 진술을 정확하게 서로 관련지으려고 시도하였다.
초기 스콜라 신학에서는 두 학파가 분명하게 서로 구분된다. 육신과 영혼을 철저히 분리하는 사고의 대표자들(Hugo von St. Viktor, Robertus Pullus, Robert von Melun)은 사실상 인간을 인간의 영혼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죽음과 부활의 중간상태에 육신이 없는 영혼을 생각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있을 육신의 부활이 이미 영혼이 누리던 행복에 더 무엇을 보태주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다른 이들(Gilbert de la Porrée와 그의 학파)은 인간의 단일성을 더욱 강조한다. 즉 육신과 영혼이 함께 인격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육신과 영혼의 분리란 인간 존재가 끝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런 분리를 넘어서 지속되는 정신적 영혼은 존재를 거스리는 상태에 있다고 하겠다. 이런 인간상을 배경으로 하면 육신의 부활은 중요하게 된다. 즉 육신은 부활은 단지 육신만의 부활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기 스콜라 신학이 시작되면서 아욱세레의 빌헬름(Wilhelm von Auserre, +1231)은 인간의 육신-영혼의 구조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 의거해서 표현하게 된다: 질료와 형상은 서로 둘로 분리될 수 없는 부분들로서 모든 존재자에 내재하는 서로 상관된 존재의 원리이다. 중기 스콜라 신학의 정식(定式) “anima forma corporis”(영혼은 육신의 본질적 형상이다)는 인간의 단일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으로 “존재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정식을 다시 한 번 첨예화시킨다: 영혼은 육신의 유일한 본질적 형상이다(anima unica forma corporis). 비엔나 공의회(1311-1312)는 이 질료형상적 정식을 (토마스와 같이 첨예화된 형태로는 아니지만) 인정한다: 정신적 영혼은 “그 자체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영혼의 형상이다”(DS 902).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혼의 본질에는 육신으로 정향되어 있다는 것과 육신 안에서 자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영혼은 그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 육신적 부활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영혼의 불멸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전체성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채로 남게 되었다. 이것은 교황 요한 22세(1316-1334)를 둘러싼 14세기의 논쟁에서 잘 드러난다. 교황은 1331년 아비뇽에서 선택된 이들의 영혼은 죽은 모든 이들의 부활과 공심판 이후에 비로소 지복직관(至福直觀)에 이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들은 그 이전에는 단지 불완전한 행복만을 누린다. 이 가르침에 대해서 특별히 파리의 신학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교황 요한 22세는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다림의 시간을 언급한 교부들을 의존해서 자신을 변호하였다. 마침내 그는 공개적인 저항에 부딪쳐서 양보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의 후계자인 베네딕또 12세(1334-1342)는 “Benedictus Deus”(1336) 헌장에서 요한 22세의 반대 입장을 구속력 있는 가르침으로 선포하였다: 죽은 후에 정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모든 신자들의 영혼은 “천국에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이 영혼은 죽은 후 즉시 혹은 정화 후에 낙원에 있게 되는데…, 육신과 다시 결합되기 전에 그리고 공심판 전에도 그렇게 된다”(DS 1000).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영혼은 이미 지금 “참으로 행복하게” 된다(DS 1000). 저주받은 이들도 이와 상응한다: “실제로 중죄 속에 죽은 영혼들은 즉시 지옥으로 떨어져서 지옥의 고통 속에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서 계속되기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 날에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육신과 함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행실에 대해 해명을 하게 되는데, 이는 각자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이다”(DS 1002). 한편으로는 “죽은 다음 즉시” 참된 행복 혹은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판 날에” 상과 벌을 받는다는 두 가지 긴장된 진술을 통해서 영혼의 불멸성과 인간의 전체성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
3.2.7. 연옥 교리의 계속적 전개
중세 초기에 형성된 죽은 다음의 정화에 관한 사상은 스콜라 신학 초기에 참회의 신학과 연결되었고, 중기 스콜라 신학에서는 “죄과(罪過)의 상태(reatus culpae)”와 “벌을 받아야 하는 상태(reatus poenae)”를 구분하면서 신학적 가르침으로 완성되었다: 죄가 사해진다고 해서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써 자신에게 초래(招來)한 벌을 받아 마땅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벌을 받아 마땅한 상태는 죄의 사함을 통해서 간단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고, 정화의 과정을 통해서, 즉 죽기 전에 그에 상응하는 보속을 행함으로써, 혹은 죽은 후에 수동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정화 사건을 통해서 소멸되어야 한다. 두번째의 경우를 “연옥(purgatorium)”라고 불렀다. 죽은 다음의 정화 과정에서 산 이들은 중재의 기도를 통해서 죽은 이들을 도울 수 있다.
