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근본성사-우리의 희망과 교회의 전형인 마리아(3)Augustin(35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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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Augustin(354-430): Augustin에 있어서 어머니로서의 교회(Mater Ecclesia)는 두가지 의미를 포함. 첫째로, 교회는 사랑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혼인한 신부인데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뜻이다. 교회는 어떤 제도나 위계조직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이며 이 백성은 영적인 백성이다. 이 영적인 백성은 가시적인 교회안에서 인식 될 수 있다. 참된 하느님 백성의 준거점은 사랑(caritas).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는 참된 혼인의 사랑(caritas)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출산하는 어머니의 개념이다. 이러한 사상은 세례에의한 새로운 출생을 교회의 모성안에 결합시킨 개념이다. 교회는 사람들을 출산시키는 합법적인 부인이다. Augustin은 교회를 친교로서의 사랑(caritas)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다. 이 친교안에 성령이 작용한다. 이러한 의미로 한편으로, 가시적인 가톨릭교회가 참되고 거룩한 하느님의 교회이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고 사랑, 즉 구원의 은총이 교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또 한편으로 참되고 거룩한 교회는 비가시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가톨릭 교회를 넘어가는 도정에 관계된다. 이러한 교부들의 사상을 토대로 오늘날 마리아는 교회론에 한 정당한 위치를 갖게 된다. 교회는 모성의 신비와 신부로서의 사랑안에 있다. 교회는 남성적, 구조적, 제도적일뿐아니라 오히려 여성적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앞에 신부로서가 아니라 먼저 어머니이다. 이러한 모성과 신부로서의 사랑으로부터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은 신랑-신부, 머리-몸이라는 도식이 가능하다. 또 한편으로 교회는 바로 하느님 백성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바오로의 이 말은 항상 둘이 한몸이라는 창세기 2,24의 말씀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참고 1고린 6,17)


이것은, 교회의 성사적, 그리스도론적 신비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항상 마리아와가지는 신비와 결합될때만이 정당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마리아가 갖는 교회의 전형은 교회가 마리아의 인격적인 모습안에서 파악될 때 올바르


게 이해된다. 이 마리아의 인격으로부터 이해된 교회론은 단순한 제도적인 교회론을 배격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수락으로 주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루까 1,38) 교회의 인격적인 구체화를 보여주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고 응답으로 부르심 받은 창조로 실현하였다. 마리아의 응답은 우리에게 종말론적 희망을 선사한다. 마리아는 그 가슴에 세상의 희망을 짊어지고 희망의 표지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미리 보여주는 여인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이후 제2ㄹ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마리아에 대한 재각성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그 운동의 근본적인 목표는 성서의 원천과 초대 교회의 영성에 기인하는 교회의 쇄신이었다.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재발견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론과 그리스도론과의 결합안에서 인식되었다. 교회는 경건하게 마리아를 묵상하였고 육회된 말씀의 빛으로 고찰함으로써 마리아를 육화의 신비 안으로 깊이 결합시켰다.


이러한 고찰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바로 그 인격을 통해, 하느님의 옛 백성과 새 백성을, 이스라엘과 그리스도교를 떨어질 수 없게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말하자면 마리아는 연결고리인 것이다. 이 고리를 갖지 않고선 교회는 구약 또는 신약 어느 하나를 잃어버림으로써 균형을 잃을 위험이있다. 마리아안에서 교회는 성서 전체에 충실할 수 있다.


둘째, 마리아는 교회의 모습이자 표상이며 모델이다. 마리아를 바라봄으로써 교회는 자신을 제도로의 경직화나 사회정치적 도구로의 고착화로부터 방어하고 있다. 교회의 원형인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어머니의 고유한 모성을 재발견하고 그로써 한낱 복잡한 조직의 단체로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마리아는 동정이요 동시에 어머니이신 자신의 운명으로 창조주께서 모든 여성들을 위해 계획하신 일들에 계속 빛을 던져주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과 모성을 통해 여성의 신비는 여성으로부터 떼어 낼 수 없는 아주 귀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인류의 빛은 그리스도이시다.”1) 처음부터 교회헌장은 그리스도 중심과 구세사적 시각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교회헌장의 입장은 다시한번 마리아에 관한 마지막 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교회헌장이 하느님의 어머니에 관한 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고찰을 시작하였던 마리아에 대한 출발점이 다시금 분명해 진다.


교회는 하나의 조직이 아니며 또 단순한 하나의 제도도 아니다. 또한 많은 사회적인 존재 중의 하나는 더욱 아니다. 교회는 인격이다. 교회는 여성이며 어머니이다. 교회는 살아있다. 마리아로부터 이해되는 교회는 교회를 단순히 하나의 기구나 관료적으로 보는 견해를 배격한다.


우리가 교회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교회를 만들지는 못한다. 처음부터 교회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성된 것이다.


