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 가톨릭 교회의 직무와 동방 교회 및 개신교
5세기까지 교회 내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5지역의 총대주교좌가 형성되었다 : 로마,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이 다섯 지역의 주교는 전체 교회에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서로의 연대를 통해 전체 교회의 일치를 보증하게 되었다.
동방교회지역에서는 점차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었다. 개별지역교회들 간의 연대성이나 수평적 요소가 점차 퇴조하게 되고, 이와 함께 교회들 전체의 일치개념이 붕괴되면서 지역교회의 수직적 요소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개별지역교회의 자율권이 강하게 부각되었고 정착되어 갔으며, 지역교회들의 일치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개별지역교회들의 자율권이 보다 더 강조된 나머지 교회 일치를 위한 요소였던 수평적인 교회들간의 연대가 약화되고 퇴조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의 기본구조가 변형되었다.
이에 대해 서방교회지역에서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군주제도적 체제가 교회의 기본 구조로 자리잡게 되었다. 개별지역교회들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은 퇴조되었다.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체제는 로마 교회의 중심구조가 되었다. 로마 가톨릭 신학은 로마 교회가 모든 교회의 으뜸이라는 사상을 순수하게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초대 교회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신학은 로마교회신학을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로마 교회가 성체와 결부되고 삼위일체 안에서 가능한 교회론을 포기하고, 단순히 세속적인 의미의 중앙집권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로마 교회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완전한 사회(societas perfecta)라는 비신학적 개념아래 교회개념을 정착시키고 절대적인 군주제국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개신교 입장으로부터도 동시에 제기되었다 : 로마 교회는 하나의 새로운 체제로 초대 교회의 구조를 대치시켰다. ‘완전한 사회’로서, 또 하나의 ‘초월국가’로서 로마 교회는 세속국가처럼 입법, 행정, 사법권을 수행하고 있다. 교황은 교회의 군주가 되었다. 초대교회때 지역공동체들의 수장이었던 주교들은 교황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고, 점차 교황권에 종속되는 상황으로 고착되었다. 개신교의 이러한 비판적 입장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완전한 사회 구조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성체교회론 사상에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가톨릭 교회가 알고 있는 미사제물과 희생은 루터가 보기에는 의화개념의 오해라는 것이다. 나아가 복음으로부터 법으로의 도피,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교 본질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으로부터 반성직 관점이 결부된다. 즉 본질적으로 이 희생제물 개념과 결부되어 있는 직무는 복음의 오류 또는 복음의 붕괴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직무와 사제직이 결합되어 있기에 루터는 직무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법률화와 자기스스로의 의화인 희생제물에 대한 철폐는 불가피하며, 이로써 사제직의 철폐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고의 배경에는 말씀을 분별하는 준거점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직무의 역할에 대한 개신교 사상이 깔려 있다. 말씀자체가 조정능력이 있다고 확신하는 개신교 사고는 가톨릭 교회의 직무에 대해 공격적이다. 가톨릭적 확신으로 보면, 직무담당자들은 자유해석과 주관주의에 대항하는 말씀의 증인이요 보증인들이다.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정반대가 된다. 즉 말씀은 그 자체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고, 말씀만이 유일하게 권능을 가진다는 것이다. 루터는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 말씀의 수위권이 효력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 자체 안에 준거점을 가지고 있는 말씀은 교회를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루터 사상에 따른 개신교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지위는 직무에 대한 부정과 결부되어 있다. 루터는 이러한 사상을 자신의 저작 ‘교회의 바빌론 유수(幽囚)에 대하여’에서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체 성사는 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교황의 교회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오, 당신들은 보편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사탄 회당의 두목들, 어둠의 지배자들이다. 성난 프리기아 여신의 사제들처럼 위선적인 독신제도로 스스로를 거세하고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1) 루터는 다만 교황의 제국을 겨냥한 것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또한 초대 교회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추가하고 있다. 이러한 루터의 사상에서 또한 초대 교회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고백이 태동하게 되었다. 그것은 말씀이 스스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공동체, 다만 말씀으로부터만 이해되고 규정되는 공동체에 대한 고백이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개신교 개혁에 대한 비판이 태동된다. 즉 원래 교회적인 것은 다만 말씀뿐이다 는 주장이다.
종교개혁가들의 입장은 직무 없는 교회를 상상하고 있고, 말씀을 그 자체로 교회의 준거점으로 삼고 있다. 말씀은 그 안에 직무를 조정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직무를 통제한다. 이에 대해 가톨릭의 입장은 직무와 말씀 상호간의 불가피한 결합을 말한다. 증인들의 역할이 주어진 말씀과 결합된다. 나아가 증인들은 다시금 분명하게 말씀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바로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직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가톨릭 교회 구조의 세 가지 핵심요소가 분명해진다 : 성사, 말씀, 직무. 성사와 말씀은 일치를 이루어낸다. 직무는 성사와 말씀을 증언하는 것이다.
