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2 가톨릭교회의 정당성
로마 가톨릭교회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역사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은 2000년의 시간적 간격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회피 할 수 없는 직접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몇가지 원칙이 전제로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교 신앙은 필연적으로 교회적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전체적 인간은 본질적으로 상호 교류를 가지는 공동체적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이고 사회적 존재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단순한 자기 독자의 주관적인 경건한 양식이나 종교적의식 또는 원의로써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 신앙은 기본적으로 수락이라는 구조를 갖는다. 즉 구원의 사건인 하느님의 자기 양여에 대한 인간의 수락인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내가 만들어낸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사건이며, 그 구체화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다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러한 자기양여는 역사안에서 이루어지기에 하느님의 초자연적, 초월적인 자기 양여는 필연적으로 역사적인 중개를 필요로 한다. 그 역사적 실현이 바로 교회라는 형태를 취한 그리스도교인 것이다. 즉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기양여는 한편으로 초자연적이면서 또한편으로 역사적인 현실로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정점에 도달한다는 본질에서 교회가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방향을 부여하는 하나의 객관성이다. 이 객관성은 자유로운 인격적 주체의 가능성속에서 그 주체성에 대해 규범을 주는 것이다.
진정한 주체성은 자기를 하느님 앞에 서있는 자로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설치한 것이 아닌 객관적인 것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란 다만 인간의 개별적인 관심사나 주관적인 결단이 되고 만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직 하나이어야 한다.
교회는 다만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자신의 종교적 주관성을 수행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형성하는 것에 머물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종교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통해서 형성될 수는 없다. 신약성서에서도 교회의 유일성은 당연한 전제가 되어있다.
특정지역교회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성찬을 거행할 때 결코 전체교회의 지방행정기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교회와 전체교회의 관계는 국가의 조직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필립비교회, 에페소 교회등이 각각 존재하고 있었고 이들이 다만 지방공동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에서 성찬식이 거행되는 곳이면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 사실은 오직 하나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을뿐 아니라 오히려 함축하고 있다. 이것이 바오로의 근본적 확신이었다. 즉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는 바로 그러한 지역공동체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의 지역공동체는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더 큰 연맹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교회가 개개의 공동체에서 실현되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공동체가 정말로 완전한 의미에서 교회라면 처음부터 서로 결합된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의 유일하고 동일한 존재가 각기 지역교회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여러 지역 공동체는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의 파견에서 예루살렘에서 출발했다. 사도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있지 않아도 공동체의 권위적 지도자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사도들은 교회의 초석인 베드로 위에 세워졌음을 알았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일치가 존재하기 위해서 어떠한 사회적조건들이 채워져야 하느냐, 또한 그리스도에 기초한 교회가 정확하게 어디에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교회는 오직 하나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의에 맡겨진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 전체가 공통으로 확신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의 구체적인 모습은 그리스도가 바라고 교회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일치를 충분히 실현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공통으로 확신하고 있다. 아직도 분열, 신앙고백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들은 교회의 본질과 부합되지 않고 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교회는 오직 하나라야 한다. 그리고 유일한 교회러서만 교회는 그리스도교 본질에 정말로 맞는 것이다.
셋째, 개개의 그리스도인이 자기 교회 공동체에 대해 가지는 신뢰는 정당하다. 개개의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소속하고 있는 교회가 우선은 정당하고, 그것에 기존해서 생각하고, 그 반대가 증명될 때까지 자기 교회에 머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고 자기 실존의 책임에서 행동한다. 그러나 우선은 인간은 자기에게 미리 주어져 있는 상황에 신뢰를 가지고 자신을 의탁하는 존재이다. 물론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역사적 조건을 탐구하고 이겨내고 그와같이 주어진 실존상황을 돌파하고 근원적으로 변혁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실현을 절대적인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또 자기실존을 절대적으로 새롭게 기회하는 존재도 아니다. 따라서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은 역사적 조건 아래서 자기에게 주어지고 받아들인 그리스도교적, 교회적 상황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우선 자기 부모를 신뢰하고, 전통적 문화를 의미있는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정당한 것으로 보는 데서 시작한다. 이 전통적 가치 판단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라도 역시 의미있는 거승로서 자기 실존을 지탱하는 거스올서 인정하는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교파가 어느것이든 이 특정한 교파속에서 그리스도교적 실존과 자기 실존의 구원을 경험한다. 가톨릭이든 개신교인이든 동방교횡인이든 그리스도인이 자기에게 사전에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기초해서 생각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역사적으로 주어진 그리스도교 교파를 적어도 자기에게 있어서 정당한 것으로 볼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다면 확실히 로마 가톨릭교회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가져온 종래의 호교론은 더 이상 지탱하기가 어렵게 된다.
가톨릭 신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야 말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주장을 한다면, 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만 그리스도의 교히의 합법적 계승이 존재하는지를 증명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교파에서 하는 정말로 순수한 그리스도적 경험과 대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가톨릭 교회를 위한 진정한 호교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출발한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순수한 경험은 그것이 설령 그 해석에 관해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정말로 삼위일체의 신비속에 기초를 둔 인간의 경험으로 여길 수 있고 또 여겨야만 한다. 이러한 원칙적 고찰을 토대로 우리가 이미 어떤 구체적인 제도에 속해 있고 이것은 일단 정당하다고 할 때 우리는 이 ‘제도’라는 말에 주목한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제도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은, 첫째로, 이 제도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본질에 결코 모순 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 제도가 교회적으로 구성된 원초의 그리스도교로부터의 역사적 계속성을 가능한한 선명한 모습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소속한 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기대한 것이다. 다른 많은 공동체를 감안해서 자기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물을 것이다. 또한 자기 교회가 정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유지하고 있는지, 자기 교회가 과연 정말로 위에 말한 의미에서 교회인지를 물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반성을 처음부터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우리에게 미리 주어진 교회에 신뢰를 가지고 자기를 맡겨도 좋다는 것은 이러한 고찰이 전제되었다. 이상의 전제하에, 우리는 우리에게 사전에 주어지고 구체적으로 전해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가능한 가까이 결합되어 있는한 우리 자신을 맡길 수가 있다. 우리의 교회가 원초의 교회와 역사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가능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다음과 같은 전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교회, 여러교파는 동등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누가 어느 교회에 속하든 그것은 단지 역사상의 우연성과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론의 상대주의는 우리에게 처음부터 문제 밖이다. 왜냐하면 16c 종교개혁자들의 교회 이해에 있어서도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도 분명히 모든 교회가 동등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분명히 구별됨으로써 독자적인 정당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와 같은 주장을 하지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쨋든 분열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