연옥 교리에 대해서 동방과 서방의 신학은 차이가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영혼은 죽은 다음에 심판날까지 벌이나 상을 받지 않고 미결의 상태에 있는데, 왜냐하면 육신이 없이는 벌이나 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토마스는, 이런 주장은 그리스인들이 모든 벌은 정화를 위한 벌이라는 오리게네스의 오류를 피하려다가 “그와 반대되는 오류”, 즉 죽은 이후에 정화의 벌이란 아예 없다는 오류에 빠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반대해서 토마스는 영원한 고통과 “대죄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한 특정한 정화의 벌”을 구분한다. 토마스는 이런 구분을 교회의 확고한 가르침으로 간주한다. 그는 이런 가르침이 신학적으로는 아무도 오점을 지니고서 하늘에 영광에 이르를 수 없다는 성서구절들(지혜 7,25; 이사 35,8; 묵시 21,27), 아우구스티노 이래로 자주 인용된 1고린 3,13-15(“불을 통해서 구원된다”), 죄 사함 이후에도 보속의 의무를 부과하는 교회의 참회 실천 그리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에 근거한다고 본다(De Rat. Fid.). 그러나 정화의 “장소”에 대해서 토마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In Sent. IV d.21 q.1 a.1).
교황 이노첸시오 4세(1243-1254)는 동방교회에 대해서 죽은 다음의 정화와 죽은 이들을 위한 교회의 중재 기도를 확고히 보존할 것을 엄명하고, 그밖에도 동방교회가 라틴교회의 언어용법(“purgatorium”)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였다(DS 838). 황제 마카엘 팔레올로구스(Michael Paläologus)의 신앙고백(1274: DS 856)과 나중에 피렌체 공의회가 선포한 “그리스인들을 위한 훈령”(1439: DS 1304)에서 이 가르침은 확인되었다. 그러나 교황 이노첸시오가 사용한 단어 “장소”, 정화의 “불”은 삭제되었다.
3.2.8. 근세
근세의 신학에서 “불멸의 영혼”과 “중간 상태”에 대한 사상이 무조건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마르틴 루터에게 “인간의 영혼”이란 “육신이 소멸된 다음에서 남아 있는 불멸의 정신”이다. 하지만 그는 불멸성을 실체적으로가 아니라 관계적으로, 즉 하느님과의 관계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은 영혼은 필연적으로가 아니라 우연에 의해서 불멸한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을 집어넣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Promotionsdisputation vom 3.7. 1545: WA 39, II 400f.). 루터는 중간 상태의 가르침을 영혼이 죽음의 잠을 잔다는 주장을 통해서 약화시킨다. 연옥 교리와는 단계적으로 결별을 고한다. 그는 대사(大赦)를 거부하면서 연옥에 대한 신앙은 성서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분명하게 연옥은 “단지 악마의 속임수”라고 하면서 배척하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전면에는 “연옥을 이용한 장사”, “연옥 미사의 대목장(場)” 그리고 다른 의문스러운 관습들을 극복하려는 실천적인 관심이 있었다(ArtSmalc. 2,2: WA 50. 205f.).
종교개혁자들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연옥(purgatorium)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붙잡혀있는 영혼들은 신앙인들의 중재 기도를 통해서, 특히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제단의 제사를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DS 1820). 동시에 공의회는 종교개혁자들의 관심사를 받아들여서 연옥에 대한 공상이나 과대한 수식, 마술적으로 오해될 수 있는 기도의 실천, 두려움을 이용한 장사에 대해서 경고를 하였다: “교육을 받지 못한 백성들을 위한 대중적인 설교에서 신앙심 고취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어렵고 세세한 질문들은… 제외되어야 한다… 그들(주교들)은 단지 호기심이나 미신에 속하거나 혹은 추악한 이득을 노리는 것을 신앙인들에 대한 걸림돌과 방해물로 금지시켜야 한다”(DS 1820).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수백년간 일반의 의식 속에서는 영혼불멸의 가르침이 참된 종교의 중심적 특성이 되었다. 철학에서는 “영혼”과 “주체”를 동일시하게 되었고 육신은 영혼불멸의 사상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다. 같은 시대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개신교의 신학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육신 부활에 대한 희망을 주체의 불멸성으로 해석하였다. 철저하게 교의에 의존하는 가톨릭 신학에서는 우선적으로 영혼의 종말론적 운명에 관심을 둔 중세 후기 교회 교도권의 표명(3.2.6과 3.2.7. 참조)이 계속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 날에 있을 육신의 부활에 대해서는 계속 가르쳤지만, 그러나 그 의미는 상실되었다.
3.2.9. 20세기
20세기 전반에 개신교 측에서 “변증법적 신학”의 고유한 특성이면서 새로운 성서학의 지지를 받은 대립적 생각을 통해서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은 철학이나 종교와 뚜렷히 대립되고, 히브리 사상은 희랍적 사상과, 성서적 종말론은 계몽주의적 신심과 뚜렷히 대립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종교개혁자들의 특색인 양자 택일의 사상이 강화된다: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 고유의 불멸하는 영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영혼의 불멸성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되어 버린다;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심스럽게 되었다; 이제는 죽음을 단지 육체의 소멸만이 아닌 전체 인간의 소멸, 즉 “총체적 죽음(Ganztod)”으로 정의하였다; 부활은 전적으로 새로운 창조이다. 죽음과 마지막 날 사이의 “중간 상태”에 대해서 말하는 대신에 “하느님의 무시간성 안에로 죽어들어 간다”(Carl Stange, Emil Brunner) 혹은 “죽음의 잠”(Oscar Cullmann), 또는 “하느님의 뜻 안에 보존된다”(Paul Althaus)고 말하게 되었다.
