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서의 교회 이해 –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제 교회 이해에 대한 마지막 단계가 2차 바티칸 공의회이다. 공의회의 중심 사상은 “교회는 성사이다” 라는 것이다. 교회는 여러 표상들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성사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교회를 성사라는 개념으로 이해한 중심에 선 표상은 “하느님의 백성” 과 “그리스도의 몸” 개념이다. 즉 “교회는 성사” 라는 말은 “하느님의 백성” 과 “그리스도의 몸”을 포함하고 종합하는 개념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 비로소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는 교계 제도로 조직된 단체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이고, 볼 수 있는 집단이며 동시에 영적 공동체이고, 지상 교회이면서 동시에 천상 은혜로 충만한 이 교회”라고 교회가 지닌 이중성을 표현하고 있다(LG 8).
이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더불어 인간들은 교회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올바로 했다고 생각했다.. 교부시대 때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하느님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이 종합되어 있었다. 중세와 근대에 오면서 “하느님의 백성”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회를 하나의 국가와 동일시하여 취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초에 와서는 튀빙겐 학파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이 부각되고 19세기말에는 다시 “하느님의 백성”이 대두되었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그리스도의 몸”이 부각되었다. 이러던것이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 종합되어 교회에 대한 새롭고 올바른 이해를 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내부의 자성으로부터 교회를 균형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4,000여명의 주교들 가운데 실제로 기여한 분은 얼마되지 않는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주도한 교부는 5명 정도로 집약할 수 있다. 사실 2천년 가톨릭 역사 안에서 신학자들이 대두하여 큰 분수령을 이룬 것은 세 번 정도이다.
☞ 교회가 토대를 놓던 시기(3-4,5c) – 아우구스티누스
☞ 12-13c – Thomas Aquinas, Ansellmus, Bernardus → 영적인 것에 치우쳤던 것을 현실적인 것과 접목시킴.
1,500년경(Trient), 1,800년경(Tȕbingen) 잠시 반짝하는 정도.
☞ 20세기에 이르면서 로마노 과르디니, 카알 라너, 요셉 라찡거, 스킬레벡스 등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물결을 이룸. 그 중심에는 칼 라너가 서 있다.
참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주도한 다섯명의 교부들(옥타비아니 추기경을 중심으로 공의회 준비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각 신학 위원회별로 나뉘어져 계속적인 토의와 토론을 거쳐 하나의 헌장이 나옴. 예를 들면 사목 헌장은 공의회 시작 때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마치기 2년전에 갑자기 마련된 헌장이다.)
첫번째 인물은 요셉 되프너(J. Dȍpfner)추기경(뮌헨 교구장, 독일 주교회의 의장), 쾨니히(Kȍnig)추기경(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의장), 프링스(Frins)추기경(쾰른 교구장), 베아(Bea)추기경(벨기에), 수에넨스(Suenens)추기경(로마)이 있다.
이들이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래에 있는 신학자들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쾨니히 추기경 -칼 라너, 프링스 추기경 -요셉 라찡거.
요셉 라찡거 추기경은 1976년에 독일 가톨릭의 중심인 뮌헨의 교구장이 되었다가, 81년부터 교리성성 장관으로 지금까지 일해 오고 있다.
결어
이제 새로운 가톨릭의 일치, 진일보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이 새로운 교회 이해를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공의회 이후의 시기(1962-1965)는 극히 부정적으로 나아가, 가톨릭 교회를 위해서는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 기대했던 일치보다는 진보와 보수들과 같은 불일치와 대립, 새로운 문제들이 대두되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일사불란했는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대화․개방, 자율이 강조되면서 지역 교회와 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일치가 무너지는 것 같이 보였다.. 해방신학은 이런 조류에서 나온 것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새로운 것을 많이 수용하면서 개방했으나, 이런 흔들림으로 인해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전체의 일치를 다시 도모하기 위해 신보수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다.
한편에선 60년대말부터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신앙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 위기는 가톨릭 신앙 전체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정신적인 것은 배격되고 물질이 전면에 서게 되었다.
또 한편에선 유물론적 사고가 팽배함에 따라 희생, 십자가, 사랑 등은 배격되고 돈, 명예, 쾌락 등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상황이다. 우리는 이것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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