교회는 마리아의 영혼안에서 수락이 자각되었을 때 생성된 것이다. 교회가 우리의 영혼속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심오한 소망이었다. 마리아가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Augustin에 있어서 어머니로서의 교회(Mater Ecclesia)는 두가지 의미를 포함. 첫째로, 교회는 사랑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혼인한 신부인데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뜻이다. 교회는 어떤 제도나 위계조직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이며 이 백성은 영적인 백성이다. 이 영적인 백성은 가시적인 교회안에서 인식 될 수 있다. 참된 하느님 백성의 준거점은 사랑(caritas).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는 참된 혼인의 사랑(caritas)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출산하는 어머니의 개념이다. 이러한 사상은 세례에의한 새로운 출생을 교회의 모성안에 결합시킨 개념이다. 교회는 사람들을 출산시키는 합법적인 부인이다. Augustin은 교회를 친교로서의 사랑(caritas)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다. 이 친교안에 성령이 작용한다. 이러한 의미로 한편으로, 가시적인 가톨릭교회가 참되고 거룩한 하느님의 교회이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고 사랑, 즉 구원의 은총이 교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또 한편으로 참되고 거룩한 교회는 비가시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가톨릭 교회를 넘어가는 도정에 관계된다. 이러한 교부들의 사상을 토대로 오늘날 마리아는 교회론에 한 정당한 위치를 갖게 된다. 교회는 모성의 신비와 신부로서의 사랑안에 있다. 교회는 남성적, 구조적, 제도적일뿐아니라 오히려 여성적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앞에 신부로서가 아니라 먼저 어머니이다. 이러한 모성과 신부로서의 사랑으로부터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은 신랑-신부, 머리-몸이라는 도식이 가능하다. 또 한편으로 교회는 바로 하느님 백성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바오로의 이 말은 항상 둘이 한몸이라는 창세기 2,24의 말씀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참고 1고린 6,17)


이것은, 교회의 성사적, 그리스도론적 신비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항상 마리아와가지는 신비와 결합될때만이 정당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마리아가 갖는 교회의 전형은 교회가 마리아의 인격적인 모습안에서 파악될 때 올바르


게 이해된다. 이 마리아의 인격으로부터 이해된 교회론은 단순한 제도적인 교회론을 배격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수락으로 주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루까 1,38) 교회의 인격적인 구체화를 보여주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고 응답으로 부르심 받은 창조로 실현하였다. 마리아의 응답은 우리에게 종말론적 희망을 선사한다. 마리아는 그 가슴에 세상의 희망을 짊어지고 희망의 표지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미리 보여주는 여인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이후 제2ㄹ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마리아에 대한 재각성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그 운동의 근본적인 목표는 성서의 원천과 초대 교회의 영성에 기인하는 교회의 쇄신이었다.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재발견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론과 그리스도론과의 결합안에서 인식되었다. 교회는 경건하게 마리아를 묵상하였고 육회된 말씀의 빛으로 고찰함으로써 마리아를 육화의 신비 안으로 깊이 결합시켰다.


이러한 고찰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바로 그 인격을 통해, 하느님의 옛 백성과 새 백성을, 이스라엘과 그리스도교를 떨어질 수 없게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말하자면 마리아는 연결고리인 것이다. 이 고리를 갖지 않고선 교회는 구약 또는 신약 어느 하나를 잃어버림으로써 균형을 잃을 위험이있다. 마리아안에서 교회는 성서 전체에 충실할 수 있다.


둘째, 마리아는 교회의 모습이자 표상이며 모델이다. 마리아를 바라봄으로써 교회는 자신을 제도로의 경직화나 사회정치적 도구로의 고착화로부터 방어하고 있다. 교회의 원형인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어머니의 고유한 모성을 재발견하고 그로써 한낱 복잡한 조직의 단체로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마리아는 동정이요 동시에 어머니이신 자신의 운명으로 창조주께서 모든 여성들을 위해 계획하신 일들에 계속 빛을 던져주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과 모성을 통해 여성의 신비는 여성으로부터 떼어 낼 수 없는 아주 귀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인류의 빛은 그리스도이시다.”1) 처음부터 교회헌장은 그리스도 중심과 구세사적 시각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교회헌장의 입장은 다시한번 마리아에 관한 마지막 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교회헌장이 하느님의 어머니에 관한 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고찰을 시작하였던 마리아에 대한 출발점이 다시금 분명해 진다.


교회는 하나의 조직이 아니며 또 단순한 하나의 제도도 아니다. 또한 많은 사회적인 존재 중의 하나는 더욱 아니다. 교회는 인격이다. 교회는 여성이며 어머니이다. 교회는 살아있다. 마리아로부터 이해되는 교회는 교회를 단순히 하나의 기구나 관료적으로 보는 견해를 배격한다.


우리가 교회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교회를 만들지는 못한다. 처음부터 교회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성된 것이다.


교회는 마리아의 영혼안에서 수락이 자각되었을 때 생성된 것이다. 교회가 우리의 영혼속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심오한 소망이었다. 마리아가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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