가톨릭 신학에서는 비로소 1950년에 이르러서 종말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을 대상으로 새로운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런 토론을 가동시킨 것은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와 성모 마리아가 “육신과 영혼과 함께” 승천하셨다는 가르침(1950: DS 3903)의 교의화(敎義化)이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우선 육신에서 벗어난 영혼에 대한 것이 문제시되었고(예를 들어서 칼 라너), 그 다음에는 그레사케(Gibert Greshake)와 로핑크(Gehard Lohfink)가 “영혼”이란 개념의 신학적 사용 가치에 대해서, 중간 상태에 대한 상상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들은 그 대신에 “죽음 안에서의 부활(Auferstehung im Tod)”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였다. 이제 가톨릭 신학에서도 개신교 신학에서와 유사하게 (신-)플라톤적 영혼 불멸 사상과 성서적 부활의 희망을 구분하는 것을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톨릭 신학자들은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과는 달리 이런 필요한 구분이 반드시 배타적인 대립 관계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간주한다. 요셉 랕찡어(Josef Ratzinger)는 처음에는 “탈(脫)플라톤 사상적 종말론”에로의 전환을 함께 하였지만 나중에서 이런 경향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4.4.2. 참조).
3.2.10. 요약
교회 역사의 고찰을 통해서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즉 한편으로는 부활을 인류역사와 창조 역사 전체의 완성(그러므로 “육신의” 부활이라고 표현한다)으로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개 인간의 삶이 죽음, 부활 그리고 심판 안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에 가깝게 다가간다는 것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특히 이미 고대교회는 두 가지 전선(戰線)을 형성하면서 싸워야만 했다: 넓게 퍼져있는 회의적인 사상에 반대해서 플라톤 사상가들과 함께 죽음을 넘어서 희망을 가르쳤고, 플라톤 사상과 영지주의 안에 있는 이원론적 경향에 반대해서는 부활의 육신성을 강조하였다. 그리스적 육체-영혼-용어의 수용과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 상태에 관한 가르침은 다음 두 가지를 함께 연결하는 하나의 이론을 형성하도록 이끌었다. 즉 각 개인에게 종말이 가깝다는 것과 마지막 날에 있을 보편적 완성의 중요성이 그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죽음 이후의 정화에 대한 생각도 자리한다. 그러나 그리스적 개념들의 영향으로 사실상 이원론적 사고에 가깝게 육신을 업신여기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바로 여기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르는 신학적 논쟁을 설명할 수 있다.
4. 조직신학적 고찰
4.1. 해석학적 성찰에 대한 기억
개인적 종말론은 죽은 다음의 인간의 미래에 대한 표상을 묘사한다: 죽음, 심판, 정화, 부활, 완성이다. 이런 표상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집단적 종말론에서 언급한 해석학적 성찰(I.4.2.), 특별히 희망의 언어는 원래 표상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체험을 넘어선 실재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림이나 표상이 없어서는 안된다. 이런 표상적 성격을 의식하고 있어야만 종말에 대한 언사를 사건의 순서에 관한 정확한 서술로 오해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래야만 표상의 언어가 투명성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구체적인 표상들이 때에 따라서 다른 표상들을 통해서 보충되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점은 정화하는 불의 표상과 같은 개별적 표상이나,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 시간에 대한 표상과 같은 상상의 모델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4.2. 죽음
신스콜라 신학은 죽음에 관해서 보통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얘기한다. (1) 모든 인간은 죽어야만 한다. (2) 죽음은 나그네살이의 종결을 의미한다. (3) 죽음의 죄에 따르는 벌이다. 근래의 신학에서는 무엇보다도 칼 라너를 통해서 다른 진술이 추가되었다: 죽음은 단순히 인간에게 닥쳐오는 사건으로서 인간이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바로 이렇게 수용하고 감수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행위이기도 하다.
4.2.1. 죽음의 일반성
모든 인간은 죽어야만 한다. 이 문장이 과연 신학적 진술인가 하고 물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첫째, 이 문장은 모두가 신앙이나 신학의 도움 없이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넘어서지 않고, 둘째, 죽음의 불가피성은 성서에서 본래적 주제가 아니라 단지 전제, 즉 구원의 소식이 선포되는 데에 어두운 체험적 배경을 이루는 것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진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이 진술은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데에 처음부터 죽음을 포함시킨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 측면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생각할 수 있다: 삶이란 계속해서 “소모되는 것”이라면, 이런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소모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고, 삶이 움직이는 방향에 부합하는 실천일 것이다(4.2.4. 참조).

