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념의 역사적 변천-근대의 혼란

 

2.5.3. 근대의 혼란


이렇게 법적이고도 정치적으로 규정된 중세의 교회 개념은 종교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첨예화되고 하나의 거룩한 사회로 변질되었다. 교회는 힘을 가진 세상적인 왕국, 하나의 교황국가가 되었다. R.Bellarmin의 가르침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교회론은 교황권 옹호론이 되었고, 위계조직론, 위계질서에 대한 가르침이 되었다.


Trient공의회 이후의 교회론은 교회의 위계적인 구조에 대한 일방성으로 경직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 사상은 가시적인 교회와 구원의 실재 사이의 결합을 구체화하고 있다. R.Bellarmin의 표현대로 교회는 베네치아 공화국이나 프랑크 왕국과 같은 가시적인 실재, 즉 국가 공동체와 같은 실재라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내의 이러한 분위기는 폭넓게 확산되었고 점차 심화되어 19C 교회개념의 부흥까지 이어지게 된다. 교부시대로부터 중세시대 교회론의 전환은 또한 동서 그리스도교의 분리를 표현하고 있고 중세로부터 근대의 문턱에는 또한 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분리가 자리잡고 있다. 19C의 정치적,정신적,역사적 그리고 과학적 진보는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19C 유럽의 정신적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한편으로 Hegel(1770-1831)에 의한 국가와 역사개념의 발견, 또 한편으로 낭만주의 사조에 힘입은 유기체 사상의 개진이 그것이다. 낭만주의 사조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근본 개념을 회복시켰는데 이 개념을 신비로운 그리스동의 몸이라는 형태로 고회론을 전개하였다. 튀빙엔 학파(Tubingen)의 J.A.Mohler(1796-1838)는 성령의 활동을 토대로 교회사상을 전개 하였다. Mohler는 교회이해의 준거점을 자신의 저작  ‘상징’(Symbolik)에서 개진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가톨릭적 시각을 개신교적인 이해에 대립시키고,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다. Mohier에 의하면,‘교회는 죄악이 완전히 극복되고 완전한 사랑 안에 있는 이 세상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미 완성된 하느님의 왕국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죄악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영역 안에 있고, 교회의 제도란 영 안에 있는 구체적 삶의 실현이 아니라 이러한 삶에 도달할 수 있는 은총의 도구인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교회개념의 두 가지 서로 다른 방향을 대비할 수 있다. 하나는 Bellarmin식의 이해로서, 국가개념으로부터 이해되는 교회로 무엇보다 위계적이고 제도적으로 이해되는 교회개념, 또하나는, 유기체적-신비적인 이해로 교부들 사상에 근거한 교회 개념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가시적/비가시적, 제도/성령, 직무/은총의 선물이라는 대비어가 통용되게 되었다.


J.A.Mohler의 사상은 로마에 있는 일련의 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한 학자들이었다. 이 로마학파는 Mohler의 사상을 발전시켰고, 마침내 C.Schrader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테마의 초안을 작성하면서 교회를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제안된 교회테마의 초안이 신학 위원회에서 토론되었으나 공의회 교부들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게 되고 만다. 오히려 교황의 수위권과 교황직무의 무류성만이 채택되고 교회론 부흥운동은 물러나고 말게된다. 교부들에게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개신교적 이해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었다. 개신교 사상은 가시적이고 위계적인 교회에 대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결국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은 하느님 백성 개념을 사회적인 교회이해와 결합하여 교회를 이해하고 있고, 백성의 위계조직에 대한 종속성과 순명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사라지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새로운 신학적 부흥운동은 여러 방향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성서라는 원천으로의 회귀,교부,전례의 원천에로의 회귀,선교사상,평신도 사도직의 개화, 동방교회에 대한 재발견등등. 1920년 이후 가톨릭 교회론에는 Mohler를 통해 쇄신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개념이 부각되었다. 교회의 내적 차원이 더욱 연구되었고 신비에 대한 강조는 점차 조직과 유기체 사상을 몰아내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운동의 중심점은 그리스도의 몸이었고 이러한 운동의 정점이 바로 1943년 PiusⅦ의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가 되었다.


