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 희랍철학
신화에서 뿐만 아니라 희랍 고대 철학은 학문의 대상을 신화. 신에서 자연으로 바꾸었다. 이 시기의 최초의 학자들을 밀레토스 학파라고 부른다. 또는 이오니아 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오니아에는 이미 호머(Homer)라는 시인이 그의 천재성으로 그의 세계관을 신화로 다루었다. 호머는 ’운명‘이란 커다란 주제를 놓고 올림푸스의 신들마저도 이 운명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다라서 그가 묘사한 신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인간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반해서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신들에 대한 어떠한 언급없이도, 우주를 다스리며 우주의 변화 과정을 규제하는 어던 비인간적인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들의 자연 사물에 천착하면서 이 모든 만물의 본성과 만물을 이루고 있는 그 근원을 추구하게 되었다. 탈레스는 다자는 일자에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만물의 원인을 물이라고 보았고, 아낙시만더는 이 제1 실체를 부정적인 형을 지니면서도 무한성을 지닌 ’비결정적인 무한성‘으로 보았으며,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주장했다. 이들에겐 사물이 어떻게 형성 되었는가 ? 또는 창조되었는가 하는 것보다 사물의 근원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연보다는 인간 자체에 관심을 돌리면서, 인간을 학문의 최고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에게서도 어던 신의 대한 생각이 없지않으나 신은 관심 밖의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에겐 인간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였다.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 상대주의를 극복하기위해 확고한 기초를 위하여 영혼이란 개념을 창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영혼은 어떤 특수한 기능도 아니고, 특수한 종류의 실체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지성과 인격을 위한 능력, 즉, 인간의 의식적인 인격성을 의미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영혼이 무엇이냐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영혼의 의미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통해 현명한가 아니면 어리석은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를 판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큰 관심은 바로 이 영혼을 썬하게 만드는데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왜 착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칸트와 마찬가지로 정언적 지상명령과도 같은 신의 명령, 또는 인간 내부에서 들려 오는 양심의 소리로 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스승의 뒤를 이어 이데아론을 펼친다. 플라톤은 근본적으로 형상이나 이데아는 불변적이고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실재로서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적, 시각적 대상들은 단지 그것의 모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에 대항하여 절대적인 진리를 바로 사유의 대상이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이데아 질서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출발시킨다. 그리고 플라톤에 있어서 인간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은 세겡의 조물주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창조된 반면에 비이성적인 부분은 육신의 모양을 만들어 주는 신들에 의해 창조된다. 육신은 영혼의 비이성적인 부분을 자극하여 이성의 지배를 전복하도록 한다. 영혼이 이데아의 영역을 따나 육신에 들어감으로써 일자의 영역으로부터 다자의 영역으로 이동한 셈이 되었다. 한편 세계에 대해서도 인간과 유사하게 영혼과 육신의 이원성을 가지고 설명한다. 세계는 영혼이며, 그 영혼을 통해 사물은 질서있게 배열된다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은 “생성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동인에 의해 성성된다”고 했지만 여기서 그가 말하는 동인은 조물주인 데미우르고스다. 그러나 이 조물주는 새로운 사물들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이미 혼돈의 형식 속에 선재하는 어떤 것을 질서있게 배열할 뿐이다. 어떻든 플라톤은 유물론자들과 구별된다. 만물이 어떤 근본물질, -물, 불, 무한자, 공기, 수, 흙- 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던 그들과는 들리 물질 이상의 어떤 구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플라톤의 사상은 여러세기 후에 플로티누스에 의해 새롭게 발전 되었다. 그가 발전시킨 사상을 두고 신플라톤 주의라고 부른다. 