3.1.4. 요약
이미 고대교회에서 우주의 미래에 대해서 가졌던 관심이 개개의 인간 집단의 운명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1고린 15,29에 의존한 보편적 완성에 대한 희망은 묵시문학적 심판의 사고의 뒤로 물러 서면서, 인류 역사의 종말은 선과 악으로 결정적으로 나뉘게 된다고 전망하게 되었다. 근세에는 인간학적의 강조점이 더욱 강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몇몇 신학자들은 인간이 결정적으로 멸망할 가능성에 반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롭게 만물회복설로 이끌리게 된다.
3.2. 부활, 불멸 그리고 중간상태
개인의 종말론적 운명에로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서 최종 목표가 아니라 죽은 다음의 인간의 길을 설명하려는 관심이 점점 증가하였다. 그래서 비교적 단순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인 죽은 이들의 부활 신앙은 죽음과 종말 사이에 “시간”을 포함시키고 또한 인간의 구성(“육체”와 “영혼”)에 대한 숙고를 전제로 하는 이론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런 이론이 형성되는 데에는 작용한 본질적인 요인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불멸의 사고와 고대의 인간학과의 대결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관습인 순교자 공경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이다.
3.2.1. 사도적 교부들
사도적 교부들은 모두 일치해서 죽은 이들의 부활을 가르쳤다. 그들이 사용한 정식인 “육신의 부활”은 아직 반유심론(反唯心論)적 색채를 띄지 않았다. 여기서 sarx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히브리 단어 “basar”와 비슷하게 피조물로서의 무상함 속에 있는 세상 전체를 의미한다. 죽은 직후의 운명에 대해서는 통일된 가르침을 발견할 수가 없다. 클레멘스 전서(96년 경)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나타날 때까지의 “경건한 이들의 장소”, 혹은 “단지 짧은 순간 방에 들어간다”(1Clem 50,3-4)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중간시기를 생각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117년경)는 순교 이후에 가능한 빨리 하느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기를 갈망한다(IgnRom 4,1; 5,3 참조).
3.2.2. 호교론자들
초기의 그리스도교 호교론자들은 아주 다양한 사조(思潮)들이 지배하는 이방인 세계와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모든 종말론적 이론에 대해서 극단적인 회의를 보이면서 어떤 희망도 갖지 않으려는 경향은 “대중적인 에피쿠로스주의(향락주의)”로 흘러갔다. 이런 향락주의자들은 바오로가 인용한 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먹고 마십시다.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말입니다”(1고린 15,32). 이런 경향 외에도 죽음 육신 안에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플라톤적 가르침이 (육신을 멸시하는) 이원론적 특징을 지니면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플라톤 자신이 존재론적 혹은 단지 윤리적 이원론을 주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토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초기의 몇 세기 동안에 플라톤 사상은 존재론적 이원론의 의미로 수용되었다. 더욱 강하게 이원론적으로 물들은 영지주의는 영적인 영혼이 어두운 물질의 영역에서 구원된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영역으로 “천상여행”을 떠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교의 호교론자들은 플라톤 사상에서 극단적인 회의와 절망적 태도에 반대하는 동맹자(同盟者)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불멸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사상에 접목하여 이 사상을 능가하게 된다. 즉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도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호교론자들은 그리스 철학의 용어(“육신”과 “영혼”)를 넘겨 받는데, 이 용어는 그리스 철학과는 다른 의도로 사용된다. 즉 종말에 영혼과 육신의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는 가(假)유스티노 저서이다. “부활에 대해서”: 하느님은 “육신도 부활하도록 부르셨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 합쳐진 이성적 생물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신 중에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둘이 합쳐진 것을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간을 삶과 부활로 부르셨다면, 하느님은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즉 영혼과 육신을 부르신 것이다”(Pseudo-Justinus, De Resurr. 8).
호교론자들은 유심론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의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전체 인간이 세상과 함께구원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점은 우리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육신으로”(예를 들어서 “Fides Damasi”: DS 72) 부활할 것이라는 정식을 통해서 자주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때때로 반 영지주의적 논쟁은 아주 과도하게 물질적인 상상으로 흘러갔다. 즉 부활한 육신의 모든 뼈와 신경, 눈과 기관들은 이승에서의 육신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3.2.3. 오리게네스
오리게네스는 위와 같이 너무 단순한 상상이나 영지주의적 육신의 포기에서 거리를 둔다. 그는 부활한 육신을 묘사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부활한 육신과 이승의 육신과의 동일성은(이틀 이상 같은 것으로 머물지 않는) 질료의 동일성을 근거로 하지 않고 영속적인 eidos, 즉 세상의 삶에서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구별짓도록 하는 특징적인 형상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유사하게 오리게네스도 부활은 죽은 다음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세례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삶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는 죽음 안에서, 또 죽은 이후의 정화를 통해서 실현되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오리게네스가 그리스도교의 종말 희망을 내면적, 정신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고, 그래서 위험한 영지주의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이 때문에 죽음과 부활에 대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해석은 신학의 역사에서 관철되지 못하였다.