그리스도 신비체 회칙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주제를 두 가지 방향으로 고찰하고 있다. 하나는, 호교론적으로 교회를 ‘완전한 사회(Societas Perfecta)로 보는 법적인 고찰, 또하나는, 그리스도의 몸 개념으로부터 이해되는 교회론의 여러가지 방향에 대한 영적, 신비적인 고찰이 그것이다. 하지만 회칙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하나의 표상만의 교회이해라는 일반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이래의 차이로 인해 반포직후 즉시 수많은 비판이 쏟아지게 되었다. (예컨대 O. Hoizer. L.Deinner, J.Beubes, E.Przywara, M.D.Kostes, R.Schnackenburg등등의학자) 이렇게 해서 다시 하느님 백성 개념이 강하게 부각되고 하느님 백성 개념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쏟아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하나의 표상만으로 교회를 설명했던 신비체 회칙에 대한 비판과 하느님 백성 개념에 대한 새로운 자각으로 교회는 하나의 표상만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교회의 본질이 여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이 두 개념, 하느님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개념을 설명하는 두 중심 축인 것이다. 하느님 백성 개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척되면서 이 개념이 교회를 설명하는데 더없이 적합한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 반면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또 다른 차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은 깨닫게 되었다. 20C 초 카톨릭 개혁운동과 Mohles의 사상에 대한 재 부흥의 결과로 그리스도의 몸 개념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 개념이 교회를 설명하는데 더없이 적절한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각되면서 결국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한 신비체 회칙으로 그 결실이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다시 하느님 백성을 간과할 수 없는 중심 표상이라는 사실이 점차 확고하게 인식되었다. 가톨릭 역사 안에서 사실 이 두 개념은 교회이해에 균형을 갖지못하고 언제나 시대상황과 사회여건에 따라 일방적으로 사용되어온 잘못을 부정할 수 없다. 어떻게 이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교회론의 가장 중심문제이고 바로 이 문제상황이 제2차 Vatikan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주제를 규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근대의 교회이해를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은 곧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유기체로 이해된다. ‘신비로운’이란 말은 그 자체로 ‘신비’라는 말에서 연역된다. 교회를 파악하는 데 있어 유기체적 – 신비적인 이해가 근대 교회이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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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2.5.3. 근대의 혼란

    이렇게 법적이고도 정치적으로 규정된 중세의 교회 개념은 종교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첨예화되고 하나의 거룩한 사회로 변질되었다. 교회는 힘을 가진 세상적인 왕국, 하나의 교황국가가 되었다. R.Bellarmin의 가르침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교회론은 교황권 옹호론이 되었고, 위계조직론, 위계질서에 대한 가르침이 되었다.

    Trient공의회 이후의 교회론은 교회의 위계적인 구조에 대한 일방성으로 경직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 사상은 가시적인 교회와 구원의 실재 사이의 결합을 구체화하고 있다. R.Bellarmin의 표현대로 교회는 베네치아 공화국이나 프랑크 왕국과 같은 가시적인 실재, 즉 국가 공동체와 같은 실재라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내의 이러한 분위기는 폭넓게 확산되었고 점차 심화되어 19C 교회개념의 부흥까지 이어지게 된다. 교부시대로부터 중세시대 교회론의 전환은 또한 동서 그리스도교의 분리를 표현하고 있고 중세로부터 근대의 문턱에는 또한 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분리가 자리잡고 있다. 19C의 정치적,정신적,역사적 그리고 과학적 진보는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19C 유럽의 정신적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한편으로 Hegel(1770-1831)에 의한 국가와 역사개념의 발견, 또 한편으로 낭만주의 사조에 힘입은 유기체 사상의 개진이 그것이다. 낭만주의 사조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근본 개념을 회복시켰는데 이 개념을 신비로운 그리스동의 몸이라는 형태로 고회론을 전개하였다. 튀빙엔 학파(Tubingen)의 J.A.Mohler(1796-1838)는 성령의 활동을 토대로 교회사상을 전개 하였다. Mohler는 교회이해의 준거점을 자신의 저작  ‘상징’(Symbolik)에서 개진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가톨릭적 시각을 개신교적인 이해에 대립시키고,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다. Mohier에 의하면,‘교회는 죄악이 완전히 극복되고 완전한 사랑 안에 있는 이 세상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미 완성된 하느님의 왕국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죄악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영역 안에 있고, 교회의 제도란 영 안에 있는 구체적 삶의 실현이 아니라 이러한 삶에 도달할 수 있는 은총의 도구인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교회개념의 두 가지 서로 다른 방향을 대비할 수 있다. 하나는 Bellarmin식의 이해로서, 국가개념으로부터 이해되는 교회로 무엇보다 위계적이고 제도적으로 이해되는 교회개념, 또하나는, 유기체적-신비적인 이해로 교부들 사상에 근거한 교회 개념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가시적/비가시적, 제도/성령, 직무/은총의 선물이라는 대비어가 통용되게 되었다.

