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신심을 토대로 한 자료
성서 저자들의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분명 마리아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그리스도인들의 절대다수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 예수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다. 신심을 토대로 한 자료 가운데 주요한 것들은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⑴ 동정 잉태(마태 1, 18-25 ; 루가 1, 26-38)
오늘날 동정녀 잉태 신앙에 대해 역사적 사실로 보는 견해와 그리스도 신앙에 근거한 견해가 맞서 있다.
동정녀 잉태 신앙의 의미는 분명하다. 그것은 결코 마리아의 특별한 능력을 다루는 마리아론이 아니라 예수가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는 그리스도론이라는 것이다. 예수 신원의 특별성은 예수의 잉태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는 신학 논리가 동정녀 잉태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예수 이전의 이스라엘의 뛰어난 사람들의 잉태도 특별한 면모가 있었다. 이사악의 어머니 사래(창세 11,30 ; 17,17 ; 18,11-14)는 석녀에다가 잉태하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야곱과 에사오의 어머니 리브가(창세 25,21)도 석녀였고,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도 석녀인데다가 나이가 많았음(루가 1,7. 36)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잉태되는 데에야 더더욱 하느님의 지극한 섭리를 상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가 잉태하고 출산했다는 내용이다.(루가 1,35 ; 마태 1, 18. 20) 이 사화는 동정녀가 메시아를 잉태하고 출산하리라는 구약의 예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대목에 유의했다.(마태 1,23 :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이 마리아가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했다는 신앙이 싹트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주요한 견해이다.
따라서 임마누엘 메시아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확고한 신앙이었다. 루가 복음 저자는 이 사화 말미에서 마리아를 돈독한 신앙인으로 묘사.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루가는 전사(前史, 1-2장)에서 동정 잉태(1, 26-38)말고도 엘리사벳 방문 이야기(1, 39-45), 마리아의 노래(1,46-55 마니피캇), 예수 성탄 이야기(2,1-21), 예수 아기 봉헌(2,22-38)과 소년 예수의 성전 순례(2,41-52)를 다루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돈독했던 루가는 이러한 사화를 통해 마리아의 두 가지 성품을 강조하고자 했다.
첫째로, 마리아의 뜻밖의 일을 겪을 때마다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그 일을 마음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사려 깊은 분이라는 것이다.(1, 29 ; 2,19.51)
둘째로,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조차도 믿는 분이시니(1, 38.45), 마리아야말로 신앙인들의 귀감이다.
⑵ 가나의 혼인 잔치(요한 2, 1-11)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요한 복음 사가가 당시 기적 이야기를 모아 놓은 ‘표징 출전’에서 7가지 이야기를 복음서에 옮겨 썼는데 그 가운데서 첫 번째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 “부인,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라는 부분은 표징 출전에는 없는 것을 복음서 저자가 덧붙인 것이다.
우선, 이스라엘 문화권 내에서 아들이 친어머니를 보고 부인이라고 부르는 법은 없다. 여기서 ‘부인’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따라서 예수는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가 되기 전에, 이스라엘이 예수에게 구원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다음,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말 .
예수는 죽음과 부활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를 생각하는데 비해 이스라엘은 당장 포도주를 구할 생각만 한다. 초자연적 예수와 자연적인 이스라엘간에 서로의 관심과 관점이 다르다.
그 다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요한 복음 저자에게 예수의 때는 죽음과 부활이었다. 아직, 구원의 결정적인 시간이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⑶ 십자가 아래에 선 마리아(요한 19, 25-27)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마리아도 요한도 십자가 아래에 없지만 요한 복음 저자는 마리아와 요한이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제는 당신의 때가 온 것을 아시고(13,1) 십자가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마리아께 교회를 상징하는 요한의 어머니가 되는 지위를 부여한다. 마리아와 요한이 이 이스라엘과 교회로 상징되고 있다.
⑷ 초대 공동체(도 1, 12-14)
예수가 승천한 다음 사도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성령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부인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1,14)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셨나? 정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교회 창립후 마리아는 곧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도행전이나 사도들의 편지에도, 교부들의 글에도 마리아에 대한 사실적 행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