3.2.4. 아우구스티노
아우구스티노도 (요한 5,25를 다루면서) 현재적 부활을 알지만, 그러나 (묵시 20,5의 “첫째 부활”이라는 말을 보면서) 분명하게 두 가지 부활을 구분한다: “지금 일어나는 첫째 부활”, 즉 인간이 죄에 죽고, 하느님 아들의 부르심을 통해서 신앙 안에서의 삶에로 부활하게 됨으로서 이루어지는 “영혼의 부활”과 “둘째 부활”, 즉 세상의 마지막 날에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인간이 심판을 받기 위해 이루어지는 “육신의 부활”을 분명하게 분리한다. “첫째 부활”에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른 사람들만 참여하고, 둘째 부활에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게 된다. “이 첫째 부활은 은총에 의한 부활이고 둘째 부활은 심판을 위한 부활이다”(Civ Dei XX 6; XX 9 참조).
이렇게 해서 세 가지 새로운 강조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 현재적 부활이라는 주제는 아직 기억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오리게네스가 중요시하였던 부활의 과정(過程)적 성격, 즉 부활은 회개, 세례, 죽음 그리고 죽은 다음의 정화라는 그리스도교 구원의 길 전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퇴보하게 되었다. (2) 미래의 부활은 더 이상 분명하게 희망적인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한편에게는 구원을, 다른 한편에게는 멸망을 선고하는 심판을 위한 중립적인 전제로 나타난다. (3) “육신”, “부활”, “마지막 날”이라는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영혼이 육신없이 존재하는 중간 시기를 생각하도록 한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육신을 아직 돌려받지 못한 순교자들의 영혼”이라는말을 한다(Civ Dei XX 9).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에게서는 아직 중간상태에 관한 분명한 이론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누리는 영혼의 행복을 가르치기도 하고(예를 들어서 De Trini. XV 25), 중간상태의 임시성을 강조하기도 한다(예를 들어서 Civ Dei XIII 8; Ench. XXIX 109). 또 다른 저서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서 자신의 견해는 불확실하다고 설명한다(Retract. 14,2).
그러나 아우구스티노 시대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가르침인 죽은 다음의 정화의 불과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중간상태에 대한 상상이 이미 연결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불을 거쳐서 구원을 받는다”(1고린 3,15)고 표현한 것에 바탕을 둔 다양한 만물회복설과의 대결에서 아우구스티노는 정화하는 불과 저주받은 이들에게 속한 영원한 불을 구분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화는 현재의 삶이나 혹은 죽으면서 고통을 수반하는 (죄의) 분리의 체험이라는 해석 외에도 “육신이 죽음 다음 그날에 이르기까지… 죽은 이들의 영혼은 일종의 불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가르침이 영향을 미쳤다. 이 가르침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노는 조심스럽게 입장을 표명한다. “나는 이 견해를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올바른 견해일 것이다”(Civ. Dei XXI 26).
아우구스티노가 인용한 견해에 따르면 죄의 오점이 묻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모든 사람이 불을 거쳐야 한다. 차이는, 태워버려야할 죄의 찌꺼기가 없는 사람은 불의 뜨거움을 느끼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불의 뜨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후대의 연옥교리와 동일하지는 않다. 아우구스티노 자신이 죽음 이후의 고통이 시간적으로 한정되고 치유적 성격의 것이라고 가르쳤는지에 대해서 오늘날의 연구에서는 계속 토론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구절은 처음에 동방의 만물회복설과 함께 등장한 정화에 대한 가르침이 이제는 서서히 형성되는 중간상태에 대한 가르침에서 새롭게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3.2.5. 중세 초기
아우구스티노 이후 수백년 동안 서방교회에서는 죽은 후의 정화의 고통에 대한 신앙이 계속 발전되었는데, 이 신앙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는 교회의 실천이고, 다른 하나는 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죽기 전이나 후에 그에 알맞는 보속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것에 근거를 둔 고대교회의 참회 실천이다. 중세 초기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교황 대 그레고리오(+604)의 설교이다. 그 자신은 죽은 다음에 가능한 정화의 불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수도자 유스투스(Justus)가 삼십일 동안 계속 그를 위해서 봉헌한 미사 덕분에 불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그레고리오 교황의 이야기(Dial. 4,57)는 후대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는 달리 동방에서는 오리게네스를 둘러싼 논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다음의 정화에 관한 어떤 생각도 위장된 만물회복설의 혐의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희랍 교부들은 정화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없었다.
3.2.6. 스콜라 신학
중세 스콜라 신학은 영혼의 불멸과 육신의 부활에서 출발하여, 두 가지 진술을 정확하게 서로 관련지으려고 시도하였다.