    J.A.Mohler의 사상은 로마에 있는 일련의 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한 학자들이었다. 이 로마학파는 Mohler의 사상을 발전시켰고, 마침내 C.Schrader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테마의 초안을 작성하면서 교회를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제안된 교회테마의 초안이 신학 위원회에서 토론되었으나 공의회 교부들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게 되고 만다. 오히려 교황의 수위권과 교황직무의 무류성만이 채택되고 교회론 부흥운동은 물러나고 말게된다. 교부들에게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개신교적 이해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었다. 개신교 사상은 가시적이고 위계적인 교회에 대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결국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은 하느님 백성 개념을 사회적인 교회이해와 결합하여 교회를 이해하고 있고, 백성의 위계조직에 대한 종속성과 순명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사라지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새로운 신학적 부흥운동은 여러 방향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성서라는 원천으로의 회귀,교부,전례의 원천에로의 회귀,선교사상,평신도 사도직의 개화, 동방교회에 대한 재발견등등. 1920년 이후 가톨릭 교회론에는 Mohler를 통해 쇄신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개념이 부각되었다. 교회의 내적 차원이 더욱 연구되었고 신비에 대한 강조는 점차 조직과 유기체 사상을 몰아내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운동의 중심점은 그리스도의 몸이었고 이러한 운동의 정점이 바로 1943년 PiusⅦ의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가 되었다.

    그리스도 신비체 회칙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주제를 두 가지 방향으로 고찰하고 있다. 하나는, 호교론적으로 교회를 ‘완전한 사회(Societas Perfecta)로 보는 법적인 고찰, 또하나는, 그리스도의 몸 개념으로부터 이해되는 교회론의 여러가지 방향에 대한 영적, 신비적인 고찰이 그것이다. 하지만 회칙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하나의 표상만의 교회이해라는 일반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이래의 차이로 인해 반포직후 즉시 수많은 비판이 쏟아지게 되었다. (예컨대 O. Hoizer. L.Deinner, J.Beubes, E.Przywara, M.D.Kostes, R.Schnackenburg등등의학자) 이렇게 해서 다시 하느님 백성 개념이 강하게 부각되고 하느님 백성 개념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쏟아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하나의 표상만으로 교회를 설명했던 신비체 회칙에 대한 비판과 하느님 백성 개념에 대한 새로운 자각으로 교회는 하나의 표상만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교회의 본질이 여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이 두 개념, 하느님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개념을 설명하는 두 중심 축인 것이다. 하느님 백성 개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척되면서 이 개념이 교회를 설명하는데 더없이 적합한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 반면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또 다른 차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은 깨닫게 되었다. 20C 초 카톨릭 개혁운동과 Mohles의 사상에 대한 재 부흥의 결과로 그리스도의 몸 개념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 개념이 교회를 설명하는데 더없이 적절한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각되면서 결국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한 신비체 회칙으로 그 결실이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다시 하느님 백성을 간과할 수 없는 중심 표상이라는 사실이 점차 확고하게 인식되었다. 가톨릭 역사 안에서 사실 이 두 개념은 교회이해에 균형을 갖지못하고 언제나 시대상황과 사회여건에 따라 일방적으로 사용되어온 잘못을 부정할 수 없다. 어떻게 이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교회론의 가장 중심문제이고 바로 이 문제상황이 제2차 Vatikan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주제를 규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근대의 교회이해를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은 곧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유기체로 이해된다. ‘신비로운’이란 말은 그 자체로 ‘신비’라는 말에서 연역된다. 교회를 파악하는 데 있어 유기체적 – 신비적인 이해가 근대 교회이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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