플로티누스는 고대 희랍철학과 고대의 여러 종교를 혼합하여 창조를 하나의 유출로 설명하여 2-3세기의 그리스도교에도 큰 영향을 끼첬다. 신이 하나라면 그는 창조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창조는 한 행위이며 활동은 변화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세계의 많은 사물들을 설명할 수 있는가 ? 그는 신의 유일성을 고수하면서 사물들은 창조의 자유행위가 아닌 필연에 의해 신에게서 비롯된다고 하는 사물들의 기원을 설명하였다. 마치 빛이 태양에서 방출되듯이 물이 (그 자체 이외의 어떠한 원천도 없는) 샘에서 솟아 나오듯이 사물들은 유출되며 신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태양은 결코 고갈되지 않으며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것은 본질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빛을 방출한다. 이런 식으로 신은 만물의 원천이며 만물은 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빛줄기가 태양과 같지 않은 것처럼 어떤 것도 신과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은 범신론과 다르다. 플로티누스는 일자로부터의 최초의 유출물을 정신(nous)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일자에 가장 가까운 것이지만 절대적이 아니므로 특정한 속성을 지닌다고 했다. 이 정신이야말로 보편적인 지성이며 세곙의 토대를 이루는 이성능력으로서 어떠한 시건적, 공간적 한계를 갖지 않은 것이 바로 그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빛이 태양에서 방출되어 나오면서 점차 그 강도가 감소되듯이 신으로부터 유출되는 존재의 등급은 완전성의 정도의 감소를 나타낸다. 인간의 영혼은 세계의 영혼에서 유출된다. 플라톤의 영혼 선재설을 확인하면서 영혼과 육체의 결합을 타락으로 보았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의 원천인 일자가 어떻게 불완전성을 인간에게 주었는가, 다시말해 악이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악조차도 세계질서에 있어서 한 자리를 나름대로 차지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마치 악은 이미지에 대한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초상화에 있어서 어두운 암영 부분과 같다는 것이다. 모든 물질은 일자로부터 유출된다. 유출의 본질은 항상 낮은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향 운동 때문에 육체와 결합한 영혼은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투쟁을 일으킨다. 육체의 비이성적인 움직임과 영혼의 이성적인 움직임의 투쟁에서 실제적인 행동의 불일치를 보이는데, 이것이 악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영혼의 올바른 의도와 행동의 실제적 불일치가 악이라는 것이다. 악의 기원은 물질적인 육체의 최종적인 비이성적인 운동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이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육체에서의 해방과도 같이 하향성의 유출 과정의 전도로서 다시한번 일자와의 합일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희랍철학은 창조를 유출로 보는 입장과 아울러 선과 악이라는 두개의 근원적인 힘이 대결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 속에서 물질적인 것을 악으로 복 물질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1.2.1.5 이집트 신화
무엇과 무엇을 분리함으로써 세상을 창조한다는 생각은 상당히 보편적이었는데, 이집트 신화를 보면 대기의 신 슈(Shu)는 하늘의 여신 누트(Nut)와 땅의 신 겝(Geb)을 분리시킴으로써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다. 대기의 신 규가 땅의 신 겝으로부터 하늘의 여신 누트를 떼어 올리고 있다. Y형은 하늘을 받치는 4기둥을 뜻한다. 인간창조는 에집트의 신 크눔(Khnum)에서 하토르(Hator) 여신이 생명을 부어 넣고 있는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 있다.
1.2.1.6 그리이스 신화, 로마 신화
땅과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한덩어리로 되어 있는 카오스(혼돈)라고 부르는 상태로서 형태가 없는 덩어리, 다만 무겁고 움직이지 않는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마침내 神인 대자연이 이 사이에 들어 있는 혼란을 종식시키고 육지와 바다를 나누고 다시 하늘을 나누었다. 그때 불타고 있는 부분은 가장 가벼웠기 때문에 그 부분이 날아 올라서 하늘이 되었고, 공기는 무게와 장소로 인해 그 다음을 차지했다. 육지는 그보다 무거웠으므로 밑으로 가라않았고, 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육지를 띄우고 받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은 이 땅에 고등동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인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창조의 신은 인간을 만들때 자기와 같은 재료를 썼는지, 아니면 하늘로부터 갈라진 그 흙속에 천상의 종자가 아직 남아 있을 무렵의 그 흙을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는 이 대지에서 인간을 만들어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