초기 스콜라 신학에서는 두 학파가 분명하게 서로 구분된다. 육신과 영혼을 철저히 분리하는 사고의 대표자들(Hugo von St. Viktor, Robertus Pullus, Robert von Melun)은 사실상 인간을 인간의 영혼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죽음과 부활의 중간상태에 육신이 없는 영혼을 생각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있을 육신의 부활이 이미 영혼이 누리던 행복에 더 무엇을 보태주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다른 이들(Gilbert de la Porrée와 그의 학파)은 인간의 단일성을 더욱 강조한다. 즉 육신과 영혼이 함께 인격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육신과 영혼의 분리란 인간 존재가 끝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런 분리를 넘어서 지속되는 정신적 영혼은 존재를 거스리는 상태에 있다고 하겠다. 이런 인간상을 배경으로 하면 육신의 부활은 중요하게 된다. 즉 육신은 부활은 단지 육신만의 부활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기 스콜라 신학이 시작되면서 아욱세레의 빌헬름(Wilhelm von Auserre, +1231)은 인간의 육신-영혼의 구조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 의거해서 표현하게 된다: 질료와 형상은 서로 둘로 분리될 수 없는 부분들로서 모든 존재자에 내재하는 서로 상관된 존재의 원리이다. 중기 스콜라 신학의 정식(定式) “anima forma corporis”(영혼은 육신의 본질적 형상이다)는 인간의 단일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으로 “존재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정식을 다시 한 번 첨예화시킨다: 영혼은 육신의 유일한 본질적 형상이다(anima unica forma corporis). 비엔나 공의회(1311-1312)는 이 질료형상적 정식을 (토마스와 같이 첨예화된 형태로는 아니지만) 인정한다: 정신적 영혼은 “그 자체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영혼의 형상이다”(DS 902).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혼의 본질에는 육신으로 정향되어 있다는 것과 육신 안에서 자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영혼은 그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 육신적 부활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영혼의 불멸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전체성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채로 남게 되었다. 이것은 교황 요한 22세(1316-1334)를 둘러싼 14세기의 논쟁에서 잘 드러난다. 교황은 1331년 아비뇽에서 선택된 이들의 영혼은 죽은 모든 이들의 부활과 공심판 이후에 비로소 지복직관(至福直觀)에 이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들은 그 이전에는 단지 불완전한 행복만을 누린다. 이 가르침에 대해서 특별히 파리의 신학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교황 요한 22세는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다림의 시간을 언급한 교부들을 의존해서 자신을 변호하였다. 마침내 그는 공개적인 저항에 부딪쳐서 양보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의 후계자인 베네딕또 12세(1334-1342)는 “Benedictus Deus”(1336) 헌장에서 요한 22세의 반대 입장을 구속력 있는 가르침으로 선포하였다: 죽은 후에 정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모든 신자들의 영혼은 “천국에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이 영혼은 죽은 후 즉시 혹은 정화 후에 낙원에 있게 되는데…, 육신과 다시 결합되기 전에 그리고 공심판 전에도 그렇게 된다”(DS 1000).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영혼은 이미 지금 “참으로 행복하게” 된다(DS 1000). 저주받은 이들도 이와 상응한다: “실제로 중죄 속에 죽은 영혼들은 즉시 지옥으로 떨어져서 지옥의 고통 속에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서 계속되기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 날에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육신과 함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행실에 대해 해명을 하게 되는데, 이는 각자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이다”(DS 1002). 한편으로는 “죽은 다음 즉시” 참된 행복 혹은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판 날에” 상과 벌을 받는다는 두 가지 긴장된 진술을 통해서 영혼의 불멸성과 인간의 전체성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
3.2.7. 연옥 교리의 계속적 전개
중세 초기에 형성된 죽은 다음의 정화에 관한 사상은 스콜라 신학 초기에 참회의 신학과 연결되었고, 중기 스콜라 신학에서는 “죄과(罪過)의 상태(reatus culpae)”와 “벌을 받아야 하는 상태(reatus poenae)”를 구분하면서 신학적 가르침으로 완성되었다: 죄가 사해진다고 해서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써 자신에게 초래(招來)한 벌을 받아 마땅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벌을 받아 마땅한 상태는 죄의 사함을 통해서 간단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고, 정화의 과정을 통해서, 즉 죽기 전에 그에 상응하는 보속을 행함으로써, 혹은 죽은 후에 수동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정화 사건을 통해서 소멸되어야 한다. 두번째의 경우를 “연옥(purgatorium)”라고 불렀다. 죽은 다음의 정화 과정에서 산 이들은 중재의 기도를 통해서 죽은 이들을 도울 수 있다.
연옥 교리에 대해서 동방과 서방의 신학은 차이가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영혼은 죽은 다음에 심판날까지 벌이나 상을 받지 않고 미결의 상태에 있는데, 왜냐하면 육신이 없이는 벌이나 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토마스는, 이런 주장은 그리스인들이 모든 벌은 정화를 위한 벌이라는 오리게네스의 오류를 피하려다가 “그와 반대되는 오류”, 즉 죽은 이후에 정화의 벌이란 아예 없다는 오류에 빠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반대해서 토마스는 영원한 고통과 “대죄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한 특정한 정화의 벌”을 구분한다. 토마스는 이런 구분을 교회의 확고한 가르침으로 간주한다. 그는 이런 가르침이 신학적으로는 아무도 오점을 지니고서 하늘에 영광에 이르를 수 없다는 성서구절들(지혜 7,25; 이사 35,8; 묵시 21,27), 아우구스티노 이래로 자주 인용된 1고린 3,13-15(“불을 통해서 구원된다”), 죄 사함 이후에도 보속의 의무를 부과하는 교회의 참회 실천 그리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에 근거한다고 본다(De Rat. Fid.). 그러나 정화의 “장소”에 대해서 토마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In Sent. IV d.21 q.1 a.1).
교황 이노첸시오 4세(1243-1254)는 동방교회에 대해서 죽은 다음의 정화와 죽은 이들을 위한 교회의 중재 기도를 확고히 보존할 것을 엄명하고, 그밖에도 동방교회가 라틴교회의 언어용법(“purgatorium”)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였다(DS 838). 황제 마카엘 팔레올로구스(Michael Paläologus)의 신앙고백(1274: DS 856)과 나중에 피렌체 공의회가 선포한 “그리스인들을 위한 훈령”(1439: DS 1304)에서 이 가르침은 확인되었다. 그러나 교황 이노첸시오가 사용한 단어 “장소”, 정화의 “불”은 삭제되었다.
3.2.8. 근세
근세의 신학에서 “불멸의 영혼”과 “중간 상태”에 대한 사상이 무조건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마르틴 루터에게 “인간의 영혼”이란 “육신이 소멸된 다음에서 남아 있는 불멸의 정신”이다. 하지만 그는 불멸성을 실체적으로가 아니라 관계적으로, 즉 하느님과의 관계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은 영혼은 필연적으로가 아니라 우연에 의해서 불멸한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을 집어넣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Promotionsdisputation vom 3.7. 1545: WA 39, II 400f.). 루터는 중간 상태의 가르침을 영혼이 죽음의 잠을 잔다는 주장을 통해서 약화시킨다. 연옥 교리와는 단계적으로 결별을 고한다. 그는 대사(大赦)를 거부하면서 연옥에 대한 신앙은 성서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분명하게 연옥은 “단지 악마의 속임수”라고 하면서 배척하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전면에는 “연옥을 이용한 장사”, “연옥 미사의 대목장(場)” 그리고 다른 의문스러운 관습들을 극복하려는 실천적인 관심이 있었다(ArtSmalc. 2,2: WA 50. 205f.).
종교개혁자들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연옥(purgatorium)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붙잡혀있는 영혼들은 신앙인들의 중재 기도를 통해서, 특히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제단의 제사를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DS 1820). 동시에 공의회는 종교개혁자들의 관심사를 받아들여서 연옥에 대한 공상이나 과대한 수식, 마술적으로 오해될 수 있는 기도의 실천, 두려움을 이용한 장사에 대해서 경고를 하였다: “교육을 받지 못한 백성들을 위한 대중적인 설교에서 신앙심 고취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어렵고 세세한 질문들은… 제외되어야 한다… 그들(주교들)은 단지 호기심이나 미신에 속하거나 혹은 추악한 이득을 노리는 것을 신앙인들에 대한 걸림돌과 방해물로 금지시켜야 한다”(DS 1820).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수백년간 일반의 의식 속에서는 영혼불멸의 가르침이 참된 종교의 중심적 특성이 되었다. 철학에서는 “영혼”과 “주체”를 동일시하게 되었고 육신은 영혼불멸의 사상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다. 같은 시대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개신교의 신학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육신 부활에 대한 희망을 주체의 불멸성으로 해석하였다. 철저하게 교의에 의존하는 가톨릭 신학에서는 우선적으로 영혼의 종말론적 운명에 관심을 둔 중세 후기 교회 교도권의 표명(3.2.6과 3.2.7. 참조)이 계속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 날에 있을 육신의 부활에 대해서는 계속 가르쳤지만, 그러나 그 의미는 상실되었다.
3.2.9. 20세기
20세기 전반에 개신교 측에서 “변증법적 신학”의 고유한 특성이면서 새로운 성서학의 지지를 받은 대립적 생각을 통해서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은 철학이나 종교와 뚜렷히 대립되고, 히브리 사상은 희랍적 사상과, 성서적 종말론은 계몽주의적 신심과 뚜렷히 대립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종교개혁자들의 특색인 양자 택일의 사상이 강화된다: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 고유의 불멸하는 영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영혼의 불멸성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되어 버린다;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심스럽게 되었다; 이제는 죽음을 단지 육체의 소멸만이 아닌 전체 인간의 소멸, 즉 “총체적 죽음(Ganztod)”으로 정의하였다; 부활은 전적으로 새로운 창조이다. 죽음과 마지막 날 사이의 “중간 상태”에 대해서 말하는 대신에 “하느님의 무시간성 안에로 죽어들어 간다”(Carl Stange, Emil Brunner) 혹은 “죽음의 잠”(Oscar Cullmann), 또는 “하느님의 뜻 안에 보존된다”(Paul Althaus)고 말하게 되었다.
가톨릭 신학에서는 비로소 1950년에 이르러서 종말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을 대상으로 새로운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런 토론을 가동시킨 것은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와 성모 마리아가 “육신과 영혼과 함께” 승천하셨다는 가르침(1950: DS 3903)의 교의화(敎義化)이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우선 육신에서 벗어난 영혼에 대한 것이 문제시되었고(예를 들어서 칼 라너), 그 다음에는 그레사케(Gibert Greshake)와 로핑크(Gehard Lohfink)가 “영혼”이란 개념의 신학적 사용 가치에 대해서, 중간 상태에 대한 상상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들은 그 대신에 “죽음 안에서의 부활(Auferstehung im Tod)”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였다. 이제 가톨릭 신학에서도 개신교 신학에서와 유사하게 (신-)플라톤적 영혼 불멸 사상과 성서적 부활의 희망을 구분하는 것을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톨릭 신학자들은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과는 달리 이런 필요한 구분이 반드시 배타적인 대립 관계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간주한다. 요셉 랕찡어(Josef Ratzinger)는 처음에는 “탈(脫)플라톤 사상적 종말론”에로의 전환을 함께 하였지만 나중에서 이런 경향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4.4.2. 참조).
3.2.10. 요약
교회 역사의 고찰을 통해서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즉 한편으로는 부활을 인류역사와 창조 역사 전체의 완성(그러므로 “육신의” 부활이라고 표현한다)으로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개 인간의 삶이 죽음, 부활 그리고 심판 안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에 가깝게 다가간다는 것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특히 이미 고대교회는 두 가지 전선(戰線)을 형성하면서 싸워야만 했다: 넓게 퍼져있는 회의적인 사상에 반대해서 플라톤 사상가들과 함께 죽음을 넘어서 희망을 가르쳤고, 플라톤 사상과 영지주의 안에 있는 이원론적 경향에 반대해서는 부활의 육신성을 강조하였다. 그리스적 육체-영혼-용어의 수용과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 상태에 관한 가르침은 다음 두 가지를 함께 연결하는 하나의 이론을 형성하도록 이끌었다. 즉 각 개인에게 종말이 가깝다는 것과 마지막 날에 있을 보편적 완성의 중요성이 그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죽음 이후의 정화에 대한 생각도 자리한다. 그러나 그리스적 개념들의 영향으로 사실상 이원론적 사고에 가깝게 육신을 업신여기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바로 여기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르는 신학적 논쟁을 설명할 수 있다.
4. 조직신학적 고찰
4.1. 해석학적 성찰에 대한 기억
개인적 종말론은 죽은 다음의 인간의 미래에 대한 표상을 묘사한다: 죽음, 심판, 정화, 부활, 완성이다. 이런 표상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집단적 종말론에서 언급한 해석학적 성찰(I.4.2.), 특별히 희망의 언어는 원래 표상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체험을 넘어선 실재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림이나 표상이 없어서는 안된다. 이런 표상적 성격을 의식하고 있어야만 종말에 대한 언사를 사건의 순서에 관한 정확한 서술로 오해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래야만 표상의 언어가 투명성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구체적인 표상들이 때에 따라서 다른 표상들을 통해서 보충되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점은 정화하는 불의 표상과 같은 개별적 표상이나,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 시간에 대한 표상과 같은 상상의 모델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4.2. 죽음
신스콜라 신학은 죽음에 관해서 보통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얘기한다. (1) 모든 인간은 죽어야만 한다. (2) 죽음은 나그네살이의 종결을 의미한다. (3) 죽음의 죄에 따르는 벌이다. 근래의 신학에서는 무엇보다도 칼 라너를 통해서 다른 진술이 추가되었다: 죽음은 단순히 인간에게 닥쳐오는 사건으로서 인간이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바로 이렇게 수용하고 감수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행위이기도 하다.
4.2.1. 죽음의 일반성
모든 인간은 죽어야만 한다. 이 문장이 과연 신학적 진술인가 하고 물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첫째, 이 문장은 모두가 신앙이나 신학의 도움 없이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넘어서지 않고, 둘째, 죽음의 불가피성은 성서에서 본래적 주제가 아니라 단지 전제, 즉 구원의 소식이 선포되는 데에 어두운 체험적 배경을 이루는 것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진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이 진술은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데에 처음부터 죽음을 포함시킨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 측면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생각할 수 있다: 삶이란 계속해서 “소모되는 것”이라면, 이런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소모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고, 삶이 움직이는 방향에 부합하는 실천일 것이다(4.2.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